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과 조금이라도 더 근접한 표현을 내뱉으려 노력한 적이 있다. 하지만 생각은 연기 같아서 잡으려 할수록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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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카페에서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회식 장소가 고민이라는 친구의 말에 근처 호프집을 추천해 주려던 참이었다. 기억을 더듬던 내 의식은 덕수궁 근처 정동길 한 술집으로 향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가 봄이었나 가을이었나...날씨가 선선했고 퇴근 후 저녁 어스름한 시간이었다. 번잡한 시청 앞 대로를 지나 덕수궁 옆 골목으로 들어갔더니 거리의 분위기가 차분하게 바뀌었던 기억이 났다.
회상은 계속 이어져, 나는 사람들과 덕수궁 옆길을 지나 정동길을 걸어 호프집에 도착했다. 그날 매장의 분위기와 음악소리, 적당히 따끈했던 감자튀김의 맛과 맥주의 크리미함이 머릿속에 순차적으로 등장했다. 나는 떠오른 장면들을 친구에게 드문드문 묘사해 주었다.
그 순간을 100% 나의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 글로 쓰기에도 너무 어려운 일이다. 지금 다시 그날의 분위기와 온도, 바람, 주변 소음 같은 것들까지도 상기해보려 했으나 쉽지 않다. 떠오르는 이미지가 대부분 간헐적이고 파편적이다. 몇 년 전 평범한 하루의 소소한 디테일까지 떠올리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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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아, 친구에게 블로그 후기까지 찾아 보여줬다. 친구가 만족해하며 회식장소로 사람들과 얘기해 보겠다고 했다. 열심히 회식에 불려 다닌 보람(?)을 느꼈다.
이제 역할을 다한 그날의 장면은 퇴장할 차례였지만, 혀 끝에 감튀의 짭조름했던 여운이 남아서인지 내 머릿속에서는 추억여행이 계속 이어졌다. 유튜브 다음 추천 동영상처럼 그날의 회식 장면이 계속 재생된 것이다. 나는 다시 술집에 앉아 거품이 그득한 맥주잔을 잡으려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웬일일까. 내밀었던 손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는 어느새 노트북 마우스를 잡고 있었다. 다음 주에 보고할 중요한 보고서가 갑자기 생각난 탓이었다. 사무실에서 이리저리 짜깁기하는 내 모습이 떠올라 머리를 도리도리 저었다. 리모컨을 누른 적도 없는데, 예능채널이 갑자기 다큐채널로 변한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 친구의 말들이 소나기처럼 차창을 두들겨 대어, 나는 다시 친구와의 대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대화의 와이퍼를 켜고 정신을 차리는 난리통에 맥주잔과 마우스는 모두 휘발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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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생각을 일관성 있게 떠올리고 유지하는 것은 고난도의 공정이다. 한발 나아가 말로써 분명하게 설명하는 것은 더 어렵다. 장면의 선명함과 표현의 명료함을 찾으려고 하면 깜빡이 없이 끼어든 생각들이 훼방을 놓기도 한다.
그래서 내 생각을 평소에 또렷하게 조각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더 중요하고 또 어려운 것은, 그것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중언부언하지 않고 짧은 몇 마디로 상대에게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다. 수다스러운 내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단순명료'라는 말처럼, 명료함은 단순함과 맞닿아있다. 단순해야 명료할 수 있고, 명료해야 단순할 수 있다. 책 한 권을 몇 마디 말로 요약하기는 언뜻 보기에 쉬워 보인다. 하지만 책 내용을 온전히 이해해야만 비로소 몇 마디 단어만으로 책을 대체할 수 있다.
내 생각이 상대방에게 선명하게 전달되었음을 느끼고, 마음속에는 작은 희열이 피어오른 경험이 있다. 그런 순간에는 상대방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의 대화는 마음과 입을 거쳐 정제한 덕분에, 텔레파시 같은 직접적인 방식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고 상호호혜적일 수 있었다.
타인과 명료한 생각으로 단순하게 연결되는 지점이 좋다. 그 찰나에야말로 우리는 삶의 단순한 의미들을 겹쳐 쌓아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볼 수 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