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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떫음 Aug 09. 2022

빗방울이 적시고 간

떫소리_2021. 5. 15




비 온다.


비가 온다.


제정신으로 눈을 떴을 땐 시간은 이미 오후 12시를 접어들고 있었다. 그 전에도 수십번은 다시 깼지만, 시체처럼 다시 쓰러지길 반복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 겨우 제대로 일어난 시간이 12시였다는 얘기다.


이건 무슨 호텔 방안도 아니고 잡동사니가 한가득 놓여있는 탁자에 핸드폰을 올려놓고 과제인 영화를 보다 바닥에 놓여져 있는 노트북을 켰다. 내 하루는 늘 노트북 전원을 킴으로써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나는 글을 써야 살아있는 거니까.


갑자기 비가 세차게 내리는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짐을 옮기면서 비에 맞고 있는지 웃으며 떠드는 소리도 들린다. 그들의 장면은 비맞으며 뛰어가는 그런 청춘과도 같이 느껴질까?


아, 방금은 지난 주에 사둔 싸구려 버터쿠키를 꺼내 먹다가 우유가 담긴 계량컵에 빠뜨렸다. 씨리얼을 먹던 컵인데 우유를 한 모금 마시니 오만 단내가 같이 밀려들어왔다. 뭐, 나쁘지는 않다. 잠 깨기 좋은 것 같다.


눈 뜨자마자 쓰는 이 글이 무슨 의미가 있냐 하면, 없다. 그저 하릴 없는 내 일기일 뿐이다. 시간 낭비라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여기서 그만 각자의 할 일을 찾으러 나가는 게 좋다. 뭐 물론 쓰잘데기 없는 남의 블로그에 들어와서 태평하게 이딴 글을 읽을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매번 봐주는 사람들에겐 너무나 고맙다. 이 넓은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에게 관심을 가지는 시간을 아깝게 여기지 않는다는 거니까.


오랜만인 것 같은데, 비가 내리니까 꽤 감성에 젖어든다. 비오는 날씨, 좋다. 물론 꾸미고 나가는 약속이 있을 시엔 더 없이 밉지만, 집 안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는 이 평화로운 주말에 내리는 건 너무도 고맙다.



바로 어제는 총학생회 일을 하러 경기도 고양시까지 갔다. 고양은 처음 가보긴 했다. 사실 그래서 길을 좀 헤맸다.


그 전날에는 혹시 모를 과제를 마감한 후 동기언니의 집에서 함께 잠을 청하곤 오후부터 움직여 같이 출발했다.


학생회장님이 '국장님들 다들 어디쯤이세요?' 라는 메신저에 지금 내려요! 라며 답을 하는 사이 이미 땅에 발을 딛은 내 이름을 급하게 부르면서 언니는 버스 문을 다시 열게 했다. 무슨 애가 한 눈이라도 팔면 골 때린다면서, 우리는 깔깔 웃으며 한 정거장 더 가서야 내렸다. 그리고 우리가 지도 좌표를 잘못 잡았다는 걸 알아냈다.


땡볕에 15분을 걸어가면서 6월도 채 되지 않았는데 여름이 왔다는 걸 직감했다. 고양 스타필드 바로 옆에 자리한 삼송 테크노밸리 A동을 찾아가는데 그 길 한 번 험하더라. 문제는 스튜디오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미로 수준이라며 길을 잃은 다른 친구가 전화가 온 것. 한창 혼란스러워 우리도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찾는 순간, 지상으로 음료를 사러 나온 다른 국장님들을 마주쳐서 인사했다. 3월부터 시작했던 학생회였지만 모든 회원이 정식으로 한 자리에서 모이는 건 그 날이 처음이었는 지라 꽤 긴장도 했다. 첫 인상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하나, 싶기도 했다가 비대면 상으로 서로 목소리는 들으며 회의를 진행했던 지라 그냥 만나자마자 바로 아는 사람같이 느껴졌다.


지하로 내려가니 화물칸에 용달차, 자가용이 가득한 매쾌한 주차장 같은 곳을 마주했다. 딱 쿠팡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을 때 보았던 그런 화물칸이었다. 별로 느낌이 좋지 않았다. 1층에서 마주친 국장님께 방향 설명을 들었지만 우리는 또 헤맸다. 겨우내 우리 스튜디오 입구를 찾아 들어갔다. 한창 리허설 준비 중이었다. 여러 국장님들과 인사를 나누곤 하는데, 나는 우리가 스탭이라길래 촬영스탭보조 정도는 하는 줄 알았다. 오랜만의 현장에 나가니 또 구색을 갖춰야지, 라며 짧은 반팔에 크롭 후드집업을 걸치고, 조거팬츠를 입었다. 조거팬츠에 어울릴만한 군화같이 생긴 워커도 신었다. 힙색에 웬만한 도구는 챙겨넣고 필수인 양면테이프도 키링처럼 달았다. 근데 글쎄 모든 연출과 촬영은 업체가 관여하고 우린 그저 소품을 옮기거나 라이브 방송 참가자들을 인솔, 총괄하는 일에서 그치는 역할이었다. 물론 그것마저도 우리가 8명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바쁘게 움직이긴 했다. 스튜디오는 실내인데도 대기실에 에어컨을 틀어주질 않았다. 우리야 우리지만, 참가자 학생 분들이 걱정되긴 했다. 누가 누굴 보살필 처지겠냐마는.



라이브 방송은 비대면으로 학교 축제를 진행하지 못하자, 우리 학생회에서 학생들의 경연을 신청 받고 유튜브 라이브 방송으로 실시간 문자투표를 받으며 무대를 공유하자는 기획이었다. 겨우 다섯 팀이었지만, 그 다섯팀 전부 총 리허설 후 1시간의 쉬는시간(밥 먹는 시간) 과 생방송을 끝내는 데 까지는 오후 8시가 지나서였다.


우리가 몇 대 학생회인지는 까먹었지만, 어쨌든 간에 다같이 얼굴 보며 일하는 건 처음이였기에 기획도 그렇고 빠른 시간 내에 완성한다고 우리들 사이에서는 업무가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전달 되어야 할 것이 전혀 안 이루어졌다거나, 등등. 의사소통을 가장 원활히 해야하는 단체였지만 그러질 못했다. 그 중 하나는 라이브 경연의 MC를 나와 다른 분이 맡기로 했는데, MC진행을 그 분 혼자서 맡게 되었다. 내 입장에선 사투리도 작렬인데 어떻게 꾸며서 카메라 앞에 나올 지, 그것부터 고역이었기에 다행이긴 했다. 혼자 MC를 진행하게 되신 국장님은 업체 쪽에서의 강요로 사비로 샵까지 다녀오셨다고 했다. 성공적으로 마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비로 샵을 다녀온 건 지나친 소비랄까, 희생이라 생각해서 우리끼리 추후에 얘기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라이브 경연 전날까지 MC가 나를 포함한 둘인 줄 알았던 사람도 계셨다. 이런.



촬영현장을 몇 번 겪어봤어도 라이브 방송 같은 스튜디오 작업은 나도 처음인지라 꽤나 생소했다. 다행히 장비, 촬영 관여는 하지 않았지만 가끔 리허설을 지켜보면서 개인적으로 카메라 움직임이 너무 심심하다 느꼈다. 조명의 종류도 한계가 있었다.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버스를 찾아 달리고 달려 자취방으로 돌아왔을 때, 경기도에 사는 친구와 프로젝터로 라이브 경연 다시보기를 보았을 때 정말 어색하다는 게 느껴질 정도의 연출이었다. 우리 학교, 이렇게나 어리숙하다. 그런데도 현장에 있었기에 그 화면 뒤의 험난한 상황, 그 열정들이 저절로 느껴졌다. 대기실에서의 끊임없는 연습과, 그분들의 좋은 취지는 지켜만 봐도 뭉클했다. 나중에 1등 하신 팀이 수상소감을 발표하는데 진심이 느껴져서 괜히 나도 기분이 덩달아 신이 났다.


학교에서 대면 수업을 진행하는 과목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한 자리에서 마주하고 일을 하는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하필 전날 동기언니집에서 자고 가기로 해놓고, 가장 중요한 챙겨먹을 약을 들고오지 않아 좀 불안이 크긴 했다. 그런데도 친절하고 좋은 분들로 가득해서 어느 순간부터 맘놓고 농담을 던지며 우리는 친해지고 있었다.



친구는 새벽에 첫차를 타고 내 방에서 나갔다. 그 어둠 속에서 흐느적 대며 깨서는 인사하던 기억이 났다. 그 외에 또 꿈을 꾸며 수십번을 깨기를 반복하다 12시에 눈을 뜬 나. 오랜만에 누군가가 밤새 다녀간 흔적이 방 안에 남아있자 그 또한 괜히 정감이 같다. 눈 뜨자마자 시작되는 내 감성을 심지어 비가 오늘은 더운 하늘을 다 식혀주니, 저절로 차분해지고 아무렇게나 타자를 치고 싶은 본능이 꿈틀댔다. 그래서 기억이 나는 대로 그냥 키보드를 치고 있는 중이다.



내 멋대로 꾸며놓은 방을 무슨 파티장에 온 것 마냥 좋아해주던 친구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고 예쁘다며 봐주니 피곤하면서도 신이 났나 보다.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일기장을 구경해도 좋다고 했고, 그 전의 다 쓴 일기장도 보여줄 수 있었다. 무슨 내용이 적혀있었을진 모르겠지만, 알아서 필터를 거치고 읽어주었을 거다.


일기장까지 보여줬으니 뭔 말을 못하겠나.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미래에 관한 얘기를 주고받던 우리는, 잠에 들려 나란히 누워서도 어쩌다 약을 먹으며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내 일상을 털어놓았다. 이 친구는 말끝마다 나이니까, 나라면 할 수 있다, 나라면 다 되지, 와 같은 표현들을 예전부터 불러주곤 했다. 예전엔 그저 기분 좋은 칭찬이었지만 이렇게 얘기를 들으니 나 같은 사람을 이렇게나 멋있게 봐주는 사람도 있구나, 어딘가 자신감이 솟았다.



아무튼 잠에서 깬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벌써 피곤하다. 몸이 계속해서 안 좋아지고는 있다. 어제도 일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몇 년 전 훨씬 더 심한 노동을 했을 때의 나는 정말 내가 맞는 걸까, 라는 생각.


뭐 어쩌겠나. 살아남아야지. 아침(아침도 아니고 대낮이다)을 맞이하며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흘려보낼지 우선 손가락 운동부터 움직이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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