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의 종말

7일간의 고향

by 이시절
인간의 귀소본능이란 태어난 장소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에게 돌아가고 싶어하는 그리움이라는 것을. -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중에서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제품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특정 인물, 단체, 국가에 대한 표현은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으며, 받아들이기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D의 종말


이 넓은 세상의, 지구라는 행성의, 인간이라는 종에게 마지막 일주일이 주어졌다.


D는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다가 그 사실을 알았다.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며 뉴스를 읽던 D는 오늘따라 지하철에 사람이 없었지만 그다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고 그냥 행운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뉴스에 들어가자마자 보인 기사들은 전부 종말에 관한 것이었다. 뉴스 기사의 제목을 읽는 순간 드라마처럼 듣던 노래가 끝났고, 고요함이 찾아왔다.


D는 기사를 읽고 잠깐 멘붕에 빠졌다. 갑자기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어제도, 그저께도, 오늘도, 그리고 저번주도 늘 그랬듯 똑같은 하루하루였다.

처음 D는 믿지 못했다. 무슨 근거로? 예전에도 2000년에 종말 한다, 뭐 그런 얘기가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똑같겠지. 하지만 D는 이번엔 진짜라는 걸 깨달았다. 8일 뒤는 없을 것이었다.


D의 얼굴이 조금 많이 굳어졌다. 폰을 주머니에 욱여넣고 이이폰을 귀에서 뺐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빙빙 돌았다. 그제야 D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 이래서 오늘 지하철이 텅텅 비어있었구나.

D는 지하철에서 내렸다. 지하철 역도, 길거리도 조용했다. 늦겨울의 싸늘한 공기와 때때로 불어오는 바람만이 남겨져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절망적이었다. 이런 끝을 맞이할 줄을 몰랐다. D는 그냥 열심히 일하고 쥐꼬리만큼의 월급으로 겨우겨우 살아가고 그 쥐꼬리 월급으로 원하는 것도 조금씩 이루며 살아가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 타인의 불행이 나에게 행복이 되면 안 된다지만, 솔직히 혼자 종말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아주 큰 안심을 가져다주었다. 터덜터덜 역 안을 걷다가 집에 도착한 D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처음 종말한다는 소식을 봤을 때의 쿵쿵거림이 아직도 몸에 남아있었다.


폰을 집어든 D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보려 했으나 막상 아무에게도 전화를 걸지 못했다. 엄마는 아빠가 죽고 나서 한시도 빠짐없이 해외여행을 다녔고, 지금은 중국에 있었다. 침대에 누워 폰 화면을 빤히 바라만 보던 D가 팔을 떨궜다. 폰을 든 손이 힘없이 축 쳐졌다. D는 당장 7일 뒤가 종말이라는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D는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았다. 어릴 때는 명문대 가서 좋은 직업 하나 가져보겠다고 공부에만 매달려 놀지도 못했고 어른이 돼서는 나름 좋은 대학이랍시고 간 학교에서 공부만 했다. 그렇게 죽도록 24년 인생 중 16년을 공부에만 매진해 아주 평범한 직장을 얻었다. 월급 쥐꼬리만큼 받는. 그래도 D는 꾸준히 최선을 다했다. 그 쥐꼬리만큼 월급 받는 걸로 월세 내고 밥 먹고 취미생활도 포기하지 않았다. 추가 부정기 수익도 얻어보겠다고 퇴근하고 소소한 일을 더 하기도 했다. 노후에는 안전하고 평화롭게, 편하게 살겠다고 매달 노후를 위한 돈도 저금했다. 그 노력의 결과가 종말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돌아보는 삶 중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7살 이전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왔고 그전까지만 해도 시골 마을에 살았다. 학생도 몇 없는 학교에서 1등을 하고 학교 마치자마자 밭과 넓은 공터가 있는 마을에서 뛰어놀았다. 그때는 정말 좋았다. 인생의 3분의 1이었다. 아무 걱정 없이 행복만을 추구하고 살던 삶. 그 이후로 D가 추구한 건 소소한 행복이 아니라 성공이었다. D는 종말을 가까이 두고 그것을 가장 후회했다. 왜 소소한 것에 행복해하지 못했을까? 왜 작은 성공은 성공이라 여기지 못하고, 큰 성공만 성공이라고 여겼을까? 생각해 보면 참 인생이 어리석었다. 왜 이제야 그걸 알아차렸는지, 후회만 가득했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D는 새햐얀 벽지가 붙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릴 땐 높아 보이던 천장도 지금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도 않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런 것인 것 같았다. 커 보이는 게 작아 보이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어릴 때의 그 시선을 유지할 순 없었다. 더 이상 밤하늘의 별이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길에서 아는 노래가 나왔을 때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것도, 식물에 물을 줄 때 기쁘지 않은 것도... 자란다는 건 인생에 행복이 줄어드는 일 같았다.

D는 행복했던 그때를 다시 느낄 방법을 알아냈다. 추억을 가진 장소는 추억을 다시 일깨워주기 마련이다.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D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D가 고향에서 왔던 길과 달라져있었다. D가 너무 어려 기억을 잘 못한 탓인지 이곳이 너무 많이 바뀐 것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확실히 D가 알던 그곳은 아니었다. 낯선 길과 낯선 공기에 D가 알던 그곳은 묻혀버렸다.


고향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사람들이 살고 있기 하였으나 전혀 모르는 사람들뿐이었다. D의 기억과는 달라진 마을과 새로운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의 추억들과 기억들만이 공기와 땅에 묻어있을 뿐이었다. 많이 바뀐 그곳이었지만 D의 눈에는 과거 D가 아는 그곳이 어른거렸다. 멀리 학교를 마치고 뛰어놀던 작은 산이 보였다. 그땐 정말 높게도 느껴졌는데 지금 보니 그냥 평범하고 동네에 하나씩 있는 산에 불과했다. 산은 변하지 않았다. D의 기억 그대로였다.


흙의 감촉이 발에 닿였다. 물론 신발을 신고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느끼지 않아도 다 알 수 있었다. 마을이 변했어도, 산은 그대로였다. 다행히 산은 사라지지 않았다. 도시가 되어버리지 않았다. 산을 타고 들어오는 상쾌하고 깨끗한 공기와 그곳의 추억들이 D를 괴롭게 만들었다. 왜 16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이곳으로 돌아올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까? 바뀌었을 이곳을 보는 게 두려웠던 걸까? D는 과거의 자신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D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과거의 D는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성공한 삶만이 삶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졌어야 했다. 성공만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소소한 일이라도 행복을 전해줄 수 있었다.


또한 행복, 성공의 결과가 꼭 돈이나 물질은 아닐 수도 있었다. 오직 행복하다는 감정, 기쁘다는 감정, 고맙다는 감정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D도 물질만능주의였다. 이제야 물질보다는 감정이 더 오래간다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늦었다. 행복도 성공도 감정으로 얻어내야 진정한 행복이고 성공인 것이었다. 비록 그 감정이 강하지 않고 짧게 지나가는 감정이라고 할지라도. D는 이제야 진정한 행복을 느꼈던 건 인생의 3분의 1 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D는 이곳에게 무엇을 바란 것일까? D가 알던 그곳이길 바랐던 걸까? D는 어쩌면 이곳에 바라던 것이 없어 실망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D는 이곳에서 과거를 떠올렸다. 이곳에서의 마지막은 아름답지 않았다. 아빠가 죽고 서울로 올라간 거라, 엄마는 힘들어했고 D 또한 정서적으로 불안했다. 엄마는 툭하면 울었고 우울해했다. 어린 D는 그런 엄마 곁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엄마는 2주 만에 슬픔을 털어내고 일어나 일을 구하고 다시 원래처럼 D에게 공부를 시켰다. 그곳에서 다시 학교를 보냈다. 그 덕분에 D는 전처럼 일상을 되찾았다. 매일 6시에 일어나 샤워하고 아침 공부를 한 다음 아침으로 과일을 먹고 학교를 가는 것. 다녀와서는 씻고 2시간 정도 논다음 간식을 먹고 공부를 했다. 저녁을 먹고는 자기 전 1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 전혀 힘들지 않았다. 아주 좋은 패턴이었다. D는 늘 9시에 잤고 6시에 일어났다. 간식을 주로 과일이었고 엄마는 늘 일주일치 식단을 미리 짜뒀다. 그 덕에 돈이 많이 들긴 했으나 D는 잔병치레가 없었다.


D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힘들기도 어려운 환경이었다. 하지만 D의 엄마는 힘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엄마는 그걸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지 못했다.

엄마는 때때로 울었다. 아무것도 못해준 것 같아 미안하고 슬프다며. D는 그 눈물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아무것도 못해줘 슬플 사람은 그가 아니라 아무것도 못 받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D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모든 행동과 눈물들은 미안함과 후회가 뒤섞인 감정아래 나온 일이었다. 그리고 또한 알았다. 엄마는 아무것도 못해준 게 아니라 모든 걸 해줬지만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걸.


D는 산이라고 불러야 할지 큰 언덕이라고 불러야 할지 애매한 그 작은 산에서 내려갔다. 마을은 조용하고 깔끔했다. D의 느린 발걸음에, 발이 닿는 그 하나하나의 느낌에 이상한,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실망감, 아쉬움, 설렘, 반가움.... 긍정의 기분과 부정의 기분이 섞여 기분이 애매모호하고 이상했다. 무엇보다 부정적인 감정, 그러니까 실망감이 컸다. 생각해 보면 기대하는 것조차 너무 주제넘은 일이었는데. 바뀌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가장 D를 아쉽게 했던 건 더 이상 그곳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D가 그곳에서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준 사람들은 전부 그곳에 없었다. 그게 가장 큰 슬픔과 아쉬움으로 남았다.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형상들은 형상일 뿐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D가 원했던 건 이곳, 이 땅이었던 걸까. 아니면, 단지 이곳의 추억과 이곳의 사람들인 걸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었던 걸까.


D가 원한 건, 이곳이 아니라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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