그녀도 누군가의 며느리이자 아내이지

by 리유


'얘야, 나다. 문 열어라'


신혼 때 어머님이 현관 앞에서 나직한 목소리로 며느리를 부르던 한마디였다. 두루마기 하나 쓰고 계신 줄.


그렇다. 내게는 조선시대에서 불시착하신 게 아닐까 싶은 시어머니가 계신다.


흔히 상견례라고 불리는 자리에서 처음 뵈었을 때는 몰랐다. 손바닥 손금 사이사이 빈틈없이 진땀이 맺힐 정도였으니 그분의 성격과 모습을 판단할 겨를도 없었을 터다.

하지만 겉모습 만은 기억한다. 통통하고 단단한 체구에 유난히 하얀 피부가 빛났었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앙 다문 입술, 볼록 튀어나온 앞짱구 이마. 어렸을 적 꽤나 미인이었을 것 같았다. 옷과 가방은 단아하면서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말투에서는 귀품과 근엄이 느껴졌던 것만은 확실하다.

70년의 세월을 입으신 지금은 백발의 머리카락만 빼면 재벌역을 맡은 탤런트 김혜숙님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깔끔하고 지적인 이미지가 첫인상으로 입혀졌기에 대하기 어렵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꺼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첫제사 때, 적지 않게 놀랬다.

남자는 주방에 발가락 하나 내밀어서는 안 된다는 철칙을 갖고 계셨다. 아버님은 딱 한 경우에만 들어오신다. 본인이 마실 커피 딱 한 잔 타실 때.

당신의 아들인 나의 남편도 얼씬도 못하게 했다. 초반에 며느리를 잡으려고 하신 건지는 모르겠다.

남편이 그릇을 가져다 놓으러 들어왔는데 가만히 설거지 하던 내가 한소리를 었었다. 너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게 하냐고. 후아. 제일 비싸보이는 접시 몇 개 깨뜨려?


첫 명절에 긴장했던, 그리고 어른에게 대들어본 적 없던 며느리의 입은 우물거기만 했다. 머릿속에 찌그러진 물음표가 가득 채워졌을 뿐.





어머님은 부유한 집의 맏딸로 태어나셨다.

이 부유함이란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장면을 상상해도 좋다. 어머님의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아들과 딸이 편을 갈라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로펌 변호사를 앞세워 재산싸움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딱한 번 어머님의 친정에 간 적이 있었다. 그 이후엔 재산 소송 때문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정원을 지나 한옥식 복도로 들어가니 가정부 두 명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들은 며느리들이었다. 유니폼처럼 보이는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만 머물길래 오해할 법도 했지.

잿빛 기왓장으로 천장이 드리워진 그 집에서 남자는 돈을 버는 권위자이자 권력자였다. 아내는 물론 며느리들은 허리를 약 15도 정도 구부리고 남자들 시중들듯 종종 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래서일까. 어머님도 아버님을 그렇게 대하신다.

다정함이라곤 쌀알만큼도 찾기 힘든 아버님은 그걸 당연한 듯 받는다.

아버님 집안의 제사상을 차리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허리한번 못펴고 음식을 준비하는 아내에게 왜 이리 늦냐 윽박지르시고, 어머님은 네네 하며 잔걸음으로 다. 어머님이 허리 구부리며 내는 에구구 소리와 아버님의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음악이 꽤나 기괴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식사 준비할 때도 숟가락 하나 안 놓으시고 드신 그릇은 그대로 놓는다. 반찬뚜껑 닫는 건 기대도 해서는 안된다. 외투는 항상 입혀드린다. 신발은 신기 좋게 방향을 돌려둔다. 아버님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 커녕 당연히 해야 할 걸 빨리 안 했냐는 눈치다. 이런 어이라는 놈이 어디로 숨었는지 재빨리 찾고 싶었었다.




구정 전날 전 몇 판 부치고 어머님과 단둘이 부엌 식탁에 앉아 잠시 한숨 돌리고 있을 때였다.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어머님이 좋아하실 만한 질문을 하나 생각해 냈다. 자식들 공부는 남부럽지 않게 시킨 어머님에게 어떻게 딸 아들을 그리 잘 키우셨냐 물음이었다. 순간 주름살로 둘러싸인 눈빛이 저 옛날 깊숙한 곳으로 되돌아가는 듯 보였다. 그러더니 금세 속눈썹에 물방울이 맺혔다. 눈물이었다. 헉. 그 도도하고 콧대 높은 분이 내 앞에서 우시다니.


어머님은 서울대 대기업에 다닌다는 분과 선을 보고 연애도 없이 결혼하셨다.

부잣집 맏딸이었기에 부모님이 해준 분과 덜컥 백년가약을 맺으신 듯했다. 하지만 아버님의 집안은 많이 어려우셨다. 먹여 살려야 할 동생들이 줄줄이 딸렸었다. 아버님의 월급은 그 다섯 형제들의 학업과 생계에 모두 사용했다고 한다. 아버님은 IMF 때 실직하셨고, 그 후 보험사 사무실에서 본인 용돈만 간신히 버셨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버님에게 단 한 번도 월급을 건네받은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신혼집도 어머님이 해 가셨다. 친정 엄마가 어렵게 사는 맏딸이 안쓰러워, 남편 몰래 조용히 집도 해주시고, 매달 용돈을 보내주셨단다. 그 돈으로 아이들 옷이며 먹을 거며 학원이며 모두 해결했다고 한다. 집에 수도나 전등이라도 고장 나면 당신 손으로 모두 고쳤었 하며 한숨을 뱉으셨다. 아버님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셨다고 말하시는데 끝내 말을 잇지 못하셨다.


어쩌면, 아버님을 그렇게 만든 건 어머님의 몫도 일정 부분 있었을 거다. 안사람은 지아비를 받들어야 한다는 행동과 말투 모든 것들이 말이다.

그 시절 보고 배운 것들을 당신은 당연한 듯 수십 년을 해오셨을 터였다. 그러니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을 테다. 그런데 본인의 며느리 앞에서 며느리로, 아내로 살아온 세월을 토해내니 울분이 터져 나왔었나 싶다. 같은 여자로서 안쓰럽고 애잔했다.



그런 어머님은 나에게도 당신의 생각과 행동을 고스란히 강요하시곤 한다. 회사 그만두고 남편 일 도와라. 애들은 엄마가 봐줘야 한다. 서방이 마른 건 여자가 집에서 챙겨주지 않아서 그런 거다.

후아.

그때마다 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어머님은 그렇게 생각시는군요. 이해해요. 당신이 살아온 환경 때문에 그럴 수도 있어요.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불합리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그 세월이 억울해서, 힘겨워서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셨던 것 아니었어요? 저도 며느리이자 아내로서 당신이 측은해요.

당신 아들과 제가, 당신이 남은 여생 더 웃고 즐기면서 사시도록 도와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응어리가 지는지 아셨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그 시절의 며느리이자 아내였기에 숙명으로 여기고 헤쳐나간 것도 있었겠지만,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저까지, 앞으로의 세대까지 당신과 같은 처지로 만들진 말아 주세요.


정중히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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