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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든 Jan 08. 2023

꼰대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요즘 '시간 참 빠르다'는 말을 달고 삽니다. 어느덧 제가 13년 차라니... 만으로 12년 회사생활을 했다는 건데, 그럼 초등학교를 2번 졸업하거나 군대를 6번 다녀온 꼴입니다. 물론 여전히 회사에는 선배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제가 신입사원 때 13년 차 선배를 대하며 느꼈던 그 까마득한 거리감을 지금 신입들이 저를 보며 느낄 거라 생각하니 아득할 따름입니다.


2023년이라고 벌써?


 가끔 '라떼는...'이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하거나, 무용담처럼 과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할 때면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나는 절대 젊은 꼰대가 되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했었는데... 무의식 중에 꼰대스럽게 -자기중심적이고 과거지향적인 방식으로- 대화하고 있는 제 모습을 인지하게 되면 순간적으로 입을 꾹 다물게 되더라고요.


 회사를 옮기고 얼마 안 된 어느 날이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술기운에 텐션이 높아져 아직 어색한 회사 동료들을 오랜 친구처럼 편하게 대했습니다. 왁자지껄한 대화와 불같은(?) 회식이 끝나고, 집 방향이 같은 후배와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갑자기 술이 깨면서 내가 실수한 것은 없었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후배에게 물었습니다.


 "씨, 제가 혹시 실수한 거 없죠? 아까 괜히 막 3차가자고 나댔나..."

 "네?? 전혀 그런 느낌 없었어요. 오히려 무척 재밌었는데요? ○○ 선배님은 자기검열이 심하네요"


 저는 후배의 말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내가 무의식 중에 내 언행을 과하게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지하게 된 겁니다. 말과 행동에 실수는 없었는지 끊임없이 모니터링하는 제 모습이 안쓰러웠습니다. 자신을 숨기고 계속 감시하며 사는 삶은 얼마나 피곤한 삶일까요. 자기 자신에 대한 검열은 물론 인생에서 꼭 필요하지만 그것이 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날 이후 반성과 불안과 자성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항상 적당한 수준의 균형을 지키고자 노력하려 합니다.




 그러다 요즘에는 다른 양상에서 저 자신을 검열하는 습관이 발현되고 있습니다. 나이와 연차가 올라가는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 내가 후배들에게 꼰대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마치 회사의 감사팀처럼 불쑥불쑥 나를 점검하고 돌아보게 만드는 겁니다. 자기검열도 습관인가 봅니다.


 얼마 전에는 저와 띠동갑 비슷하게 나이차이가 나는 회사 후배님들과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밥 한번 사고 넘어가도 되는 자리였으나 저는 이왕이면 그 자리가 충분히 의미가 있기를 바랐기에, 큰맘 먹고 책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선물 덕분이었을까요, 아니면 맛있는 식사 때문이었을까요, 의외로 우리의 대화는 매우 생산적이고 즐거웠으며, 1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던 대화는 몇 시간을 이어갔습니다.



 어느덧 헤어질 시간이 되어 우리는 식당을 나섰습니다. 저는 문득 불안해졌습니다. 바로 자기검열의 시간이 온 것입니다.


 '너무 나만 떠든거 아닌가? 한 친구는 중간중간 하품도 했었는데...'

 '내가 회사 선배에 나이 차이도 많이 나니, 이 친구들이 억지로 회식하듯 시간을 버틴 건 아닐까...'


 "너무 저만 떠든 건 아닌가요 다들?"

 "아니요! 너무 즐거웠어요!!"

 "에이, 솔직히 말해봐요."

 "아니에요,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제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응? 나는 내가 훨씬 내 얘기를 더 많이 했다고 느꼈는데... 

 자기검열 및 검증의 결과, 어마무시한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꼰대와 대화한다는 느낌을 거의 못 받았다고 합니다. (물론 완전한 속마음까지는 알 길이 없지만, 진심일 거라 믿어 봅니다.) 제 자체적인 결론으로, 그날의 대화는 충분히 각자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날 후배님들과 나눈 대화의 콘텐츠는 아래와 같습니다. 아마 제 무용담스러운 컨텐츠가 1도 없었기 때문에 나쁘지 않았던 듯 합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실패에 대한 이야기

 나와 그들이 세운 올해의 목표와 다짐

 (HR 담당자인 나에게) 회사에 대해 아쉬운 점

 각자의 최근 고민, 그리고 관심사




 가끔 그런 선배님들이 있습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예전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로 하여금 적극적인 청중이 되어 자신의 삶의 족적을 따라오기를 종용하는 선배들. 충분히 그럴 수 있고, 저 또한 가끔 어떤 장면에서는 그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 이야기가 그 자체로서 빛나기보다는, 상대방의 삶을 조망할 수 있는 거울 같은 도구가 되기를 기대하고 또 노력해 보려 합니다. 나이와 직급에 관계없이, 같은 공간에서 대화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같은 사람이며 긴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찰나도 아닌 작은 차이로 삶을 겹쳐져 살고 있는 존재들이라 믿는 거지요.


 시간과 경험의 누적이 가끔 삶의 문제를 푸는데 도움을 주긴 하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열쇠는 아닙니다. 우리의 대화는 내가 나이가 많다 하여 또는 직급이 높다 하여, 나만의 경험에 매몰되지 않고 나의 사회적 지위에서 비롯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또는 꼰대가 되지 않겠다고 무작정 어린 상대를 피하거나, 자기검열 하느라 전전긍긍하기보다는, 동등한 사람과 사람으로 진심으로 대할 줄 아는 방식을 더욱 열심히 익혀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진심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곁에 많이 둘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R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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