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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하영 May 22. 2022

어른 학생들의 음악시간

그저 피아노를 배운다는 것이 아닌,



석사까지 마친 후,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에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크게 고민을 하던 시기였다.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겠는지. 무대에 설 기회가 얼마나 있으며, 내가 무수히 많은 피아니스트보다 뛰어난 게 있는지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열등감에 지금까지의 배움을 내려놓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생각보다 클래식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고 그 어떤 것을 지금 시작해도 평생을 한 음악만큼 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다시금 이 일로 돌아왔을 때, 나의 성향과 잘 맞는 지금의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 피아노를 치러 오는 친구들은 어떤 곡을 배우나요?


리유클래식에 찾는 친구들은 정말 진도가 하나부터 열까지이다.

완전 처음부터 시작하는 친구들,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가는 친구들, 가벼운 뉴에이지나 영화음악을 배우는 친구들, 어린 시절 가장 싫어했던 체르니를 배우는 친구들, 여러 작곡가들의 클래식 작품들을 배우는 친구들까지 있다. 생각보다 한 곡만 완성하겠다고 오는 친구들은 매우 적다.


리유클래식에서의 음악 장르의 비중을 두자면 대부분 진짜 “클래식음악“을 찾아가게 된다. (선생님의 세뇌인가 (^~^;)ゞ)

일단 기본적으로 체르니를 많이 추천한다. 어린 시절 누가 체르니를 좋아했으랴, 나 또한 그 시절 체르니는 좋은 기억이지 못하고, 어떤 음악인지 모르고 시켜서 했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 다시 성인들을 가르치면서 체르니의 본질을 알게 되었다.


체르니는 보통 바이엘을 치고 그다음 단계를 넘어갈 때 시작하게 된다.

순서는 체르니 100 -> 체르니 30 -> 체르니 40 -> 체르니 50까지 있다.

(바이엘과 체르니 모두 사람 이름인 것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 <)

성인들이 피아노를 배우게 되면 무조건 간단한 곡을 위주로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걸 선호하거나 추천하지는 않는다.

학생이 먼저 상담을 오면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들이,

“목표”와 “동기”이다


단기로 한 곡을 끝내고 싶은 것인지, 어떤 이유로 찾아왔는지,

또한 어떠한 곡이 목표인지, 매주 피아노 한 시간 치는 것 자체가 목표인지, 등등

거의 대부분 학생들은 이 시간, 매주 한 시간의 취미를 갖기 위함과 장기적 봤을 때 ’ 악기를 다룰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온다.

이런 학생들에게 체르니를 추천한다.

-기본을 다지고 싶은 친구들

-맑고 깨끗하고 깔끔한 것들을 좋아하는 친구

-차근차근 해내서 장기적으로 악보를 보고 스스로 치는 능력을 기르고 싶은 친구들


리유클래식은 정말 클래식 음악을 이야기한다.


특히 체르니를 수업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체르니 100번은 정말 엄청난 책이다!!


사실 새로운 곡을 들어갈 때 제한을 두지는 않는다. 영화음악도 많이 추천해주고 뉴에이지도 추천을 해주지만 그들의 선택이 클래식이나 영화음악쪽에 더 기울기는 한다.


“클래식 음악”이라 하면 고전시대에 만들어진 음악을 기본으로 꼽을 수 있는데 이때 음악의 특징은

“주제”의 “제시”와 그 주제를 ”전개 및 발전“을 하고 자시 주제를 ”재현“한다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음들과 반복되는 구조형태 덕분에 손가락의 테크닉을 기르는 오랜 시간의 훈련이 무조건 필요한 음악들로 만들어져 있다.

“음”으로만 작품의 색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음들이 별처럼 쏟아진다.

“음”으로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아티큘레이션”이 필요하다.

*아티큘레이션 articulation : 본디 ‘분절, 명료’를 뜻함. 각각의 단위(이음줄이나 기호들로 묶인, 작은 모티브 형태)에 의미나 모양을 만들어내는 연주 기법

하나의 문장 구조 같은 틀을 이루고 있는 음악을 만들기에 있어서 아티큘레이션은 아주아주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음의 숨, 확장과 더불어 다양한 악상으로 감정적 표현을 가지기도 한다.

“음”으로 그야말로 “말”을 한다.


이러한 가장 기본이 되는 여러 테크닉을 짤막하게 한 대 모아놓은 책이 체르니 100번이다! (갑자기 체르니 홍보?(( ಠ‿ಠ))

실제로 지금까지의 학생 중 기초를 다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이 체르니를 쳤고,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깔끔하고, 규칙적이고, 나름의 간단하고 귀엽고 이쁜 선율도 가지고 있어 하나씩 클리어할 때마다 나름의 보상과 쾌감이 있는 것 같다.

(100개를 정말 다 치고 있다는 사실 ^^)


클래식 피아노를 배우는 과정에서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자신의 손가락의 끝이 어떠한 감각이 있는지도 느낄 수 있지만, 역사와 음악의 다양성도 볼 수 있다. :)

클래식 음악의 큰 골격 같은 주제와 패턴, 전개방식과 그 안에 촘촘히 짜인 어느 것 하나 이유 없이 존재하지 않는 여러 기호들을 통해 패턴 또한 파악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조금 진도를 나간 학생들은 쇼팽, 베토벤, 드뷔시, 리스트 음악 등 여러 작품을 만나게 된다.

클래식 음악에는 매우 많은 장르가 있다. 꼭 길고 어려운 대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짧고 서정적인, 자유롭게 쓰인 소품들이 꽤 많은데, 나는 그러한 여러 곡을 찾아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가르친다. 그렇게 하나씩 자신의 클래식 음악을 만들어가는 친구들은 자신이 친 곡을 플레이리스트에 넣어 듣는다.

그리고 그들은 이야기한다.

“내가 쳐보고 들으니까 처음 들었을 때와 매우 달라요”


알고 들어야 더욱 재밌다는 클래식 음악은 실제로 소리를 직접 내고 악보를 뜯어보고 들으면 더욱 와닿는 게 사실이다.

그들이 그것을 느꼈다는 사실에 나 또한 큰 쾌감을 갖는다.


언어가 없이 음으로만 주어진 이야기들은 스스로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사랑, 위로, 안정감, 열정 등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한 음악으로 주는 이야기는 “이음줄, 쉼표, 다양한 종류의 스타카토, 악상, 빠르기의 변화와 틈틈이 적혀 있는 음악용어”들로 인하여 평소 해보지 못한 표현의 시도를 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한 번씩 시도를 해보고 성공을 맛보며 조금씩 자신감이 붙고 음악의 언어를 작게나마 이해하며 재미를 찾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최근에 어떤 학생은 정말 들어보지 못한 작곡가의 들어보지 못한 곡을 추천받아 레슨 받게 되었다. 앞서 언급된 “Jean Sibelius”의 “Elegiaco”라는 곡을 친 학생이 새로운 곡을 들어가고 난 뒤에도 그 곡을 계속 치며 후기를 들려주었다.

“엄마한테 들려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세요, 지금 하고 있는 곡이 어려운데 연습하다가 힘들 때마다 이 곡을 다시 쳐보며 힐링하고 있어요”


너무 감사한 일이고, 기쁘고 일에 대한 성취감이 생기는 순간이다. 이 친구가 곡을 처음 접할 때에 전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음에 답답해 했는데 자신만의 곡에 대한 이해도가 생기면서 그 곡을 자신의 곡을 만들었다.


클래식 음악은 배우기 어렵다. 한 곡을 완성하기엔 인내가 필요하다. 연습을 하는 친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다. 어려워도 좋아하는 그들이 나 또한 신기하지만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고 잡생각이 사라진다는 이야기에는 어느 정도 공감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성취”에 대한 심리가 가장 크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성부의 선율을 찾는 재미, 숨겨진 음악기호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지켜가며 변화하는 음악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 음악마다 다른 색깔의 흥미로움 등

물론 아직 체르니 100부터 쪼꼼씩 단계를 밟아나가는 친구들부터 바이엘부터 시작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이들 모두 음악을 같이 배워간다.

계이름만 치는 것은 원치 않다. 그게 리유클래식의 수업방향이이다. 이왕 피아노, 음악을 시작했으니, 조금은 더 음악적으로, 숨겨진 나의 예술성을 찾으려고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나는 그들의 대나무 숲이 되어줄 수 있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외향적이고, 공감을 잘해주지만 어느 정도 망각의 기운이 강한 나는, 나의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에 적합한 존재였다. 그들은 마음 한편에 무거운 그러한 이야기들을 나에게 가지고 온다. 나라는 위치는 그들의 일상에서 겹치지 않으며, 공통된 접점이 없기에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대나무 숲 같은 존재일 수 있었다. 회사의 이야기, 자신의 현재 가지고 있는 비전에 대한 이야기, 고민들,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 사랑이 끝나는 이야기,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이야기, 혹은 너무 자랑하고 싶지만 주변을 생각해야 해서 못하는 자랑들, 그저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 시시콜콜한 이야기 등.

나는 피아노 수업 시간에 그들의 일상을 보고 듣고, 느낀다. 눈물을 보기도 하고, 세상 밝은 표정이나 웃음을 볼 수도 있다.


어른을 수업한다는 것은 오히려 아이들보다 보듬어 줄게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그들과 친구가 되어가기도 하고, 그저 배움의 시간이 아닌 그들에게는 일탈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나는 학생들과 맥주 한 잔 하며 수업을 하기도 하는데, 그들은 거기서 꽤나 짜릿함을 느끼는 것 같다. 그렇지만 멀쩡한 정신에도 손가락이 비틀거리는 그들에게 적은 알코올의 맥주는 소주 2병 마신 듯 한 정신을 선물해준다. 몇 번은 재밌어하다가 결국 수업 전에는 '안 마시는 걸로' 변경이 된다. (정 기분을 내고 싶은 학생은 논알코올 맥주를 사 온다٩(  )و)

대신 수업이 끝난 후 시간이 여유가 있을 때에는 수업 후에 한 잔씩 하기도 하고, 맛있는 디저트를 함께 하기도, 마음이 잘 맞는 학생과는 같이 전시를 가거나 닭발을 먹기도 한다 ^^.


 나에게 피아노를 배우는 친구들의 성격과 직업, 성향은 다들 다르다. 그들의 루틴도 다르고, 포인트가 다르다. 그러한 부분이 상당히 잘 반영된 답변들이었던 것 같다 ^^ 그럼에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들은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나를 위한 시간. 그리고, 단순하게 배운다는 즐거움.

사실 나도 최근 들어 스승의 날을 빌어 대학원 교수님을 만나 뵀을 때, 다시금 피아노 레슨을 받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배움에 목마름이 느껴지기 시작했었다. 누군가에게 어떤 방향의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피아노를 배웠지만 그럼에도 처음 보는 악보는 다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배움을 갖는다는 것.

사회에 뛰어들어 누군가에게 순수하게 배운다는 것 없이 오롯이 홀로 결정하고, 배워나가야 하는 어른들에게 자신의 작은 방향을 잡아주는 선생님이 있다는 것이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은 명예퇴직하신 내 마지막 교수님께 미국에 다녀오시는 일정 뒤에 레슨을 받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혹여나 귀찮아하실까 염려했는데, 너무 반갑고 흔쾌히 좋다 하셔서 그 자리에서 눈물이 날 뻔했다.

음악을 평생 했어도 모든 지점에서 스스로를 의심하고, 맞는지 확인하고, 불확실함에 있어, 사실 선생님의 역할은 그저 "이 길로 가"라고 확신하는 대답 하나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모르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야 너무 당연한 역할이지만, 필요할 때 '잘하고 있어' '이게 맞아' '한 번 더 고민해 봐' 같은 간단한 티칭만으로도 우리는 더 큰 걸음을 할 수 있다.


지인이 나에게 물었다. 이렇게 해서 돈을 벌 수 있냐고, 학원처럼 운영할 생각은 없는지.

전혀 없다. 나는 이렇게 다양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 즐겁고, 어디 가서 자기 할 일 똑 부러지게 잘하는 다 큰 어른들이 이곳에 와서 자신의 손가락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음에 화를 삼키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고 ^^ 하나하나 성취해나가는 그들의 음악을 감상하자면 매우 흐뭇하고 뿌듯하다.


어떤 일에서건 자신의 믿음이 흔들리거나, 불확실함을 느낄 때에는 자신의 일과 상관없이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을 두는 것을 추천한다. 자신과 잘 맞는 선생님과의 만남에서 함께 하는 호흡에 조금은 안정감을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한 주, 하루, 한 시간 - 그들의 일상의 작은 회복의 시간을 위하여!


건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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