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딸이 되고싶어 (2)

by 리유


결혼한지 6년만이었다.

드디어 작은 생명들이 찾아왔다. 그것도 같은 날, 함께.


임신 소식과 동시에 친정엄마의 모성애가 다시 살아나는 듯 보였다.

딸내미의 작은 몸에 두명의 아가들이 자라고 있다 하니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었을 터다.

여린 몸에 행여나 버티지 못할까 봐, 뱃속에서 아가들이 잘 크지 못할까 봐.

체력에 좋다는 온갖 영양식을 매일같이 가져다 주셨다. 본인 몸도 성치 않으시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저 맹목적으로 핏줄들을 돌봐야 하겠다는 의무감이었을까.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떤 감정이셨을지는.


엄마의 지극 정성 덕분에 몇 번의 작은 위기들은 있었지만 다행히 건강한 공주님들이 태어났고, 35년 만에 갓난아기를 안은 엄마의 얼굴에는 행복과 아련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딸을 처음 품에 안았을 때를 떠올린 건 아니었을까.



손녀들이 태어난 기쁨도 잠시, 이내 이기적인 딸내미는 엄마 곁으로 이사를 왔고, 육아를 부탁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보느라 일상은 무너졌다. 끼니는 대충 때웠고, 운동은 사치였다, 중년의 몸으로 둘을 돌아가며 안다 보니 허리와 무릎에도 이상이 생겼다. 심지어 어린이 집에서 아이를 데려오다 작은 사고로 입술까지 꿰맸었다. 어쩌면 아기들의 예쁜 모습보다 힘듦을 많이 기억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8년이 흘렀다.

지금도 일주일에 하루 이틀 씩 딸자식을 도와주러 오신다.

예년보다 굽은 어깨와, 푸석해진 머리칼, 깊어진 주름살이 눈에 거슬린다.

미안하다. 죄송하다. 나쁜 딸, 지 엄마를 아직도 힘들게 하는 나쁜 년.


몇 시간 아이들과 복작거리시다 현관을 나갈 때 손녀들에게 꼭 건네는 말씀이 있다.

‘엄마 말씀 잘 들어. 엄마 힘들지 않게’


또, 그저, 딸 걱정.


부모의 숙명일까. 자식을 걱정하는 건. 그동안 속을 너무 많이 태웠다. 그런데 또 엄마의 마음에 걱정을 드리우게 만드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이런 마음을 아는 남편이 한 말이 있다.

잘 사는 것만으로도 효도라고. 손녀 안겨드린 것만으로도 잘한 거라고. 괜찮다고.

그런데 욕심 많은 나는 이걸로 충분하지 않다. 더 해 드리고 싶다. 갚고 싶다.




몇 년 전 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앗차 했다.

여행을 같이 다닐 생각조차 하지 않은 나 자신이 미웠다. 사느라 바빠서 주변을 돌보지 않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그런데, 엄마랑 둘만의 여행이라. 막상 생각해보니 참 어색하겠다 싶었다.

살갑지 않은 엄마에 그보다 더 한 딸내미의 단둘의 시간. 적막함만 가득할 것이리라.

그렇게 망설임이 시작된 지 몇 년이 흘러가 버렸다.


그러다 문득.

이젠 좀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좀 어색하긴 하겠지만, 서글픔과 미안함이 차올라 울기도 하겠지만,

한번 다녀오고 싶다. 엄마와 단둘의 여행.

둘이 손 잡고 걸으며, 맛있는 것도 먹고 눈도 맞추며 시간을 보내보리라.

그리고 그때는 미안한 일 말고, 잘했던 일, 고마웠던 일을 떠올려 보리라.



어디선가, 인생은 좋은 일 90%, 아닌 일 10% 라고 들었다.

그리고 그 90을 기억하고, 10은 과감히 버리랬다.


엄마와 나에게 주어질 시간이 얼마일 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못난 딸이었던 기억은 털어내고, 예쁜 딸이었던 순간들을 자주 되새겨 보련다.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을 머금게 되는 낱알들을 하나씩 모아 보리다.


느지막한 저녁, 엄마에게 메세지 하나를 보냈다. 몇 년을 망설였던 한 문장이었다.


‘엄마랑 여행 가고 싶어. 둘이서’


단 1초도 안되어 엄마에게서 답이 왔다.


‘나도, 다음에 같이 가자.’




괜히 마음 한구석이 간질거리는 밤이다.




-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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