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둥이 워킹맘의 기록
한 달 뒤 초등학교 입학이었다. 그것도 두 명이 동시에.
육아휴직. 해? 말어?
2년 전 이맘때 즈음, 이 일곱 자의 문장 하나가 머릿속을 이리저리 휘적거리며 돌아다녔었다.
회사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면서도, 회의실에 앉아 문서를 들춰보면서도, 식당에 앉아 밥을 깨작거리면서도.
주변의 여성 매니저들 대부분은 아이 초등학교 입학 즈음 육아휴직을 냈다. 그리고 그들의 자리로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는 거의 듣지 못하였다.
아이가 첫 학교생활을 잘 시작할 수 있도록 엄마가 정서적으로 보듬어 줘야 한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준비물, 숙제 등도 매일 챙겨야 하고, 자기주도 학습 습관을 만드는 시기라고 했다. 또한, 친구들을 잘 사귀도록 도와야 하며, 무엇보다 1학년 때부터 엄마들과 친해져야 정보를 득할 수 있다는 무시 못할 이유도 있었다.
학구열 탑 지역에서 두 아이들을 키워낸 시어머니께서는 몇 달 전부터 애들은 애미가 들러붙어서 봐줘야 한다는 소리를 귀가 막히게, 아니 기막히게 하신다.
‘아, 그럼 아이들 키우는데 드는 돈은 어떻게 해요? 주실 수 있으세요?’
라고 속으로만 외쳤었다. 그냥 입 밖으로 내지를걸 그랬나.
당시 코로나로 남편 사업은 마이너스 상태였다. 내가 생계를 꾸려가는 가장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지금 떠올려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씨.
더 이상 고민을 늦출 순 없었다.
머릿속을 소란스레 돌아다니는 그 질문 하나를 가만히 붙들어 놓고 답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가만있어보자. 팀장의 육아휴직이라. 주변에 팀장 후보자들이 덤불숲의 늑대처럼 벌건 두 눈을 번뜩이고 있다. 휴직을 하면 그들 중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문서가 하루만에 띄워질 것이다. 일 년 뒤, 복직하면 면직책이 되어 있을 테지. 아니, 복직할 자리라도 있으면 다행일터. 어쩌면 10년 넘게 몸담아온 이 회사와는 영원히 빠이빠이를 해야 할지도.
이건 단어 그대로의 휴직이 아니다. 일정한 기간 동안 직무를 쉬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경력을 중단하고 삶을 완전히 뒤바꾸냐 마냐 하는 중대한 결정이다.
일을 멈추기에는 너무 젊다. 그동안 갈고닦은 내 포텐이 날개를 달고 펼쳐질 것이 분명했다. 돈을 받아가면서 이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새 직책을 맡은 지 두 달밖에 안되었다. 즐기면서 해 볼 법한 일들이 널려있었다. 이런 일중독자 같으니라고.
온통 회사를 다녀야 하는 이유들만 여기저기서 폭폭 튀어나왔다.
우리는 원래 당신 야망 속에 가득 자리 잡고 있었어요. 못 본채 한 거였죠. 이제서 봤어요?라고 속삭이며.
결론이 났다.
그리고, 남편에게 얘기했다. 굉장히 스캐어리 하게.
"나, 회사 계속 다닐 거야. 방법 좀 같이 찾아보자."
누구보다 일을 즐기는 사람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단호함의 아우라에 압도당했던 것이었을까. 단 한 마디의 반대도 없이 그는 답했다.
"그래, 생각해 보자. 답이 있을 거야."
우리 부부의 현재 생활을 유지하면서 입학 준비, 적응, 1년간의 돌봄 루틴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입학준비는 내가 전담한다. 아이들의 첫 등하교도 3일 간 함께한다. 스파르타식 적응 기간인 거다.
남편은 사업을 하기에 등교를 매일 맡을 수 있다. 어린이집 다닐 때도 그랬다.
복병은 4교시면 수업이 끝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12시부터 어른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국공립 어린이 집 출신이었던 터 당시 하원시간은 3시였다. 하루 3시간 봐주는 것도 힘들어하는 친정엄마에게 몇 시간 더 빨리 와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것이다.
학교 돌봄 교실을 알아보았다. 정원이 20명이란다. 매년 대기가 100명 이상인데도 추가 증설은 안 한단다. 이런. 코로나로 인해 방과 후는 중단된 상태였다. 젠장.
학원은 여태 한번 도 다녀본 적이 없던 아이들이었다.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한 달 밖에 안된 터라 정보는 제로였다. 맘카페를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찾았다. 워킹맘의 동아줄. 태권도 사범님.
됐다. 이제 애절한 눈망울을 장착하고 엄마에게 부탁할 일만 남았다.
“엄마, 하루 한 시간만 더 봐주실 수 있어요?” (사실은 두 시간이다)
“...”
“…”
“그래야지, 방법이 있냐.”
그렇게 육아휴직 대신 3일간의 휴가를 냈고,
아이들은 몸집만 한 책가방을 메고 교문으로 들어갔다.
엄마 아빠의 환한 웃음, 그리고 걱정과 함께.
2년 후 지금.
아이들은 올해 3학년이 된다.
되돌아보면 그때는 해보지 않았던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었던 것 같다.
하교 후 돌봐주실 친정엄마가 계시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육아휴직은 필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적응속도는 부모의 걱정이 사그라지는 속도보다 빨랐다.
당시 우려했던 대부분의 것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되어 갔다.
부모가 옆에서 세세히 챙겨주면 이보다 더 나았을 것이 분명하긴 하다. 하지만 적정선을 찾아 내린 결정이었고 어느 정도 만족한다. 만족해야만 한다.
지금 혹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휴직을 고민하는 워킹맘들에게, 대안을 먼저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가능만 하다면, 잘 아껴두었다가 교과 난이도가 높아지고 학습량이 많아지는, 그리고 사춘기가 머리를 내밀기 시작하는 초3 시작 전에 사용하는 것도 방법일 듯하다.
솔직히, 그때와 비교하자면, 지금, 그 필요성을 더 강하게 느끼고 있다.
지금은 2022년 1월 중순.
법적으로 휴직 사용시작 가능 일까지 한 달 하고도 이주 남았다.
끄응.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