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이유
지금 성인을 대상으로만 피아노를 레슨 하기 시작한 지 3년이 다 되어간다. 메쉬커피 지하, 그들의 워크룸 한켠에 자리를 잡고 피아노 수업하는 시간을 공유 오피스처럼 쓰기 시작했었다. 상당히 클래식스럽지 않다(?)는 분위기는 내 주변 클래식 음악을 하는 모든 친구들과 교수님들께 모두 호기심이었고 신기함이었다. 한 켠에는 당구대가 있고, 구석에는 전당포 느낌이 나는 사장님들의 사무실이 있고, 또 한편에는 카페 창고와 생두 더미들, 또 한 구석에는 사장님들의 기타와 수북한 책들로 쌓여 있는 그들의 공간에 내가 자리를 틀었다. 그곳에서 나는 카페의 일과와 나의 수업 일과가 병행이 되었다.
러프한 그 공간에서 수업을 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도 됐었다. 처음에는 주변 지인들의 시작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하나 둘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면서 2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그 안에서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다 큰 어른이 피아노를 시작하는 이유 : 한 주 한 시간, 일상에서의 작은 회복.
취미가 필요한 시기. 일상이 중요한 시기. "나"에게 집중하는 시기. 그런 시기를 겪고 있는 시대에 살아가는 것 같다. 2019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성인 취미 피아노 레슨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 지하에서 피아노 수업하는 것에 적응하고, 그 분위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한 둘 모여 점점 학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친구들이 상담하러 올 때면 나는 긴장을 했었다. 혹시 이 분위기가 어려울까 봐, 어색해할까 봐. 심지어 그 공간은 메쉬 커피의 공간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동이 꽤나 잦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분위기, 일탈하는 듯한 색다른 분위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 분위기가 더욱 즐겁게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만들었을까 하눈 생각이 요즘 든다.
지금은 나만의 공간을 꾸려 독립을 했다. 조금 더 아늑한 공간을 꾸며 나왔지만 오히려 전보다 매력은 줄어든 듯하다. 특별하거나 색다른 분위기, 좀처럼 겪어보기 어려운 그러한 공간을 그리워할 때도 있다. 나도, 학생도.
일상에서의 일탈, 루틴에서 새로운 루틴을 만들고 싶어 하는 친구들, 자신을 돌아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나에게 온다. 그들과 50분이라는 시간을 1:1로 붙어 서로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삶을 녹아내는 듯한 시간을 함께 가진다. 성취에 대한 욕구, 삶을 살아가며 악기 하나쯤은 할 수 있는 자신의 미래를 그리는, 그저 일주일에서 자신의 1시간이 쉼이 되길 바라는 친구들, 자신이 좋아하는 한 곡을 꼭 완성하고 싶은 친구들.
자신을 위해서 온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매우 행복하다. 피아노를 치는 그 순간에는 다들 정직해진다. 숨길 수 없는 자신이 발현된다. 욕심이 많은 친구들이 있고, 욕심이 저~~ 엉말 없는 친구들도 있고, 꼼꼼한 친구들, 다 좋아요~~ 하는 친구들, 성격 급한 친구들, 아주 규칙적이고 차분한 친구들, 다양하게 그들의 성격이 짙게 묻어나는 그 시간은 내게 너무 소중하고, 그 친구들 또한 애정 하는 나의 제자들이 되어간다. 다 자란 어른 학생들은 자신보다 어린, 자신과 동갑인, 조금 더 큰 어른인 나에게 선생님이라 하며 자신의 일상과 고민들 마음속 이야기를 공유한다.
다 큰 어른이 피아노를 배운다는 건,
다 큰 어른이 자신의 일이 아닌 삶에서 그다지 쓸 일 없는 일을 배운다는 건, 자신을 매우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손가락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 끙끙대는 모습을 보면 매우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미 자신의 일을 잘 해내고 있는 어른이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받아들이고, 아직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신의 손가락을 안타까워하며 차근차근 피아노를 배워 가는 그 시간은, 그들에게 오히려 회복의 시간이 되어 간다.
바쁜 와중에, 조금은 타이트할 수 있는 주머니 사정에도 꾸준히 음악을 공부하는 그 친구들에게 피아노는 단순한 피아노를 배우는 시간이 아니다. 온전히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간다. 잡생각이 사라지고, 손 끝까지 집중해야 하는 그 시간이 자신을 다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간다. 그 시간을 내게 내어준 내 어른 학생들에게 매우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취미"로 시작한 배움이 자신의 모자람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안 되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기에 배움을 가지러 오는 것이다.
항상 그 시간을 위해 오는 자신의 발걸음에 자신감을 가지길 바란다! 언제든 배우고자 하는 마음과 행동으로 옮겨내는 결단력은 멋진 일이다!
시작함에서 이미 그들은 멋지다!
한 달에 겨우 4시간이지만, 이 시간이 그들에게 쉼이, 영감이 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