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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Jul 09. 2023

첫 가게, 코로나와 함께하다.(1)

3년 전 그 처절했던 시간들을 회상하며



어느 날 시속 100킬로로 운전을 하다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핸들을 꺾어 반대편 차선으로 확 들어가 버리면 어떻게 될까. 그래볼까.


5년 전, 그가 첫 가게를 오픈하던 날이 떠오른다. 가족들에게 개업 축하를 받고 처음 현금통을 열던 소리가 생생하다. 수많은 고객들에게 '안녕하세요'를 외치며, 신나게 장사하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그때 가게 안 이곳저곳에서 색색깔의 빛이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느 날 짙은 회색 안개가 소리 없이 다가오더니 모든 것을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어떠한 조짐도 없이 말 그대로 덮쳐 버렸다.

그렇게 그는 회색빛 안갯속에 홀로 남겨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붙잡을 것도, 기댈 것도, 매달릴 것도 없었다. 단 하나의 실낱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게 바닥에 짙게 깔린 안개들은 점점 더 검은빛이 되어 그의 발을 감쌌다.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쳐 보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오히려 더 어둡고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고만 있었다. 그러다, 그냥 다 놓아버리고, 칠흑 같은 암흑 속에 파묻혀 버리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대기업 팀장 직을 내려놓고 시작한 첫 사업, 키즈카페.


150평 규모에 내부 시설물이 많았기에 초기 투자 비용으로만 수억이 필요했다. 모아두었던 돈을 긁어모아 쏟아붓고 은행 대출도 최대한으로 받았다. 오픈을 준비할 때는 하루 세 시간도 못 잔 채 새벽까지 이어지는 공사현장을 꼼꼼히 살폈다. 공간 배치는 물론이고 놀이기구, 카펫, 벽지 색깔, 테이블과 의자 선택, 안내글 등 하나하나 공을 들였다. 완벽하게 해 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오픈 후, 가게에는 다행히 많은 손님들이 찾아왔다. 돈은 예상보다  벌렸다.

하지만, 키즈카페의 운영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동요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한데 섞여 그의 귓가를 울려댔다. 부모들의 컴플레인도 매일 반복되었다. 가장 어려운 건 사고였다. 아이들끼리 서로 부딪혀 이마가 찢어지거나, 바닥에 넘어져 입술이 터지는 등 일이었다. 그때마다 그는 부모들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가 응급실에 실려간 날도 있었다. 가게 문을 닫고 두꺼비집이라 불리는 배선차단기를 맨손으로 내다가 감전사고가 난 것이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오던 날, 그는 깨달았다.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그렇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힘들다고, 어렵다고 말할 수 없었다. 집에서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잘 되고 있다고 말할 뿐이었다.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했으니, 어떻게든 해내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의 피와 땀을 갈아 넣은 하루하루를 지나, 투자한 금액을 갓 넘기기 시작했을 때, 바로 그때, 끔찍한 코로나가 닥쳤던 것이다.


매일 아이들로 북적이던 곳이 황량해졌다. 놀이기구들은 마치 오래된 인형의 집처럼 낡아가기 시작했다. 장난감들은 바닥에 누워 빛을 잃었다. 가게 안을 메우는 동요소리가 괴기스럽게까지 들렸다.

음식도 팔지 못하니,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 야채 등의 식자재는 폐기해야 했다. 오븐, 커피머신, 튀김기도 전원이 내려진 지 오래였다.

쌓여가는 먼지를 닦아내며 그의 암담한 마음도 같이 사라지기를 바랐다. 식자재를 버릴 때마다 이 처참한 상황도 같이 없어졌으면 했다.


뉴스에서는 방역 완화가 될 것이라는 소식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그때마다 몇 명의 손님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세 달, 시간은 흐르고 월매출 10만 원, 나가는 돈 천만원인 날들이 계속되었다. 몸과 마음을 축내며 3년 동안 모아둔 돈들이 썰물처럼 빠져나다. 그의 살점 하나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듯했다.


착한 임대인 이야기가 뉴스에 떠돌았지만, 그의 상황은 달랐다. 매월 세 명의 임대인들 한 명 한 명에게 읍소했다. 더 이상 가게 유지가 어렵다고,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제발 봐달라고 애원했다.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 한번 해 본 적 없는 그였다. 매월 반복되는 조아림 속에 그의 자존심도 바닥을 쳤다. 아르바이트 네 명의 계약도 종료했다. 정규직 점장 한 명과 사장인 그, 둘이서 번갈아 가며 가게를 지켰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망할 것이라고 직감했다.


카운터에 홀로 덩그러니 앉아 있던 어느 날이었다. 며칠째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메마른 공간에 울려 퍼지는 동요소리가 한없이 우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등바등 살아온 수년의 시간들이 후회스럽게 다가왔다. 열정을 바쳐 꾸려온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터벅터벅 걸어가 모든 조명과 음악 소리를 껐다. 그러고는 가게 한가운데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 두어 번의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그의 가슴 깊은 곳에 뭉쳐 있던 응어리들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다. 토해내고 싶었다. 눈물 한 두 줄기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매트로 떨어지는 눈물방울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가게 안이 흐느낌으로 덮어지더니 금세 꺼억꺼억 엉엉 온갖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나서 끔찍한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휘몰아쳤다.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사라져 버리자. 이 모든 것을 놓아 버리자.





홀로 암흑 속에 머물러 있던 중 저 멀리서 볼풀공 하나가 토독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시선을 옮긴 그곳에는 창틈 사이 작은 빛줄기가 비치고 있었다. 맨손으로 눈물을 훔쳐내고 빛의 반짝임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 순간 이제 다섯 살이 된 두 아이들과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이 나타났다. 아이들의 작은 손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보드라운 손을 잡고 싶었다. 아내에게 달려가 안기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았다. 두 발이 암흑 속에 단단히 붙잡혀 있었다. 손으로 다리를 잡아 온 힘을 다해 끄집어내어 보았다. 한 발 한 발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를 집어삼키려던 어둠 밖으로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본 글은 아내의 시선에서, 남편이 겪은 코로나 3년의 기간을 곁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을 담아낸 것입니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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