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투더 현재
유독 과거 얘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 있다. 특히 회사 고참 선배님들을 만나면 내가 입사하기도 전의 에피소드나 이미 퇴임한 임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하나씩 듣게 된다.
"예전 ○○○ 본부장이 말이야..○○○ 본부장 몰라? 아마 그때가 △△△ 사장일 때일걸?"
"아 그때 대단했지~ 2005년이었나? 2006년이었던 것 같아 아마. 그때 HR이 참 힘든 시기였지."
얼마 전 회식자리에서 평소 존경하던 젊은 임원분과 대화를 나눈 일이 있었다. 그분은 업무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누구나 인정하는 논리적인 분이었으며, 주니어들과 잘 어울리는 'young'한 임원이었다.(심지어 노래방에서 최신 쇼미더머니 랩을 부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 내내 그분은 내가 입사 전에 있었던 이벤트들을 계속 화두로 올렸다.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과거의 얘기를 많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경향성이다. 나이가 들면서 누적된 과거의 경험은 대화에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레퍼런스가 되기에 자주 주제로 오른다. 여기에 공감이 없고 일방적이거나 강압적인 대화방식이 합쳐지면 '꼰대' 비스므리한 사람으로 금방 유형화된다.
나 또한 이런 경향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며칠 전에는 나보다 15살 이상 어린 직원 분과 식사를 할 일이 있었다. 그분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일을 시작한 케이스였고, 다행히(?) 나를 너무 어렵게 대해주지 않아 감사했다. 다만 2002년 월드컵, 과거 유명했던 가수 (서태지와 아이들, H.O.T 같은..) 얘기를 꺼낸 후 세대 간 간극을 확실히 확인하고 나 혼자 당황했을 뿐. 내가 꼰대가 아님을 어필하기 위해 최신 신조어 테스트 절반을 맞췄다는 것을 어필하였으나 특별한 반향은 없었다.
누구나 과거를 말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과거에 대한 경험을 배제하고 소통을 이어갈 수는 없다. 심지어 다섯 살짜리 아이도 며칠 전 재미있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내가 오늘 먹은 자장면, 지난주에 회사에서 폭발 직전까지 갔던 일, 지난번 우리가 함께 본 영화 같은 내용 없이, 앞으로 우리 미래와 관련된 이야기만 해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반쪽짜리 대화 아니겠는가.
과거의 사건 사고나 에피소드들을 대화의 소스로 사용하는 것을 꼭 삐딱하게만 볼 필요는 없다.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과거에 이런 일이 있어서야.', '우리 회사에서 이번 일과 비슷하게 이런 일이 있었어.' 등 현재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끌어낸 맥락 정보이거나, 인생의 단계를 먼저 겪어본 선배로서 제공할 수 있는 참고용 정보인 경우도 많다.
이런 류의 과거 여행은 오히려 현재의 대화를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대신 '경청'하되 '선별'하여 받아들여야 한다. 고리타분한 선사시대 얘기를 한다며 무작정 흘려듣지 말고, 어떤 말을 하려 하는지 충분히 들어본 후 재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상대는 과거의 정보를 현재(또는 미래)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을 뿐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다를 수 있다. 상대가 10년 전 김상무 얘기를 한다면, 김상무가 누구인지를 궁금해하기보다는 김상무의 10년 전 행동이 지금 우리의 대화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대화의 본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상무 이름을 억지로 기억하려 할 필요도 없다. 백날 적어서 기억해 봐야 선배들보다 더 많은 과거정보들을 기억할 수는 없다. 특히 곱씹어보니 별 내용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장기기억으로 넘기지 않고 잊자. 혹시 그런 류의 정보들을 기억해서 앞으로의 대화에서 써먹겠다는 생각이이라면, 이왕 하는거 제대로 구조화하고 기록하여 기억하자. 간헐적인 대화의 조각들을 긁어 모았다가 내 것인양 어설프게 흉내내기 보다는 내 얘기를 하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살면서 기억해야 할 다른 정보들은 차고 넘친다.
반면에 본인의 과거 영광을 떠벌리기 위해, 추억팔이를 위해, 또는 (내가 모르는) 과거 이야기를 꺼내어 대화의 우위를 점령하기 위해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진정한 '라떼는 말이야' 다.
"15년 전 해외 주재원일 때 말이야, 그때 내가 대리였는데 밑에 직원이 30명이었거든? 다들 내 말이면 끔뻑 죽었는데. 아침에 막 커피 타놓고. 크 그때가 좋았지."
"내가 사원 때는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딱 앉아있고 그랬는데. 옆 팀 김사원은 맨날 늦게 오던데 봤어? 쯧쯧"
"박 전무 있을 때 말이야. 박 전무를 모른다고? 그 유명한 사람을? 암튼 그런 임원이 있었는데 그때 그분이 어땠냐면.."
이런 대화를 굳이 다 받아줄 필요는 없다. 귀에 피가 날 지경으로 옛날 얘기만 하는 분들도 많이 만나봤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는 거다. 한 번 들어주기 시작하면 본인에게 동조한다고 생각해서 한도 끝도 없이 과거 여행에 끌려 다녀야 한다. 나는 관심 없는데 억지로 따라간 둘리의 깐따삐야 시간여행, 돈데기리기리 돈데크만 시간탐험대 만화 같은 느낌이다. (근데 쓰고 보니 둘리나 돈데크만을 모르는 요즘 세대도 많겠구나...)
피할 수 없다고 즐기지 말자. 억지로 리액션하고 맞장구 쳐봐야 나만 피곤하다. 나 대신 내구도가 높은 다른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실컷 얘기하실 수 있게 최소한의 리액션만 보여주자. 대화를 현재로 선회할 수 있다면 가장 좋다. 또는 정말 아니다 싶으면 싫은 티를 내는 용기도 필요하다. (물론 상대와 상황을 봐 가면서)
매일 마주쳐야 하는 팀장이거나, 시부모님이거나, 고객이거나, 등의 이유로 꼭 들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적당한 맞장구가 필요할 수도 있다. 대신 적당히 본인 만의 경계선을 지키는 요령을 발휘하면 좋겠다. 계속 처음과 같은 스탠스를 유지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처음부터 잘 들어주다가 지쳐서 안 들어주기 시작하면 상대가 실망하기 십상이다. 주말에 팀장님을 따라 등산을 같이 한번 나가고, 그다음 주부터 팀장님이 기대에 찬 얼굴로 "자네 주말에 뭐하나?"라고 물어보면 뭐라 대답하겠는가?
관계에는 완급조절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내가 상대에게 얼마나 맞춰줄 수 있는지, 그 맞춤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는지 가늠할 줄 알아야 한다. 이 것은 비단 과거여행 류의 얘기 뿐만 아니라,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일방적인 상대의 얘기를 대할 때 모두 통용되는 이야기다.
나는 과거에 잘 얽매이는 편이다. 언젠가 사주를 보러 갔을 때 '당신은 지우개가 없네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과거에 힘들었던 일들, 상처받은 일들을 지우고 새로운 스토리를 써 내려가는 방법이 서툴다는 뜻이었다. 사주를 100% 믿진 않지만 그 말은 무척 생각하게 하는 바가 많았다. 현재를 오롯이 살지 않고 종종 혼자 사색하고 과거 여행을 떠난다. 나는 나의 이런 모습을 경계하고 바꾸고자 노력하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특성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나를 포함한) 우리가 과거를 계속 반추하는 이유는 지금이 그때 같지 않아서이다. 지금의 결핍, 불만족스러움은 과거에 만끽하던 행복감과는 선명하게 대비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힘든 순간을 버티기 위해, 과거를 끄집어내며 간접적이고 즉각적인 방법으로 현재의 행복을 대체한다. 이런 방식은 일회적이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근본적 만족감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과거의 행복을 부정하거나 잊을 필요는 없다.
다만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지금, 우리가, 여기에서' 가질 수 있는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삶의 자세가 더 중요할 뿐이다.
#1
요즘 우리의 대화가, 내 생각의 중심이, 쏟는 에너지가
과거에 머물러 있는지, 현재에 있는지, 미래를 향해 있는지는
잠시 시간을 내어 생각해봄직한 주제이다.
#2
인생의 한 페이지로써 과거, 현재, 미래는 무차별하다.
현재도 미래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된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삶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다.
#3
삶의 궤적을 그리고 삶의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을 때,
왜 지금 이곳에 서 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될지 모른다.
그제야 더 정교한 방식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