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진정시키는 차 (1)

'화'라는 녀석의 탄생

by 리유


오늘도 한 모금한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차.


얼마 전 아이가 내 앞에 차 한잔을 권했다. 오직 엄마만을 위한 특별한 차란다.

종이로 붙이고 색칠한 알록달록한 예쁜 컵 안에 무지개 색 티백이 살포시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또박또박 눌러쓴 듯한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차’


헉.

‘그, 그래. 고마워. 엄마에게 딱 필요한 걸 만들어 주었네. ‘

뿌듯한 표정이 가득한 아이에게, 잘 그렸다. 고맙다. 말하며 꼭 안아주었다.

하지만, 속은 찌릿했다. 내가 얼마나 화를 많이 냈으면, 그 많은 차 중에 이걸 떠올렸을까.

그 작은 손으로 그리고 색칠하는 내내 아이의 마음엔 엄마의 어떤 모습이 스쳤을까.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인 지 몰랐다.

이 정도로 참을성이 바닥인 지 몰랐다.


본래 화를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특유의 고요함을 유지하던 나였다.

그저, 어릴 적 동생과 싸울 때, 얌체 운전자와 마주쳤을 때, 또라이 제로 법칙을 준수하는 동료와 마주했을 때, 그리고 시댁 편을 드는 남편 앞에서 분노를 터뜨린 게 전부였던 것 같은데. 죄다 끌어 모아도 열 번도 안되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화라는 놈이 하루에 열 번은커녕, 수시로 훅훅 치밀고 올라온다. 셀 수도 없다.

그럴 때마다 그 녀석은 우레와 같은 괴성을 만들어 목구멍 바깥으로 내뱉는다. 안면 근육을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모습으로 비튼다.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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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태어난 두 작은 인간들과의 독박육아는 3년간 계속되었다. 사업을 시작한 남편님 덕에, 1년 365일 단 1분도 쉬지 못한 듯하다.

한 아기를 간신히 재우면 다른 아기가 울기 시작한다. 밤새 한 시간 연속 자면 소원이 없을 정도였다. 수유, 기저귀, 목욕, 이유식, 설거지, 빨래 등 모든 것이 두 배였다. 그리고 나의 내적, 외적 피로는 세 배, 네 배 눈덩이 커지듯 불어나고 있었다.



아이들이 두 돌 때쯤 되었을까.

두 아이가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그치지 않았다. 설거지는 아침부터 그대로 쌓인 상태였고 집안은 장난감과 책들로 엉켜있었다. 온 힘을 다해 참아가며 차분히 달래도 두 아이들의 울음은 귓바퀴를 메아리 삼아 웅웅 거리며 점점 커지기만 했다.

그때 갑자기 그 화라는 놈의 몸집이 불어 났던 걸까. 아무것도 보기 싫었다.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은 채 두 손으로 귀를 막고 갈라진 괴성을 내뱉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겁을 잔뜩 머금은 울음소리를 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당시 집 가까이에 사시던 친정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나에게 물 한잔을 건네며 안방에 앉히고 문을 닫아두었다. 남편이 CCTV를 우연히 보고 장모님에게 부탁한 것이다. 애들 엄마가 이상하다고. 가서 봐달라고.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조금의 징징거림만 들려와도 그 녀석이 꿈틀거린다. 한번 움찔하면 도통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제는 아이들에게만 그러는 게 아니다. 남편도, 나 스스로도 공격을 한다.

아이들에게는 화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다 보니, 표정 없는 얼굴로 저녁과 밤을 맞이하기 일쑤였다. 남편이 하는 모든 일상의 질문들에 짜증이 올라오기도 했다. 심지어 밥을 챙겨 먹었는지, 아이들은 말을 잘 들었는지 염려하는 물음도 귀찮았다. 회사 일도 집안일도 육아도 모두 다 못하고 있는 나에게도 화가 났다. 너무나도 한심했다.




그렇게 고되고 힘든 삶을 한탄하며 하루하루를 이어가던 중, 작은 손으로 건넨 '마음을 진정시키는 차'를 받은 것이다. 그 순간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새 그 화라는 녀석이 점점 몸집을 불려 가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을, 나를 잠식해 버렸다는 것을.


그때부터 이 고약한 녀석을 다스리기로 마음먹었다.

온갖 서적과 영상을 닥치는 대로 읽고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름의 몇 가지 방법들을 1년째 수행하는 중이다.



- '마음을 진정시키는 차' 2편에서 계속됩니다 -




이미지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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