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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든 Mar 06. 2022

봄이 겨울을 덮듯 당신을 덧칠하며

 한동안 흐리던 날씨가 오늘은 맑고 청량하다. 긴 겨울이 지나 어느덧 봄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추웠다가 포근하기를 반복하며 계절이 지나간다. 흘러가는 시간과 멀어지는 추억 가운데, 나는 발걸음을 쉬이 내딛지 못하고 멈춰 서 있다.


 삶은 복잡하고 동시에 지난하여 우리가 함께한 날들의 감정의 교차점은 매일이 달랐다. 때로는 격양되었으나 때로는 차분하여 그저 그대로 좋았다. 언젠가 당신에게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였던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보면 그 언쟁조차 나름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였으며, 서로에 대한 관심의 반증이었다.


 나의 비루함조차 좋아해 준 당신이 있었기에 나는 무척 운이 좋았다. 내가 살면서 누군가를, 당신의 나처럼, 무조건적으로 포용한 적이 있던가. 당신은 나에게 일상이나 가족 또는 그 이상의 의미였다.


*


 조금만 더 버티면 봄인데, 당신은 기어이 맞잡은 손을 놓았다.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바뀌나 이제 다가올 봄에 당신은 없다. 우리가 함께했던 공간이 그대로이고 추억이 끊임없이 반추될테나, 현실의 우걱거림이 온몸을 누르는 통에 나는 쉬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그곳에서 평안하고 아름답기를. 불안과 걱정이 충만하던 이곳에서 한 발 물러서서, 불안이 없어 낯설지라도 그 자체를 만끽할 수 있기를. 한발 한발 우리가 함께하던 걸음은 멈추었지만, 멈춤이 반드시 슬픈 것이 아님을 당신이, 언젠가 내가 함께 증명해 보일 수 있기를.


 이어진 실끈은 언제든 어떠한 방식으로든 끊어진다. 끈이 끊어지면 당신이 존재하던 마음 속 공간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암실이 되더라. 허무하게도 깊이 내려앉은 공백을 들여다보며, 나는 심연의 바닥으로 조금씩 침전한다.


 슬픔은 지나가버린 과거와 같이 '바꿀 수 없는 것'과 맞닿아 있다.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할 수는 있으나, 작은 희망의 불씨라도 있다면 그것은 슬픔과는 본질적이고 미묘한 차이가 있는 감정이다. 이별이 결정되고 그 순간을 목도하며 납득하는 순간, 더 이상 바꿀 수 없음을 수용하는 순간, 우리는 관계의 결말을 느끼고 그제야 슬픔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


 끝을 인정하고 나서야, 마음을 부여잡고 눈을 번쩍 뜰 수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겨울과 봄 그 가운데 어디서 흐르고 있었다. 나에게는 여전히 강하게 나를 지탱하는 다른 실끈들이 부산하게 부대끼고 있다. 이 끈들은 여전히 나를 지탱하고 일상의 여백을 채운다. 


 잠시의 외로움을 기꺼이 맞이한 덕분에, 암실과 과거와 겨울은 더이상 하루를 점유하지 못한다. 앞으로 다가올 만남과 설렘이 유효하다. 비로소 봄이다.



      그래서 나는 

      봄이 겨울을 덮듯 당신을 덧칠한다. 

      꽃바람이 충만하고 소박하나 찬란함이 기다린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억지로 지워내기보다는

      다가올 하루로 발자국을 덮어 보겠다.


      서툴고 또 쉽지만은 않겠지만

      하이얀 천에 쌓여 영원히 안식하는 순간

      당신과 나의 오늘이 종결되었음을 인정하는 이 순간에


      잊어 지냈던 몇 해의 봄이 이제야 새로이 오고 있음을 느끼며




- 2022년 2월, 사랑하는 할머니를 보내 드리며

- 그리고 나를 스쳐갔던, 한 때는 소중하여 내 삶의 한 부분이었던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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