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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Jun 07. 2023

시어머니의 말들


분명 휴일이다.

그런데, 모든 게 다 피로하다.
밥을 먹을 때에도, 걸을 때도 축축 처진다. 눈을 끔뻑이는 것조차 버겁다.


오늘은 시댁과의 모임이 예정되어 있다.

만나기로 한 오후 3시 전까지는 모든 사실을 잊고 아이들과 맛난 브런치도 먹고 책도 읽고 휴일을 누리고 싶은데, 남편이 자꾸 여러 질문들로 현실을 일깨운다. 아마, 오랜만에 만날 누나 생각에 더 들떠 있는 듯해 보였다.

‘2시에 만난다는데? 저녁으로 식당을 예약했다는데? 아니다, 집에서 먹을 거 사오라시네?’


처음엔, 응, 응, 이라고 답하다가 나중에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무표정으로 답했다.

‘애들 줌 영어수업 시간 전까지만 출발할 수 있으면 뭐든지 괜찮아. 그냥 오빠가 다 알아서 해. 나한테 말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잖아.’




시댁에 대한 감정이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다.

부족했겠지만, 잘하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 한 번씩 훅 들어오는 말들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네가 아비를 잘 못 챙기고 있어서 살이 안 찌는 거 아니냐. 회사 그만두고 사업 도와라. 애들은 엄마가 봐줘야 한다. 아비가 애들을 보고 네가 어딜 나간다고? 이거 무거운데 아비만 주지 말고 너도 좀 들어라. (내 양손엔 네 살짜리 둥이 손이 잡혀 있었다). 네가 늦게 와서 아버님이 열나는 거다 (제사 날 교통체증으로 3시간 걸려 도착한 날이었다. 아이들 육아로 그 주 두 번 휴가를 냈었기에, 제삿날은 어쩔 수 없이 출근을 했더랬다) 

나였으면,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을 말들이었다.



어머님 댁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예전의 날카로운 말들과 눈빛들이 내 몸에 박혀 그때의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아픔을 방어하기 위해, 미리 긴장 상태로 돌입하여 그리도 피로했던 것이었을까.




저녁 먹을거리를 사서 들어가기로 했다.

남편 양손에 봉지가 들려있었다. 현관 앞에 다다르자, 봉지 하나를 달라고 했다. 분명 한마디 하실 테니.

문이 열린다. 재빠르게 안면 근육을 풀고 입을 떼었다.


“잘 지내셨어요~?. 어머! 머리 예쁘게 자르셨네요? 하하하”


그리고, 곧장 아이들 돌보기에 집중했다. 마스크와 겉옷을 문고리에 걸고, 가방에 있던 책을 꺼내고, 물을 가져다주었다.

어른이 여섯인데 이거밖에 안 사 왔냐, 먹을 게 없다. 젓가락도 안 받아왔냐.라고 말씀하시는 게 들렸지만, 듣고만 있었다. 집에서 뭐 해 먹지 않은 게 어딘가, 괜찮다, 괜찮다, 체면을 걸고 있을 뿐이었다.

워낙 칭찬에 인색한 분인걸 아는 남편이 참다 참다 말한다. 이게 왜 먹을 게 없냐고, 8인분은 사 온 거라고, 제대로 보고 말씀하시라고 말이다.


안다. 남편의 마음도 내 눈꺼풀만큼이나 무거웠을 것이다.


그렇게 멍한 정신과 흐릿한 시야로 시간을 보내고, 집에 오는 길.

차 안에서 눈을 감고 고요히 앉아 있었다. 이제 정신이 안전한 집으로 들어간다.


화장실에 들어가 따듯한 샤워기 물을 틀었다. 타월에 비누를 묻혀 거품을 냈다. 피로야, 감정아 씻겨나가라. 중얼거렸다.


신기하다.

지난 달만 해도, 잠들기 전까지 그 불쾌한 감정이 마음을 쿡쿡 찔러댔었는데, 오늘은 금세 나아졌다. 맷집이 생긴다는 게 이런 것일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하루 종일 와이프 눈치를 봤을 남편에게 갑자기 미안해졌다.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나도 너무 과민하게 느끼고 있는 것 안다고, 그런데, 그동안에 들었던 말들이 자꾸 떠오른다고. 그걸 견디려면 좀 더 강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이게 최선인 것 같다고. 나름 노력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다짐해 본다.

사랑하는 남자의 어머니이다.

나 스스로를 다치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른으로서 존중해 드리자.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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