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평범한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특별하듯이
벌써 2022년도 막바지다.
올해는 계획에도 없었던 해외 출장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3일간의 일본, 5일간의 싱가포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꽤나 기억에 남는 일이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음식, 새로운 장소를 마주하는 일은 그동안 쳇바퀴 굴러가듯 지내던 나의 일상에 제법 많은 울림을 준 것 같다.
일본은 이렇고 싱가포르는 저렇고 같은 이야기보다는, 그곳에서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사람들의 일상을 보며 느낀 소회를 남겨볼까 한다.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마주하는 일상은 그가 속한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나로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모닝커피와 함께 어제도 마주했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매번 조금씩 다른 대화를 시도하지만, 그 대화는 어제 해도 오늘 해도 내일 해도 크게 상관없을 비슷한 속성의 어떤 것이다. 그리고 일, 점심, 다시 일. 가끔 약속이 있으면 친구들을 만나거나 운동을 하거나 또는 바쁜 날에는 야근을 하겠지.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 하루를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잘 시간이다.
주말이라고 새로운 이벤트가 있냐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여행, 행사, 휴식 등 내가 시도할 수 있는 여러 베리에이션이 있겠으나, 주말마다 마주하는 각기 다른 에피소드들은 '2022년 나의 하루'라는 시즌에서 큰 틀에서 본다면 주인공과 배경이 비슷하여 결국 같은 드라마에 가까웠다.
물론 그래서 인생이 너무 무료하다거나, 식상하다거나 하는 뜻은 아니다. 특히, 내가 마주한 사람들은 등장의 빈도와 관계없이 (대부분) 소중했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 포함 많은 사람들이 유한하고 반복적인 일상에 갇혀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1년 365일 항상 어제와 완전히 다른 오늘을 사는 사람은 없다. 매일 다른 곳에서 일어나거나, 매일 새로운 사람만 만난다거나, 매일 새로운 음식만 먹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그렇게 일상의 X축과 Y축은 매일 변화하는 듯 하나 결국 비슷한 자리를 표류한다.
이국 길거리에서 일상을 분주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 99,9%의 사람들은 내 삶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이 사람들이 이 나라에서 지금까지 어떤 인생의 드라마를 살아왔는지, 그리고 지금은 또 어떤 인생의 한 장면을 마주하고 있는 것일지 궁금증이 도지곤 했다. 한국 거리에서 사람들을 마주할 때는 전혀 생기지 않던 관심이 계속적으로 생긴 이유는, 아마도 이질적인 말투와 복장, 외모, 거리의 풍경 속에서 사고가 환기된 탓이었을 테다.
일본 긴자 거리에서 밤늦게 술을 마시며 즐겁게 웃고 떠드는 젊은 직장인들의 모습은 한국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으나, 어딘가 모르게 나와는 다르고 생경하여 완결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삶을 느꼈다. 싱가포르 관광지에서 이름 모를 나라에서 찾아온 듯한 가족 관광객을 보면서는, 그네들의 삶에도 복잡함과 무료함이 공존하고 있을지가 궁금하여 살짝 대화를 엿듣고 싶기도 하였다. (물론 들어도 못 알아들을 언어였지만)
그렇게 호기심과 함께한 며칠간의 경험을 통해, 내가 인정하게 된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어느 곳이든 어느 때이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치열하다고 표현한 것은 그들이 꼭 열심히, 근면하게 산다는 말을 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자신의 삶에 있어서 만큼은 누구나 진정성이 있으며, 그 정도나 방식이 다를 뿐,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스크린에서만큼은 다른 어떠한 채널의 방송보다 자신의 방송을 중시한는 뜻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본위적이다. 이는 자신의 삶이 평범하여 특별하기 위해 노력함이 아니라, 자신의 삶은 '이미 본질적으로 타인의 삶보다 특별한 어떠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비록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직장으로 향할지언정 각자가 모두 특별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평범하고 비루하다고 느낄 때가 꽤 자주 있겠지만, 내 드라마를 오롯이 관람하고 있는 '나 자신'만이라도 특별함을 자평하며 보듬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말을 맞아, 같은 맥락에서 나의 2022년이 특별했다고 자평해 본다. 나쁜 습관을 바꾸고,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바꿨(정확히는 바꾸려고 노력해 왔)으며, 운동을 취미로 삼고 새로운 직장에서 작년보다 더 안정적이고 즐겁게 일하고 있다. 브런치 작가 공모에 도전했고, 비록 선정되지는 못 했지만 바쁜 하루의 자투리 시간을 모아 끝내 한 권 분량의 글감을 완성했다는 점에 어제보다 한 발짝 나아갔음을 느낀다. 브런치뿐 아니라 일과 삶의 여러 장면에서, 나는 다양한 시도를 해 왔고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였으며 각각의 페이지는 일기장을 채우기에 충분한 분량이었기에 설령 모든 슈팅을 골로 연결하지 못했으나 열심히 한 경기를 소화해 낸 나 자신에게 칭찬을 하고 싶다.
당신의 삶도 그러했기를 바란다. 제작비가 비싸 스케일이 크고 스펙터클 하다고 꼭 좋은 영화는 아니듯이, 조그만 일상의 변화 하나하나가 모여 변곡점을 만들고 마음과 행동을 반전시켜 아무쪼록 열심히 잘 찍어낸 한 시즌의 드라마를 각자 마음에 품었던 한 해였다면 좋겠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꽃을 피우기 위해 우리는 2023년에도 치열하게 살아갈 것이다. 삶의 단면이 매 순간 빛을 발하지 못하더라도, 하루하루의 점을 이어 보면 나만은 알 수 있는 새로운 별자리가 되어 꽃 피울 수 있기를 바라며. 모두 다 같이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을 수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