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 소나기가 하루에 몇 차례 미친 듯이 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10분 만에 청계천 물이 범람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날씨가 변화무쌍한 요즘입니다. 극한의 여름과 겨울을 견뎌낸 사람들만 한반도에 남아 있어서 사람들이 모두 독하다고,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 기억납니다. 사람들이 더 독해 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2.
이렇게 말하면서도 저는 한국인의 DNA를 잘 활용하여 독하게,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오랜 기간 정들었던 부서를 떠나, 다른 조직으로 이동하게 되었거든요. 8월 말에는 1주일 내내 송별회가 있어서 간이 남아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바쁜 와중에도 책을 몇 권 읽었고 헬스와 러닝도 틈틈이 했습니다.
3.
반성합니다. 많이 벌리지 말고, 하루에 '꼭 해야 할 7개'만 정해서 실천하라는 (평소 사람의 기억력은 7개가 한계라고 하네요) 어느 책의 문구에 격히 공감했던 저입니다. 그런데 어제의 투두리스트에는 크고 작은 할 일이 20개가 넘어갔습니다.
4.
이럴 때일수록 의식적으로 쉬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봅니다. 멈출 줄 모르면, 언젠가는 뛰고 싶어도 뛰지 못하게 됩니다. 지속가능경영은 회사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적용되어야 해요. 무의식적으로 계속 달리다 보면 어디든 고장이 나게 마련입니다.
5.
제가 생각하는 의식적으로 쉰다는 것은, 모든 생각과 연락,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Off 하고 '나 지금부터 쉰다'라고 스스로에게 선언하고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한 팀장님께서는 "나는 퇴근하면 뇌를 따로 빼뒀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회사 생각이 하나도 안 나더라고요." 하셨습니다. 저는 그 방법에 굉장히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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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험공부나 월요일 아침에 회사를 출근하는 일, 쌓아 둔 설거지와 같이 수없이 많은 의무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오니까요, 쉬는 시간을 확보해 두고 쉬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저 자신에 대한 나름의 책무일 것입니다.
7.
삶이 빛나는 순간은 일상에서 채우고 즐기고 느끼는 것에서 옵니다. 산책길에 마주한 작은 꽃,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와의 묵혀둔 수다, 5km 러닝을 끝마치고 심박수를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 그런 순간이 더 많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쉰다 = 누워서 유튜브 쇼츠를 본다' 였던 제가 어제 저녁 무작정 나와서 동네 산책을 해 보았습니다. 날이 조금은 선선해진 것이 가을이 오긴 오려나 봅니다. 비가 온 후 맑은 공기가 폐로 들어가는 느낌이 좋습니다.
8.
산책을 하면서, 부서 이동을 하며 인사를 나눴던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거의 100명 넘게 직접 만나 인사를 건넸는데요, 한 명 한 명 악수를 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직무는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출근하는 사무실이 바뀌게 되어 인사할 분들이 많았습니다.) 아쉬워하는 분들을 보니 마음도 짠하고 그래도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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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몸이 멀어지면, 결국 마음도 멀어질 것입니다. 제가 그걸 원한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만,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 매일 마주치지 않는다면 관계를 계속 이어가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회사뿐 아니라 살면서 다들 그런 경험을 하잖아요? 학교를 졸업할 때, 동아리나 모임에 들어갔다 그만둘 때, 군대를 제대하면서 등등 다양한 순간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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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제가 이제 다시 관계를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100명이 추가된다면? 저의 유한한 에너지와 시간으로는 모든 이를 챙기기에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인생에서 누적적으로 스쳐 지나간 수천 명의 사람들과 계속 연락을 취하고 교류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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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거나, 누군가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 순간에라도 진심과 최선을 담아 상대방을 대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시간이 지났다고 하여 관계가 퇴색되거나 어색해지는 것이 아닌, 그간의 라포를 잘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낼 수 있게 말입니다. 더불어, 삶을 바라보는 이타성의 각도를 조금 더 넓히고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외에 제가 더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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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최근에 든 생각이 있어 공유합니다.
사람들은 정규분포 안에 속하는 사람에게서 안심을 얻곤 합니다. 평균 근처의, 다수에 속하는 모습이 익숙하고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란 것도 사실은 각자의 경험과 편견이 만든 편향(bias)이 반영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간혹, 그 범위를 벗어난 사람들을 이질적이라며 쉽게 단정하고 배척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제가 가장 경계하는 마인드셋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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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단순한 한 줄의 그래프에 담기엔 너무 복잡한, 수많은 차원의 존재입니다. 그래도 편의상 0에서 100까지의 직선 위에 사람을 배열하고 평균적인 사람을 50이라고 한다면요, 사회적으로는 50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안전하다고 믿을 것입니다. 정규분포 곡선으로 따지면 아래 16%와 위 84% 사이의 사람들은 '보통의 사람'으로 다수성과 주도권을 갖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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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10에 있는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90에 있는 사람이 충분히 ‘괜찮은 사람’ 일 수 있습니다. 기준은 늘 상대적이니까요. 게다가 사회의 발전이나 혁신을 위해서는 0~100까지의 다양성을 통한 정반합도 필요한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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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누군가에게는 ‘정규분포 밖의 사람’ 일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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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주간 여행 때문에 요가를 쉬었다가 다시 시작했습니다. 햄스트링이 뻣뻣해져 다시 처음 시작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너무 쉬기만 해도 안 되겠습니다. 의식적으로 쉴 줄 안다는 것은 의식적으로 다시 뛸 줄 안다는 의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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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분포 안에서든 밖에서든, 사람은 결국 서로의 삶에 잠시 머물다 스쳐 갑니다. 중요한 건 그 순간마다 진심을 다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평균적이고 투두리스트로 가득찬 하루만으로 인생이 빛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쉬고, 느끼고, 그리고 다시 뛸 수 있게 스스로를 돌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