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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Oct 13. 2024

소원을 말해봐

글램핑 여행에서 (2)


아이 둘, 남편, 나 이렇게 넷이 모닥불 주위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있을 때였다.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와 주황 노랑 불빛의 일렁임을 한참을 바라보았을 즈음 남편이 불쑥 말을 꺼냈다.


"여기 소비는 거야~ 각자 바라는 거 빌어봐~" 그러면서 꽤나 진지하게 양손을 하나로 모으더니 두 눈을 꾸욱 감았다.


그 모습을 본 첫째 아이가 대뜸 아빠 팔을 탁 치며 입을 떼었다.

"아빠, 로또 당첨되게 해 달라고는 절대 하지 마~ 그건 너무 과한 소원이야~"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으로 두 눈이 동그래진 아빠를 보고 우리 모두 하하 호호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이후 다시 두 손을 모으는 아빠를 다들 조용히 그 모습을 따라 했다. 한 명만 빼고.


둘째 아이는 아빠가 소원을 빌라고 할 때부터 뭔가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혼자 종알거렸었다. "소원 빌 게 없는데, 어떻게 소원을 빌어."

그러다 다들 눈을 감고 기도하는 듯 하니 한 번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소원 빌 게 없는데, 어떻게 소원을 빌어."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떻게 바라는 게 없을 수가 있지? 하고 말이다. 긴 태어난 지 10년 되었으니 아직 소원이 없을 수도 있지. 하다가, 불빛만 똘망똘망 바라보던 아이에게 왜 그런지 이유를 물었다.


"소원 빌게 왜 없어~?"

"응. 어차피 다 이루어지는 건데 뭐 하러 빌어."


오호, 새로운 시각이었다.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되는 마음에 비는 거란다. 자기가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것들을 왜 소원까지 비냐는 논리였다. 딱히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아이의 대답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라고 맞받아 치며 또 다른 질문들을 던졌다.  


"음.. 그럼 우리 윤하 몸 건강하게 해달라고 빌면 어때?" (아이는 아토피로 매년 고생 중이다.)

"그건, 어차피 다 나을 거잖아. 그런데 뭐 하러 빌어. 빌지 않아도 다 될 건데. 먹는 거 조심하고 건강하게 운동하고 하면" 


".. 그럼... 수학 잘하게 해 달라고 하는 거는?" (수학을 꽤나 하기 싫어하는 아이이다)

"난, 어차피 수학을 잘하게 될 거야. 맨날 하루에 다섯 장씩 수학 풀고 있잖아. 점점 잘하고 있잖아. 나는 우리나라에서 수학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 될 거야."


너무나도 당연한 듯 당당하게 대답하는 모습에 웃기기도, 귀엽기도 했다. 그러다 내가 빌던 소원을 하나 툭 던져보았다.


"오... 그럼, 엄마 작가 되는 것도?"


아이는 뭐 그런 질문을 하냐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응! 어차피 엄마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거야. 당연히 될 거야."



순간 온몸에 피부가 화르르 곧두섰다. 두 팔을 교차해 양팔을 문지르며 오.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렷한 눈빛으로 말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았다. 아이도 이렇게 확신을 갖고 있는데 나는 나에 대해 그런 믿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오기까지 했다.



그동안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거라는 믿음이 확고했었나, 이루어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왔던가. 막연하게 동경하며 바라기만 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질문들이 여기저기서 튀어 올랐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해 주세요.라고 빌면서 정작 나의 건강을 위 운동을 매일 하고 있진 않았다. 명상도 생각만 한 채 멈춰 있었다. 가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 하면서 글을 쓰고 읽는 게 충분하지 않았다.


한 동안 여러 생각에 잠겨 불멍을 하던 중, 첫째 아이가 갑자기 불쑥 말을 건넸다.


"그러니까~ 그걸 다~ 소원으로 빌어야지."



리의 시선이 모두 아이에게로 몰렸다. 아이는 말을 이었다.  마치 100분 토론에서 상대방의 주장을 요목조목 반박하는 듯한 표정으로.


"윤하 피부도, 수학도, 엄마 작가되는 것도, 다 이루어지긴 할 건데,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서, 소원을 빌어야지. 혹~시 모르니까."



나는 하하하고 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이 둘을 꼭 안으며 말을 이었다.


"둘 다 맞네, 맞아. 내가 노력해서 최선을 다하면 당연히 이루어지긴 하는데, 혹시 모르니까 만약을 대비해서 소원을 비는 거."






그날 밤, 각자 책도 읽고 잔디밭을 뛰어놀며 시간을 보낸 뒤였다. 모닥불 키가 작아졌을 무렵 빌 소원이 없다던 아이가 그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소원을 다 빌고 두 눈을 떴을 때 내가 아이에게 물었다.


"윤하, 무슨 소원 빌었어?"


아이는 까만 하늘에 떠 있는 별만큼 반짝이는 눈을 하고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응, 엄마 건강하게 천 살까지 살게 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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