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말을 알아들을 때 즈음, 그러니까, 태어난 지 15개월 정도부터였을까.
둥이 아이들과 셋이 나란히 누워서 잠요정을 만나기 전, 품에 안으며 해주는 말이 있었다.
‘사랑해, 소중해, 고마워.’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아이들은 작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소곤소곤 따라 했고, 귓가에는 아이들의 예쁜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맴돌았었다. 이어서 솜털이 보송보송한 이마에, 몰랑하고 보드라운 볼에 뽀뽀를 해주면, 아이들은 작고 통통한 팔로 나를 꼬옥 끌어안았다.
달콤한 아가향이 온몸이 가득 퍼지는 그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들이 자그마한 주먹으로 연필을 움켜쥐고 글자를 적기 시작할 때 즈음, 하얀 종이 위에는 '사랑해'라는 삐뚤빼뚤한 글자가 자주 놓여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숙모 등 모든 가족 생일 편지의 끝맺음은 늘 ‘사랑해요, 소중해요, 고마워요.’였고, 심지어, 어린이집 선생님께 쓰는 편지에도, 친구 생일카드에도 그 예쁜 문구가 늘 등장하곤 했다.
이제 아이들은 어느덧 만 여덟 살이 되었다.
밤마다 우리 셋을 따스하게 했던 말들과 포옹은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두어 번으로 점점 드물어져 갔다. 대신, 치카해라, 책가방 싸라, 등과 같은 차가운 잔소리가 비집고 들어와 앉아있기 일쑤였다.
늦게까지 침대로 오지 않는 아이들에게 엄마 먼저 잔다며 한마디 던지고 씩씩 거리며 누워버린 어느 날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불 끄지 말라고 징징거렸을 둘째 아이가 같이 자자며, 품에 파고들어 와 포옥 안기는 것이 아닌가. 엄마 냄새 좋다며 팔에 말랑한 볼과 쪼그만 한 코를 자꾸 부비댄다. 작은 앵두처럼 붙어 있는 말캉한 코가 귀염 져 어느새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엄마가 제일 좋아' 라며 끌어안는데 아가 때의 달콤한 향이 다시 나는 듯하다.
예전의 따스했던 순간이 떠올라, 아이를 격하게 안아주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도 우리 아가 제일 좋아아앙. 사랑해, 소중해, 고마워. 우리아가앙"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1초, 2초, 3초..
아이는 침대에 차렷하고 누워 한동안 가만히 있더니, 억지웃음을 지으며 한 마디 한다.
"꿈뻑꿈뻑, 하하하, 사.랑 해.."
어색해한다. 쑥스러워한다.
예전 같았으면 '헤에'하고 배시시 웃으며 안겼을 텐데, 사랑한다는 말을 같이 따라 했을 텐데, 이제 엄마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수함이 뒤로 숨고 있는 중인 걸까. 같이 하하하하 웃고 말았지만, 서운한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가만 보니, 어느덧 침대의 반 이상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키가 자랐다. 손은 내 손가락 두 번째 마디만큼은 온다. 미쉐린타이어 같던 팔, 다리의 포동함이 사라진 지 오래다.
도대체, 언제 이렇게 커버린 걸까.
아가들이 어린이로 매일매일 자라나고 있다.
몸도, 마음도, 사랑을 향한 감정도.
아쉬우면서도 신기하고 기특하다.
수면등의 노란 불빛만 흔들리는 고요해진 밤, 일정해진 작은 숨소리만 들려온다.
이마에 촘촘하게 붙어 있는 보송한 잔머리들을 만지작 거리며, 혼자 다짐해 본다.
그래도 아직은 엄마 냄새가 좋다며 품에 안긴다.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씩 해주긴 한다. 속상하면 으앙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기분이 좋으면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온몸으로 표현한다.
모든 순간들을 마음에 잘 새겨 놓아야겠다. 그 감정들을 온전히 누려야겠다.
언젠가 꼭꼭 숨어버릴지 모를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말들을,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순수한 표정과 몸짓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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