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일 산문
옛날 어느 마을,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매일 저녁, 둘은 마을 뒷동산에 올라 손을 꼭 잡고 석양을 구경했다. 소년의 눈은 맑았고 소녀의 마음은 따뜻하여 둘의 시간은 빨리도 흘렀다. 소녀에게 소년은 세계였고, 소년에게 소녀는 태양과도 같았다.
하지만 둘에게도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다. 소년이 먼 길을 떠나야 했다. 소년은 12월 31일까지만 소녀를 사랑하기로 했다. 둘은 슬펐지만 이별을 받아들였다.
마지막으로 석양을 구경하고 홀로 집에 오는 길, 12월 31일 밤하늘의 별을 보며 소년은 긴 사랑 이야기가 끝났음을 비로소 직시했다.
1월 1일이다. 소년은 소녀를 잊고 먼 길을 떠날 채비를 차린다. 그러나 떠오르는 소녀의 생각에 종일 황망할 따름이다. 소년의 의식은 소녀를 좇고 있고, 석양이 내내 마음속에서 타오른다. 소녀 없이 달라진 일상은 이질적이고 건조하다.
1월 1일의 자신은 다를 줄 알았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와 다를 수 있다고 믿었다. 오만하고 무책임한 믿음이었다.
매일 걷던 일상의 풍경이 녹아내리고 소년은 길을 잃은 듯 어지럽다. 목적지까지는 1주일을 꼬박 걸어야 한다. 그러나 첫날 저녁 무렵, 만 하루가 못되어 소년의 도전은 퇴색되고 빛바랜다.
길가에 주저앉은 소년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별 너머로 창백한 밤하늘도 어제와 그대로다. 소년은 소녀와의 관계를 끊음에 자신이 있었다. 자발적 결심에 의거한 관계의 단절은 한 해가 넘어가는 것과 같이 자명하고 비가역적 이리라 믿었으나, 그렇지 않았다.
비로소 소년은 실패를 인정한다.
실패를 목도함은 파괴적이나, 새로이 그림을 그릴 수 있기에 창조적이다. 시간의 분절은 비록 의식을 분절하지 못하였으나, 소년의 행동을 바꾸고 삶의 방향을 선회했다.
한 번의 계기가 관계를 공고하게도, 끊어지게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관성을 무시할 수는 없어서, 순간의 트리거만으로 관계의 본질이 훼손되지는 않는다. 무너진 듯했던 관계가 어느새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도 있지 않나.
하지만 끝없이 내리는 비에는 땅이 굳을 수 없는 법이다. 우리는 공을 드리블하여 골대로 몰아가듯이, 끝없이 원하는 대로 트리거를 시도할 뿐이다.
새해의 짧은 결심이 성공을 담보할 수는 없다. 오늘 하루도 그저 묵묵히 내 삶과 타인의 삶에 노력할 뿐이다. 오직 그 노력이 켜켜이 쌓여야만 우리네 삶과 관계의 본질이 바뀔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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