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리지. 풀벌레인가. 새소리인가. 시계를 바라보니 어느덧 여섯 시. 좀 더 눈을 붙일까 하다 새벽녘의 숲 속은 어떤 모습일지 보고 싶어 졌다. 조용히 텐트 지퍼를 열어 바깥을 빼꼼히 바라다보았다. 세상에. 초록빛 잔디밭과 흰색의 텐트들이 온통 뿌연 안개로 덮여 있는 게 아닌가. 이건 분명 구름 속일 거다. 당장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그 몽환적인 공간에 들어가고 싶었다.
주섬주섬 카디건을 챙겨 입고 뭐라도 끄적일까 싶어 안경과 노트북을 챙겨 바깥으로 나갔다. 잔디밭을 천천히 걸으며 하얀 구름을 깊이 들이마셔 보았다. 묵근한 공기에 달큼한 풀향기가 섞여 몸을 가득 채웠다. 미세한 물방울이 얼굴 위에 내려앉았다. 산속의 새들은 더 다양한 소리를 잦게 내기 시작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를 감싸 안아주는 듯했다. 그동안잔뜩 웅크려 있던 나에게 괜찮다고, 때로는 느슨하게, 편하게 살아가도 된다고 토닥거려 주는 것만 같았다. 마음먹은 대로 잘 되는 일들도, 그렇지 않은 일들도 있으니 그냥 지금은 쉬자고 말해주고 있었다.
가족들과 글램핑 여행을 왔다. 여행의 목적은 아이들의 생일 주간을 축하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하늘에 깨알같이 박힌 별을 보고 싶은 나의 사심도 듬뿍. 여지껏 얼마 되지 않는 휴가에도 늘 아이들이 좋아하는 수영장이 딸린 곳으로 다녔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예약을 해 버렸다. 산속. 버티고 견디다가 안 되겠다 싶었다. 에너지가 바닥난 것 같았다. 해야 하는 일들이 널려있는 일상에서 잠시 떨어져 있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그렇게 차를 타고 달려온 이곳은 기대했던 그대로였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깊숙이 자리 잡은 공간, 풀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 향, 맑은 하늘에서 내리쬐는 따뜻한 햇빛, 깔끔하게 정돈된 숙소, 그리고 아이들을 만족시켜 줄 작은 온수풀까지.
평소 휴가 때면 늘 회사 노트북을 들고 다녔다. 핸드폰을 켜 이메일도 수시로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갖고 온 거라곤 집에서 글 쓸 때 쓰는 작은 노트북과 한권의 책 뿐.
남편과 나는 짐을 풀고 아이들은 수영장으로 담가놨다. 이번 여행에서는 나를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들도 이제 어느 정도 컸으니 챙겨줄 것도 많지 않을 거다. 내가 원하는 걸 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따라줄 거다. 그래봤자 밤에 촘촘히 박힌 별들을 보고 새벽에 책 읽는 거 딱 두가지이지만.
낮 동안엔 여행이라고 해서 크게 특별한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원래 먹고 쉬고 자러 왔으니 당연한 걸지도. 화로에 고기를 굽고 야채를 씻고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시간이 비면 각자 싸 온 책 한 권씩 집어 들고 침대에서, 소파에서 뒹굴거렸다. 좀 따분하다 싶으면 잔디밭에서 달리기 시합이나 얼음땡으로 나른함을 달랬다.
집에 있을 때도 늘 하던 것들이다. 그런데 달랐다. 모든 순간들이진주알 꿰듯 알알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처럼.
어느새 주변이 어둑해졌다. 곳곳에 걸린 노란 전구들이 하나 둘 켜졌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드디어 별이 보일 시간인 거다.
준비해 두었던 불을 피웠다.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와 함께 주황색 불이 활활 타올랐다. 아이들이 그토록 원하던 마시멜로를 굽고 달달해진 기분으로 소원도 빌었다.
이제 정말 깜깜해졌다. 가만히 옆에 앉아 있던 첫째 아이가 내 손을 잡더니 말을 건넸다.
"엄마, 이제 깜깜해졌어. 별 보일 거 같아. 보러 가보자."
내가 오기 전부터 거기 가면 별이 잘 보인대. 쏟아질 듯 보인대. 라며 기대감을 내비쳤기 때문일까. 아이들도 덩달아 기다리고 있었던 듯했다.
양손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불빛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하나 둘 셋을 외치고 하늘을 올려보았는데. 세상에. 단 하나의 반짝임도 없는 거다. 까맣고 뿌연 하늘만이 우리의 기대감 가득한 눈망울들을 덮었다. 한참을 바라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나의실망한 기운을 느꼈는지 옆에 있던 아이가 말했다.
"엄마 속상해? 아, 엄마 어떻게 해. 엄마 별 보고 싶었는데. "
나보다 더 속상해하는 아이를 보며 괜찮다고, 이렇게 우리 같이 여기서 하늘을 바라다본 것만으로도 좋다고 답했다. 그래도 아쉬움이 감춰지진 않았던 걸까. 아이가 자그마한 두 팔로 내 허리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엄마, 괜찮아. 오늘 못 봐도 언젠가 볼 수 있을 거야. 별은 하늘에 늘 떠 있으니까. 저기 구름 뒤에 있으니까. 구름이 걷히면 더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 보일 거야."
순간 마음이 먹먹해졌다. 아이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생각했다.
그래. 맞다. 내가 바라고 기대하던게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게 무엇인 지는 분명히 안다. 그리고 그걸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할 거다. 바라던 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속상하긴 할 거다. 그래도 포기만 하지 않으면 이루게 될 거다. 그 목표가 그곳에 있다는 걸 또렷이 아니까.
해야 할 일들은 많은데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들이 속상했다. 회사 일도, 아이들 돌보는 것도, 글도, 다른 것들도 다 완벽하게 하고 싶었다. 시간만 있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이 한 개라는 사실이 이토록 속상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조급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쳐있던 것 같다.
이번 여행의 여운은 한 동안 계속될 듯하다. 아롱대는 불빛 앞에둘러앉아 소원을 빌던 우리, 마시멜로 구워 먹으며 호호 대던 웃음소리, 아이들 손 잡고 올려다본 하늘, 나를 안아주던 따스한 목소리, 잔디밭을 뛰어놀던 아이들과 남편, 그리고 새벽녘 구름에 덮인 이곳의 풍경들, 새소리, 풀내음, 글을 쓰고 있는 나, 이 모든 것들이.
또다시 해야 할 일들을 쫓아 다급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겠지만, 그래도 한 번씩 숨을 후 내쉬고 느슨해질 시간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어디 있는지 또렷하게 보이는 목표를 향해 찬찬히 걸어갈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