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운동을 해야겠다 싶었다.
매일 손과 얼굴은 불규칙하게 부어 있고, 속은 물만 마셔도 불편하다. 무릎, 손가락 모든 관절들이 움직일 때마다 욱신거린다. 가방 안에 두통약이 늘 굴러다닌다.
이러다 일은 커녕 기본적인 생활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근력을 키워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한 회사일도, 아이들을 위한 집안일도 해야 하는 나다.
코로나 방역이 완화되자 그동안 굳게 닫혀 있던 회사 헬스장이 문을 활짝 열었다. 퇴근길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그 유리문이 나에게 나긋하게 외친다.
‘어서 들어와. 나랑 친해져 보자. 지금 시작해야 해. 네 몸도 그렇게 느끼지 않니? ‘
사용료 월 2만 원, PT 10회 48만 원.
해볼까?
좀 많이 비싸긴 하지만, 아파서 병원비 내는 것보단 낫겠다 싶었다. 일단 돈을 내면 아까워서라도 다닐 듯했다. 게다가 사무실에서 한 층만 내려가면 되니 이동하기 귀찮지도 않을 테고.
일단 해보자. 한 달이라도.
그렇게 무언가에 홀린 듯, 두 발은 헬스장으로 향했고, 두 손엔 어느새 PT 계약서가 들려 있었다.
무거워만 보이던 헬스장 문은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이미 근무 후 운동 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러닝 머신, 사이클, 그리고 이름 모를 가지각색의 기구들에 앉아 그들 만의 운동을 하고 있었다. 서로 아는 척을 하지 않으니 그거 하나는 진심 다행이었다.
40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강렬한 눈빛의 여자가 나에게 걸어온다. 나의 첫 트레이너 샘. 세상에. 허벅지 굵기가 내 것의 두 배다. 바디스캐너를 먼저 해보자 한다. 체지방과 근육량을 재어보자고. 그래야 운동 전 후를 비교해 볼 수 있다고. 숫자까진 기억나지 않지만 트레이너 샘의 말 만은 기억한다.
'회원님, 정말 살기 위해 필요한 근육만 갖고 있으시네요'
불편한 곳이 있냐고 묻는다.
'무릎, 허리, 손목 등 관절은 다 아파요. 특히 요즘은 무릎이 더 심해요. 그리고, 좀 어지러움이 있는 편이에요. '
내 두 눈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다 조용히 입을 연다.
'네, 그럼 일단 기구 사용은 어렵겠네요. 기본적인 맨손 근력 운동부터 시작하겠습니다. '
운동기구 사용법을 배우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두 달 뒤엔 혼자서도 근력 운동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기구 사용도 못한다고? 몸 상태가 그 정도밖에 안된다고?
민망함에 웃음을 지었지만, 뭔지 모르게 운동의 끝이 안개에 휩싸이는 듯했다.
그렇게 시작된 트레이닝.
첫 주에는 스텝박스, 짐볼 운동, 점핑 잭 등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했다. 할만했다.
두 번째 주에는 스쿼트를 시작해 보자고 한다. 오. 운동 영상에서 자주 등장하는 그 스쿼트. 드디어 나도 제대로 된 뭔가를 하는구나.
내심 기대에 부풀어 시작한 스쿼트.
전신 운동이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부위를 하라는 대로 따라 하란다. 맘대로 안된다. 샘이 하던 그 모습과 사뭇 다르다. 거울에 비친 근육 한 점 없는 앙상한 다리가 엉거주춤하게 구부러져 요상한 모습이다.
마침 같은 부서 직원도 있는데 얼굴색이 차츰 벌게진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독 열정이 더해진 우리 샘은 몸 움직임 하나하나에 한층 큰 소리로 외친다.
‘배에 힘주고, 다리 더 넓게, 발 너무 벌렸어요. 무릎 튀어나오네! 아니 아니, 엉덩이 더 뒤로, 바닥을 민다는 느낌으로. 허리 세워서, 더 아래로, 더더더더. ‘
입은 앙 다물고 샘이 하라는 대로 어떻게든 움직여 보았다. 바들바들 대는 다리를 구부렸다 펴며 속으로 외쳤다.
'예예 안다고요. 저도 알겠다고요. 그런데 몸이 맘대로 안 되는 걸 어째요. 엉덩이를 뒤로 빼면 자꾸 넘어진다고요. 허리도 뻐근해요. 저 디스크 있다고요. 이거 괜찮은 거 맞아요?
그나저나 다리는 왜 이렇게 덜덜 떨리죠. 그리고 목소리 좀만 작게 내시면 안 될까요. 사람들이 다 듣잖아요. 저기 우리 팀 사람도 있다고요. 제발요. 예?'
주 2회,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샘의 말에 따라 몸을 덜그럭 덜그럭 움직인 결과, 근육들이 드디어 자세를 익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느끼기에도 그랬다. 무릎도, 허리도 예전보다 덜 아팠고, 무엇보다 적어도 뒤로 자빠지지는 않았다.
이제 근육이 좀 생긴 것 같다며, 다음 주부터는 기구를 사용해 보자고 했다.
아싸. 드디어. 나도.
그 기대감도 잠시, 얼마 뒤, 방학이라는 복병이 나타났다.
주 2회 테트리스 조각 끼워 맞추듯 어렵게 시간을 마련했는데, 이제 주 1회도 어려웠다. 불규칙 적으로 일정을 잡다 보니, PT 예약은 저녁 7시 이후에나 가능했다.
7시에 출근해 온 정신을 불사르고 저녁 7시 운동이라. 그것도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에서.
예상한 대로였다.
피로가 쌓인 몸으로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근력운동은 안 하느니만 못했다. 기구 좀 사용해 보려 하면 얼굴이 허예지면서 어지러움증이 몰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샘이 새삼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원님, 일주일에 한 번은 안돼요. 회원님은 간신히 근육을 학습시켜 놨는데, 다시 약해진 상태라 더 강한 걸 할 수가 없어요. 뭐 드시고 오셨어요? 가루종류 말고 씹는 것을 드셔야 해요. 그래야 열량이 생겨서 운동을 하죠’
‘예, 예’
축 처진 발을 이끌고 헬스장 문을 열고 닫은 지 2개월.
문은 날이 갈 수록 무거워졌다. 갈 때마다 기본 근력 운동만 반복했다. 특히, 스쿼트. 스쿼트. 또 스쿼트.
그렇게 세 번의 결제 끝에, 알았다.
나는 정해진 시간에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는구나. 원하는 운동을 하려면 체력부터 먼저 키워야 되는 거였구나.
욕심이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운동을 다닌다는 것은.
아까웠다.
150만 원을 긁고 다닌 3개월이.
내게 남은 건 스쿼트 밖에 없었다.
아니다. 해보자.
이제 보니 운동 영상 대부분에 스쿼트가 들어가 있었다.
어랏. 그때 근육에 심어둔 기억세포들이 꽤 실력을 발휘한다. 과거에는 어려워서 못하던 것들을 이제는 곧잘 하게 된다.
아, 그래도 돈을 완전히 버리진 않았구나. 그때 샘의 목청과 내 부끄러움이 헛되지는 않았었구나.
새삼 샘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어렵게 시간을 쥐어 짜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운동을 다닌 나에게도 고마웠다.
앞으로 3개월만 혼자서라도 더 해보자.
150만 원짜리 스쿼트가 제 값을 할 때까지.
아자.
*사진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