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에 몰입하는 경험을 함께한 사람과의 동질감에 대해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장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는 관객들의 표정에는 평소에는 보기 힘든, 무언가에 홀린 듯한 몰입이 느껴진다. 때로는 감정이 격해져 울기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며 비명을 지르며 순간을 즐긴다.
비루하고 냉랭한 현실을 잠시라도 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몸과 마음을 일치시키는 이 순간을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비싼 돈과 시간을 지불한다.
꼭 공연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놀이터에서 해가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지치지 않고 놀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이나, 맛있는 고기 한 점을 싸서 입에 넣고 소주를 한잔 들이켜고 캬~하는 웃는 듯 찡그리는 듯한 표정을 짓는 회사원의 모습, 조기 축구회에서 얼떨결에 골을 넣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으로 만세를 부르는 아저씨의 모습에서 우리는 평소와는 다른, ‘환희’의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언제였을까 나는, 그렇게 마지막으로 환희했던 날이.
문득 몇 년 전 크리스마스 직전 파티룸을 빌려 직장 동료들과 함께했던 연말 송년회가 생각난다. 술을 진탕 먹고, 노래도 부르고, 게임도 했었다. 나이 든 아저씨 과장이든, 어린 여자사원이든, 사진을 찍고 노래를 모두들 그 순간을 즐겼었지. 그 기억도 내게는 여러 즐거웠던 경험들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그밖에도 처음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탔던 기억, 친구들과 여행을 가 모닥불을 피워 놀았던 기억도 있다.
그렇게 환희에 몰입하는 경험을 함께한 사람과는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때의 이야기를 꼭 회자시키지 않더라도, 환희의 경험이 강렬할수록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도 그 경험의 이미지로 대체되어 간다. 그래서, 누군가와 그런 경험을 했는지, 앞으로 누군가와 할 것인지 고민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
아니 사실, 그것이 꼭 ‘누군가와 함께’ 일 필요는 없다. ‘나 자신과 함께, 혼자’ 몰입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일 테다. 학창 시절, 공부와 대인관계로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가득 차올랐을 때, 집에 돌아와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미친 듯이 춤을 췄던 기억이 있다.
혼자서 그렇게 땀이 흠뻑 젖도록 막춤을 추다 보니 왜 기분이 안 좋았는지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았더랬지. 물론 지금 생각하면 약간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억이긴 하지만, 평범했던 20년 전의 일상이 아직까지도 그날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나 자신에게는 무척 인상 깊었던 일탈과 환희의 기억임에는 틀림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언제 환희하게 되는지 알아채는 것일 테다. 본인 성향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했느냐에 따라 환희와 몰입의 정도는 달라진다. 누군가는 즐거움을 느낄 클럽의 쿵쾅되는 스피커 앞에서, 누군가는 소음과 불쾌함을 느낀다. 누군가에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흥미진진한 영화도, 밤을 새우고 영화를 보는 누구에게는 졸리고 따분하게 느껴질 수 있다.
자신이 환희하는 방식을 발견하고, 그 경험을 누적시키며 살다 보면 인생의 즐거움이 조금씩 축적될 것이다. 미래와 성공만을 좇기보다는,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자신에게 환희를 선물하는 평범한 삶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행을 가고 싶다.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좋은 풍경을 보며, 내일 일은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하루를 지내다 돌아와도 좋겠다. 어쩌면, 아침이 되어 현실의 무거움이 다시 엄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걸로도 좋다. 우리 모두, 매일매일 환희할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다만 새롭게 환희할 수 있도록 현실을 켜켜이 쌓아 올리며, 곧 돌아올 그 순간을 준비하면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