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지지 않을 글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하고 싶은 말을 끄적여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썼던 글을 읽어보고 완벽하지 못함에 스스로 서운한 날이 많다.
그래도 글을 써 보겠다며 짐짓 몰두하는 것은 조금이나마 걸음을 앞으로 옮길 수 있다는 증명으로써 유의미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의미를 설명할 수 있으며 언제든 붙일 수 있는, 내가 가용할 수 있는 포스트잇 한 장이기에 소중하다.
왜 글을 쓰냐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질 용기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듯, 쓰고 싶어 쓸 뿐인데 말이다. 이유는 나중에 찾아도 된다는 합리화에 묻혀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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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온다. 계절이 수십 번이나 바뀌는 동안 회사일을 통해 나의 쓰임새를 매번 증명해 내던 과정은 글쓰기와 닮아 있다. 증명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글을 쓰고 밤이면 잠이 들겠지만 다시 눈을 뜨고 다시 글을 쓸 것이다.
읽히지 않는 글은 지나간 계절과 같다. 내년의 봄은 올해의 봄과는 다르다. 완벽히 되풀이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은 지나간 봄을 다시 기억하지 않는다.
읽히지 않을지언정 무언가를 쓸 수 있음에 감사하다. 항상 한 자리에 서 있는 나무처럼 계절이 지나면 나이테가 늘겠으나 모든 존재들과 함께 변화하는 순간을 목도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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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회사는 항상 어수선하다. 인사 업무를 하는 내게 연말 인사시즌은 매년 더 그랬다. 이 때는 다들 바람에 펄럭이는 포스트잇 같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누군가는 구겨질 것을 알기에 항상 마음 아픈 시즌이다.
찬 바람을 고대하던 더운 여름을 기억한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열정이 타오르고 숨차도록 달렸을 것이다. 그렇게 한 호흡 한 호흡이 모여 보통의 하루를 쌓아 여기까지 왔다. 싱숭생숭할 사람들의 마음에 평온이 깃들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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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 보니 배가 고프다. 오늘은 치킨을 시켜야지. 치킨은 항상 옳다. 잊을만하면 먹고 싶다. 쓰임새가 있는 것이다.
구겨지지 않는 치킨 같은 글을 쓰고 싶다. 이왕이면 OO집 양념치킨처럼 스테디셀러면 좋겠다. 또는 상큼한 치킨무처럼, 없으면 아쉬운 글이라도 충분하다.
AI가 수천 개의 포스트잇을 찰나에 붙여내는 시대다. 그렇지만 걔네는 치킨 맛을 모르겠지? 메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