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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에 즈음하여

기대에 기대는

by 정이든

저는 지구 한켠의 타국에서 긴 휴가 중입니다. 휴가 중에도 주말 브런치 업로드를 하겠다며 비행기에 노트북을 들고 탔습니다만 좌석화면에서 코미디 영화를 터치하는 바람에 정신이 팔려 노트북은 켜지도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거기서 끝냈어야 했는데, 오프라인 휴대폰 게임 끝판을 깨고 한참을 졸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노트북 전원버튼은 끝내 누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부캐로 부려먹던 작가의 페르소나가 ’ 휴가 중인데 뭔 글쓰기냐 ‘며 파업을 하는 모양입니다. 직장인 정이든뿐만 아니라 작가 정이든도 아마 휴가가 필요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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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가 임박한 지난 몇 주간은, 피곤한 날에도 바쁜 날에도 휴가가 주는 기대감에 버틸만했었습니다. 간만의 긴 휴가였거든요. 조금만 지나면 휴가다!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에너지가 펄펄 나왔다니까요?


그렇게 기다렸던 휴가를 왔으면 신나게 휴가를 만끽하면 되련만, 웬걸요. 막상 휴가를 온 며칠 동안 너무 많이 걸어서인지 집에 가서 잠이나 푹 자고 싶은 마음도 쪼오금 있습니다.


그 와중에, 남은 휴가시간이 줄어들 때마다 못내 아쉽습니다. 이제 휴가가 끝나면 더 기대할 것이 없으니 그때는 무엇을 동력 삼아 지내야 할까 내년도 비행기표를 미리 알아볼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은근히 휴가가 주는 기대감에 제가 많이 기대고 있었나 봅니다.


기대라는 녀석에 기대는 제 모습을 고백하는 것은 도파민에 대한 나의 무기력함을 인정하는 꼴이라 참 모양 빠지는 일입니다. 하지만 살면서 곁눈질해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기대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더라구요. 나름의 살아가는 요령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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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님들께서는 무엇을 기대하시나요? 또는 무엇에 기대어 지내시나요? 다들 시간의 밀물에 밀렸다가 썰물에 쓸리지 않는 다른 나름의 요령이 있으시겠지요. 어떤 방법이든 그것이 정든님들의 하루를 잘 지탱하길 바랍니다.


아, 저는 가끔 그런 생각도 합니다. 기대에 기대지 않는, 그러니까 너무 큰 기대 없이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 제가 실은 욕심이 많은 캐릭터라 쉽지만은 않습니다만 노력하고 있으며 지향점은 그렇습니다. 그래야 불쑥 찾아오는 작지만 소소한 행운들을 만끽할 수 있을 테니까요.


기대 없이 찾아간 식당에서 미소가 절로 번지는 맛난 음식을 먹는다거나, 잃어버린 줄 알았던 신용카드를 지난주 벗어둔 외투에서 찾는다거나, 뜻밖의 곳에서 칭찬과 감사의 말을 듣는다거나 하는 행운들.


우리 모두에게 그런 행운들이 빈번하기를 기대하며, 저는 그럼 다시 휴가를 즐기러 가겠습니다. 다음 주에 만나요!


한 카페에서 찾은 재미있는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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