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과의 만남에는
하루하루가 모여서 한 달이 되고, 또 몇 달이 모여 한 계절이 지난다. 당신과 나의 관계는 변화무쌍하고 때로는 깊었다가 어느덧 잔잔하여 마치 서로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계절의 순간순간,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다가 또 만나고 인사하며 안부를 묻고 헤어진다.
그렇게 켜켜이 모인 계절은 우리의 관계를 정의하고, 꽃이 피고 다시 지듯 찬란했다가 종결한다. 모든 관계는 언젠가 끝남에도, 우리는 끝없이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고 과거의 기억을 좇는다. 그것은 혼자서는 완벽할 수 없다는 삶과 일상의 본질 때문일 테다.
나의 하루가 아무리 찬란한들, 그것은 나 혼자서는 의미가 없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라도 보는 사람 하나 없다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비록 오늘이 비루하고 평범한 하루일지라도 누군가 그 의미를 부여해 준다면 하루는 그 자체로 의미 있다.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깊은 바닷물에 빠진 것처럼 중독성 있게, 조금씩, 그러나 끝없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또는 롤러코스터처럼 높이 올랐다가 빠르게 떨어지고 끝에는 형형색색의 야경처럼 기억에 각인된다. 그러나 빠르든 느리든, 깊든 얕든 간에 교감의 순간은 서로가 의미를 부여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의미가 있더라.
그래서,
그동안의 나는 관계의 형식보다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고 믿고 지내왔다. 스치듯 일적으로 만난 사이라도 만남의 순간에 의미를 둔다면, 우연히 바닷가에 주은 텅 빈 조개껍데기가 아니라 그날을 기억하는 하나의 장식품으로 책상 한편에 고이 모셔둘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요즈음은 순간에 너무 집중하기보다는 연속성 있는 관계를 만드는 데에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순간 반짝 떠오른 라이징 스타보다는, 대중들에게 오래오래 기억되는 아티스트처럼 잔잔하고 오래 기억되는 사람이고 싶다.
모든 사람들, 모든 만남에 집중하고 의미를 부여하겠다는 생각은 욕심이다. 어린 시절 한 때는 그럴 수 있으리라 믿었고, 상당한 수준의 에너지를 소모했더랬다. 그러나 시간은 유한하고, 사라지는 인연에 연연하는 것은 철 지난 드라마를 끝없이 돌려보는 것처럼 아늑하나 헛헛한 일이다.
새로운 책, 게임, 영화, 드라마, 흥밋거리는 언제나 흥미롭다. 인간관계도 그러하다. 갑자기 의기투합해서 친해진 사람들은 그 순간 서로에게 진심이나, 그 이후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서, 조금 치사하지만, 모든 관계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지속가능하고 영속성 있는 관계에 더 투자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 만나게 될 당신과의 만남에는 다시금 순간에 집중하리라. 먼저 나서서 미래를 포기하기보다는 우리가 계속 이어질 수 있는 방식들을 끝없이 떠올려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