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드 덕후와 영웅 덕후
"엄마, 엄마, 이번에 배트맨에서 나오는 차 있잖아, 그 차는...."
배트맨이고 슈퍼맨이고 간에 나는 결혼 전에 영웅이 나오는 영화를 즐겨 보지 않았었다. 디씨나 마블에 어떤 영웅이 있는지 내가 알 게 무엇인가. 실제도 아닌데.
그러나 지금의 나는 이제 영웅들을 회사별로 나누어 볼 수도 있으며 각 연도별 영화의 주연과 감독, 그리고 특징도 다 알게 되었다. 각 영웅들의 무기가 어떻게 진화되거나 바뀌는지도 알게 되었으며 그들의 가족 관계도 안다.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과 슬픔도 공감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제는 그 영화가 만들어진 배경에 대한 다큐까지도 본다.
"엄마, 그 귀뚜라미는 이렇게 뒷다리를 떼어서..."
집에 도마뱀 친구가 왔을 때 귀뚜라미 조리법을 설명해주고 실습시켜주는 아드님이다.
아이가 동물을 좋아하기에 우리는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개구리, 올챙이를 구경했다. 그리고 키울 수 있었던 동물과 곤충은 다 키워보았다. 결혼 전에는 벌레를 잡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이제는 각각의 곤충들의 특징과 어디를 잡으면 되는지를 실습했으며 집 안을 뛰어다니는 개구리나 탈출한 도마뱀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이입과 듣기는 나의 취미이자 특기이다. 심지어 너무 심하게 이입하는 경우가 있어서 주의를 요할 때도 있을 정도이다. 상대방은 원하지도 않는데 너무 심하게 공감하면 큰 일 아닌가. 그래서 늘 조금은 조심해야 한다고 나 자신을 경계하며 지내곤 했다. 하지만 아들의 경우는 달랐다. 아들이 싫다고 하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이상 내 자유니까. 나는 줄곧 아이 곁에 붙어 있으면서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게임을 하고, 만화책도 서로 추천해주며 지냈다.
이것은 일방적인 것은 아니었다. 아이도 내 이야기를 참 잘 들어준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사랑 이야기를 아이가 다 이해를 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해하려고 하는 모습이 귀엽다. 어떻게 보면 다 큰 남편보다도 더 잘 들어주고 이해해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남편은 자기 얘기가 너무 많아서 내 이야기에 집중을 잘 안 할 때가 많거든. 아마 다음 차례에 자신이 할 이야기를 생각해 내고 있는 듯할 때가 많다. 남편은 공감형이라기보다 출력형이다. 다행히 아직 아이는 내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한 명이라도 들어주니 그게 어딘가.
조금 있으면 아이는 내 이야기를 잘 들으려 하지 않고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잘 안 하게 될 수도 있다. 지금도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을 좋아하고 아이들끼리 나누는 대화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항상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서 공감해주려고 노력한다. 적어도 그러면 나중에 소통이 덜해지더라도 그 추억으로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면서.
나는 ‘중국 드라마 덕후’, 아이는 '동물 덕후' 그리고 ‘영웅이 나오는 영화 덕후’이다. 비록 우리는 같은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존중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해 줄 수 있다.
"엄마, 그때 그 남자 주인공은 어떻게 되었어?"
아들은 사실 크게 관심이 없을 텐데도 나에게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묻곤 한다.
우리는 참 협조적인 덕후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