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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애 Jul 09. 2022

교사와 학생 사이

무슨 사이일까요?

내가 한 여자 고등학교의 교사로서 일 할 때였다.

그 당시 교장 선생님께서 복도를 돌아다니시며 수업시간에 졸거나 자는 학생들이 있으면 보시고 그 아이들이 자는 것은 다 선생님이 수업을 재미없게 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었다. 교장선생님께서 너무 자주 돌아다니셔서 은근히 부담이 되었다.


물론 아이들이 자는 게 다 내 탓이라고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당연히 그런 요인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기 때문에 좀 더 수업도 신경 쓰려했고, 자는 아이들도 깨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다짐을 한 첫날 내 수업 시간에 맨 뒷자리의 학생 한 명이 아주 제대로 자고 있었다. 당시 그 학교에서 근무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아서 그 학생과 나는 그렇게 친한 관계는 아니었다. 어떻게 할까 좀 망설이다가 나는 뒤로 가서 그 아이를 불러서 깨우려다가 실패하고 흔들어서 일어나게 했다. 그러자 일어난 그 학생은 나에게 소리를 빽 지르는 것이 아닌가.


“아, 왜 자꾸 깨우고 난리예요!”


아니. 적반하장 유분수지.


나는 확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최선을 다해 누르며 그 아이에게 “뒤에 나가서 잠이 깰 때까지 서 있어.”라고 말했다. 다행히 그 아이는 더 이상 격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퉁퉁거리며 뒤로 나갔다. 나는 속으로 반항이 지속되지 않았음을 감사하며 수업을 계속했다.      


그 수업이 끝난 후 교무실로 돌아갔는데 그 아이의 친구가 따라와서 그 아이는 생리통이 심한데, 그날이 바로 그날이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겠는가.


 미안한 마음이 들다가도 오만가지 자기 합리화가 내 머릿속을 맴맴 돌았다. 나는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을 깨울 의무가 있다, 교장선생님이 깨우라 했다. 등등.


그러나 나의 양심은 합리화를 이겨냈고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초콜릿을 사서 편지지에 '선생님이 수진이(가명) 생리통인 것을 몰랐어. 많이 아프고 힘들었을 텐데 뒤로 나가서 서있으라고 해서 미안해. 다음부터는 먼저 얘기해주면 좀 더 센스 있게 대처할 수 있을 거야.'라고 썼다.


 혹자는 내가 미안할 것이 뭐 있었겠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도 생리통이 심한 사람 중 하나로서 그 상황이 좀 이해가 되었고, 일단 내가 그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먼저 할 수 있게끔 해주는 편안하고 좋은 교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나는 다음 날 쉬는 시간에 기회를 포착하여 그 아이를 불렀다. 그 학생은 처음에는 내가 불러내자 묘한 표정을 했지만 편지와 초콜릿을 받고는 싱긋 웃었다. "쌤, 저도 어제 일 죄송해요."


  사실 사과를 받아들이고 아니고는 상대의  마음에 달려있다. 내 마음도 어찌 못하는 판국에 다른 이의 마음을 어쩌겠는가. 그러나 그 아이는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었고 친하지 않았던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한 학기쯤 지났을 때였다. 하루는 그 반에서 수업을 하는데 갑자기 정말 머리가 하얘지는 생리통이 찾아왔다. 나의 생리통도 유별났다. 밑이 빠지는 듯한 고통이 엄습하면서 나는 갑자기 주저앉았다. 아이들이 나에게 왜 그러는지 물어왔다.

"미안, 오늘 생리통이 너무 심하네. 미안한데 몇 분만 기다려줄래?"

나의 이마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물론 아이들은 수업하지 않고 쉬는 것을 더 좋아했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때였다. 누워있다가 나에게 혼났던 그 아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 아이는 조금 후에 손에 무언가를 들고 나에게 와서 내 손에 그것을 쥐어주었다. 따뜻한 물을 넣은 팩을 수건에 싼 것이었다. 그것을 받아 든 나는 마음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용기를 내어 사과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특히 상대가 나보다 아랫사람이라고 생각되면 더 인정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전적으로 내 잘못이 아닌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솔직히 보여주면 상대방도 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나는 아이들을 아직도 가르친다. 나는 선생님이지만 그 아이들이 나의 선생님이기도 하다. 그리고 학생들은 보통 내게 좋은 친구들이 되어준다.

  그래서 교사와 학생은 ‘참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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