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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떫음 Jul 20. 2022

변하지 않는 것

떫소리_2021. 5. 10

“뭐가 무서운 거야?”

친구의 시선은 노트북으로 킨 영화를 보고 있었지만, 몸의 시선은 내 쪽으로 거의 돌아보고 있다시피 했다.

“...나도 모르겠어.”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왜냐면, 정말 모르는 것이 사실이었고, 그 원초적인 이유를 모른다는 것부터 답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나는 무서웠다. 두려움에 한가득 떨고 있었다. 떨기만 하겠나, 어디로 발을 뻗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처절하기 그지없는 모습. 허나 친구들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당연하지, 그들은 그들대로 나아가고 있으니까. 그게 설령 가벼운 것일지라도, 어쨌든가 자기만의 길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실천해나가고 있단 뜻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친구인 나는 그러지 못했다. 무서워서. 단지 무서워서, 그 뿐이다.

 

교수님이 면담 전화를 거실 때면 더 없이 밝게 대답했다. 때문에 좋은 일 있냐며 질문을 받을 때도 간혹 있었으나, 교수님이랑 통화해서 좋은 거라는 애교를 떨어볼 정도로 나는 산뜻했다.

허나 언제부턴가 교수님께선 내 글을 보고 말을 꺼낼 때마다 무슨 일 있느냐고 질문하신다.

난 별 일 없다고 답을 하지만, 농담 끼가 섞인 말투로 그렇게 말하면 별 일 있는 것 같은데, 하신다. 그럼 나는 피드백을 받는 내내 사실은 별 일이 있는 걸까? 아니, 이게 별 일인가?

어찌 보면 항상 별 일이 있는 건데, 내 스스로도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도 기억을 하지 못한다. 오늘도, 교수님께선 무슨 일이 있냐는 물음을 던지셨다. 내 글이 그저 너무 성급하게만 보이며, 나 자신의 실력발휘를 전혀 못한 것 같다는 둥, 그리고 기운내세요, 라는 작은 위로의 말까지.

족집게였다. 독심술사다. 나는 친구와 그 교수님을 그렇게 표현한다.

새벽에 오랜만에 통화하게 된 친구에게, 전화 앞에서 미친 듯이 울어재꼈다. 2시간 가까이를 통화한 후 잠에 들려고 할 때는 눈이 너무도 따가웠다. 울어서 팅팅 부었다. 그리고 난 내가 눈물을 잔뜩 흘렸다는 사실에 가슴 어딘가가 시원하게 뻥 뚫리는 느낌을 받으며 잠에 들었다.

그렇게 하필이면 면담이 오전이었으니, 내 목소리에서도 아직 그 여파가 남았는지 교수님이 그리 말하신 걸지도 모르겠다. 바보 같으니. 내 감정 하나도 못 숨기다니. 나는 또 나를 때린다.

면담이 끝난 후엔 힘없이 엎어져 있다 며칠 전 날아온 관리비 고지서를 쳐다봤다. 한숨만 나온다. 이게 맞는 거겠지만 인건비가 왜 이렇게 비싸? 이를 빠득 갈면서도 계좌번호를 하나씩 눌렀다. 돈이 나갔다는 알림이 뜬다. 삼백...육십..오원. 만원이란 단위도 존재하지 않는, 세 글자뿐인 내 계좌. 마른세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멍하니 앉아 있다 문득 내일 오전에 병원 예약해둔 일정이 있다는 걸 생각해냈다. 병원비, 어디서 끌어오지...?

너무 오랜만에 접속하는 거라 알바어플에서는 나를 기억하지도 못했다. 휴먼 계정이 되어버렸구나. 그만큼이나 오랫동안 나는 소득 있는 활동을 전혀 안한 거였구나. 집주소도 심지어 20살 때의 주소 그대로가 회원정보에 입력되어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주소에 같이 살았던 친구와, 그곳을 놀러오곤 했던 다른 친구들까지의 추억들이 샘솟았다. 그러나 그런 회상에 운치 있게 잠길 시간 따위도 나에겐 없었다. 이것저것 일거리를 찾아보는데도 무서웠다. 너무 오랜만에 일을 하려니 어색해서 그런 걸까, 아무 곳에서도 나를 받아주질 않을 것 같아 무서운 걸까, 아니면 면접에서 합격을 해도 학업과 동반해서 잘 해낼 자신이 없어 무서운 걸까.

그래. 대체, 도대체 너는 뭐가 무서운 거냔 말이다. 나 자신의 감정 덩어리를 갈기갈기 찢어 터뜨려 버리고 싶었다. 대신 머리를 쥐어짰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머리카락이 평균보다 많이 빠지는 듯해서 탈모를 의심했었으니까. 그럼 머리카락 상태 자체도 무서워서 몸으로 자책하기를 그만둔 거겠지, 와, 정말 가지 가지하는 놈이었다.

몇 년 째씩이나 나는 나와 같은 전공의 사람들로부터 받은 질문에 똑같은 답만을 말하고 있었다. 이번에 조금 달랐던 점은, 무섭다고 대답한 것. 뭐가 무서운 건지를 묻는 친구에게 또 하염없이 모르겠다고만 대답했다. 우리는 한동안 묵묵히 보던 영화만 지켜봤다.

 

문득 그 장면이 떠올랐다. 두 번째로 찾아갔던 병원에서, 초진을 할 때마다 다양한 답변을 받아 적는 수많은 용지들. 서술형 문제를 푸는 듯 답을 적어나가던 나는 오랜만에 학창시절로 잠깐이나마 돌아간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의 나와 달리 지금의 나는 펜으로 나에 대한 상태를 적어 내려가는 것조차도 힘든 지 손가락을 떨고 있었다. 젠장, 글씨가 잘 안 써진다. 스스로 내 손을 탁탁, 때려도 본다. 손가락은 기계가 아닌 지라 쳐대도 고장 난 것이 고쳐진다거나 그러진 못했다.

진료하면서 선생님께서 강조해주신 부분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의 문장이었다. 그 뒤의 공백에 나는 ‘이 세상이다’라고 적었었다.

뭐, 범위가 꽤 크다는 말이기도 했고, 정확히는 내가 잘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의 요인들을 전부 살펴보면 다 이 세상에서 만들어진 것들이었으니 그를 단순히 ‘이 세상’이라고 축약했던 것이었을 거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 때로 돌아가면 난 또 똑같은 답변을 채울 것이다. 바로 하루 전 날이었지만 친구가 물었던 질문에도 또 똑같이 대답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모르겠다. 전혀 모르겠다.

 

나는 나 자신을 제일 모른 채로, 어쩌면 ‘모른 척’ 하면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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