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툭 차다가 문득
11월도 벌써 2주 가까이 흘렀습니다. 시간은 왜 이리도 빨리 흐르는 것일까요. 정신을 차려보면 금방 또 한 달이 지나 있어서 깜짝 놀라곤 합니다.
완연한 가을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가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공기가 맑아져 드디어 가을이 왔구나 하고 회색 카디건을 꺼낸 게 엊그제 같은데, 조금만 더 지나면 두꺼운 파카를 입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날씨를 종잡기란 참 어렵습니다.
사람들의 다양한 옷차림에서도 변덕스러운 날씨가 느껴집니다. 카페에는 반팔을 입은 사람과 두터운 플리스를 입은 사람들이 공존합니다. 카페의 온도는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아 적당하지만 그것은 제 기준일 뿐입니다. 누군가의 기준에는 덥거나 추운 온도인가 봅니다.
가을자락, 공원을 산책하며 땅에 떨어진 낙엽을 괜히 발로 툭 차 봅니다. 햇빛을 받아 바스락하고 잘 마른 낙엽은 차는 맛이 있었는데, 음지에서 물기를 머금어 축축해진 낙엽은 신발에 들러붙어 차기가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면, 한 해도 미처 채우지 못하고 떨어져 그늘에서 축축한 진흙과 하나가 된, 가여운 낙엽입니다.
뜻대로 안 된다고 하여 질척거리던 철없던 언젠가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발길질에 상처받았을 낙엽의 마음을 마음 속으로 잠시 위로하였습니다.
갑자기 쌩- 하고 바람이 불었습니다. 마른 낙엽들이 속절없이흩날립니다. 반면에 젖은 낙엽들은 바닥에 찰싹 붙어 견고합니다. 축축함을 무릅쓴 보람이 있겠습니다.
바람이 계속 불어대어 외투 지퍼를 목까지 올리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리 춥지 않게 느껴지던 날씨는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괜찮겠지, 하고 야외에서 오래 버티다가는 집에서 콧물을 흘쩍거릴게 뻔히 보입니다.
근처 카페에 들렀습니다. 으슬거림에 따뜻한 라떼를 주문했습니다. 아이스만 마시던 저도 이제는 제법 따뜻한 커피를 찾아 마십니다. 마음이 뜨거울 일이 줄어서일까요, 아니면 커피를 식혀 마실만큼의 여유는 생긴 덕분일까요?
저는 가을을 좋아합니다. 봄의 따뜻함도 좋지만, 겨우내 얼어붙은 몸과 마음에 경계심이 생겨서인지 봄의 온기는 마음을 한 번에 주기 어렵습니다. 대신 가을은 애매하지 않고 또렷하여 그 상쾌함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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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을 찾아주신 정든님,
정든님께서 좋아하는 계절은 언제인가요? 오늘은 그 계절 하면 떠오르는, 당신의 행복했던 순간을 잠시 돌이켜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은은하게 차오르던 그날의 분위기, 온도, 소리라든지,
찬란한 순간을 함께해 준, 눈만 마주쳐도 마음을 알아볼 소중한 사람들,
슬로모션 영상처럼 짧고도 긴 찰나의 감격과 환희,
웃음, 열정, 혹은 감사함이 교차하던 마음의 흔적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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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자락입니다.
계절을 핑계 삼아, 잊고 지내던 따뜻한 기록들을 하나씩 꺼내보며 월동준비를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