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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떫음 Sep 07. 2022

무의식

떫소리_2021. 9. 13

아이패드를 샀다. 그 돈이 어디서 났느냐, 하면...

유치원에서 있었던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잘못했던 일이든 뭐든 신나서 집에서 얘기를 하면,

엄마는 내가 웃으면서 떠들어도 바보냐면서 으이그, 식으로 핀잔을 주셨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마다 집에 가서 엄마에게 떠들어댔다. 아무래도 엄마는 남동생을 돌보느랴 언니 학업을 위해 사교육을 신경쓰랴 정신이 없으셨던 것 같다. 지금보니 나는 어릴 적엔 바깥에 나가서, 즉 친구들이나 선생님들께 어리광을 피웠던 것 같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친구들은 몰려와 나를 귀여워해줬고, 보호해주려 들었다. 아낌없이 사랑을 받은 것 같았지만 집에 돌아가면 나는 그런 일들을 얘기하다가도 조용해졌다. 엄마 아빠는 시끄러운 걸 싫어하셨다.

아니 아이패드 산 얘기 하려고 켰는데 대뜸 어릴 적을 생각하니 이런 말들이 줄줄 새어나온다.

오히려 요즘 들어서 더 어릴 적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다. 그리운 걸까. 혹은 아직도 나 자신을 파헤치다 저 땅끝까지의 기억에 다다른 걸까. 그렇다면 그 다음은 무슨 기억일까.

아무튼, 그렇게나 어렸던 시절에는 오천원 한장보다 천원짜리 세장을 받는 용돈이 더 좋았던 때다.

엄마는 그 때 내가 받아오는 용돈들을 전부 내 어린이 통장에다 넣으셨다. 뽀로로 통장이었던 것도 기억난다.

20살이 되어 학생증 발급을 위해 학교 앞 농협에 들렀었다. 거기서 나도 몰랐던 또 다른 내 명의의 계좌가 발견됐다. 엄마가 어느 새 부턴가 발길을 끊었던 그 통장이었다.

몇살 부터 몇살때까지를 모은 건진 모르겠지만, 정확히 106만 5천원 정도는 있었다. 나는 그 계좌를 그 자리에서 입출금이 가능한 계좌로 변환시켰다. 그리고 엄마에게 연락이 갔는지 나한테 전화가 왔었다. 엄마는 쓰지 말라고 하셨다. 기특하게도 나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올해, 내가 스물둘이 되는 해에 아빠는 30년이 넘도록 청춘을 바쳤던 직장을 그만두셨다.

엄마는 그 계좌에 있는 100만원 정도의 돈을 전부, 내가 스스로 돈을 모았다가 썼다가 하는 계좌로 옮기기로 했다.

보호자와 함께 와야만 쓸 수 있었던 그 계좌는, 어느 샌가에 성인이 되어버린 내 탓에 어린이 통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엄마와 그 돈을 빼내어 내 계좌로 입금시키면서, 그 통장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우리 학교는 어마어마한 빚을 갖고있다 했다. 학생회를 시작하면서 얼핏 들은 얘기다. 액수도 상당한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데 성적장학금을 주지도 않고 이번 학기에는 전부 코로나 장학금 10~20 정도만 들어온다.

다행히도 총학생회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던 나는 근로장학금으로 100만원이 조금 넘게 들어왔다. 내 장학금은 총 130정도였다. 그리고 그 돈은 우리가 가질 수 없다. 등록금 금액이 자동적으로 차감될 뿐이었다. 때문에 아빠가 은퇴하시기 전까지는 회사에서 등록금을 전부 지원해주었기 때문에 굳이 받아낸 장학금들이 아까워 미치는 줄 알았다.

엄마는 이제 은퇴를 했으니 장학금이 생기면 그 액수만큼 나에게 용돈을 주라고 아빠를 설득하기로 했다.

2학기 준비를 위해 서울로 올라갔고, 며칠 뒤 아빠가 100만원을 넣어주셨다. 130은 안되겠고 그래도 100만원이니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라,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빠를 잘 알기에 그냥 감사하다고만 답하고 아무 말도 않았다.

그렇게 200만원이 갑자기 수중에 생겼다. 저축하려 했는데, 사실 갑자기 돈이 여유있게 생겨버리니 눈에 안 가는게 있을 리가. 우선 본가에 있을 때 동생에게 피자를 사줬다. 참 잘 먹더라. 옛날 일들이 생각나면서 남동생이 꼭 내 아들인것 마냥 신경쓰고 챙겨주게 되었다. 사실 엄마도 아빠도 동생 성격을 포기한 지는 꽤 된 거 같으신데, 아무래도 가족 중에 동생과 제일 친한 나, 그리고 큰언니한테 대신 신뢰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는 이제 그만 할 일을 다 하셨다 생각했고, 동생에게 작은누나이자 없는 형이자 마인드 컨트롤을 도와주는 또 다른 엄마가 되어주기로 결심했다. 내 새끼, 보기 드문 품절남으로 만들어줄거다.

아무튼 1년 전부터 계속 눈여겨 보고 있던 전자피아노를 자취방에 장만할지,

갑자기 신강자로 등장해버린 아이패드를 장만할지가 고민이었다. 취미로 치자면 전자 피아노가 현명했고 훨씬 저렴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아직 내 집도 아닌 그저 세 들어 사는 원룸에다 짐을 더 늘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 판단이 됐다. 내가 투룸 가면 생각해볼게, 안녕 건반들아.

아이패드는 한 3달전 정도부터 계속 관심이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태블릿 pc를 장만하는 친구들도 많아졌고, 애초에 내 주변에는 웬만해선 다 갖고 있더라. 많은 이들이 갖고 있으니 나만 없으면 뭔가 허전하다는 심리에 더불어 아이패드가 있으면 생기는 장점들을 조합해보니 엄마도 그쪽이 좋겠다고 하셨다. 딱히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엄마는 아이패드가 나 빼고 동기들은 다 갖고있는 학교 준비물 정도로 취급하셨다. 돈 생긴 틈에 얼른 사라며.

그래도 큰 금액이니 빈둥거리고 있다가 오랫동안 써온 친구가 놀러왔을 때 이것저것 구경하고 얘기를 들어보다, 순식간에 결제해버렸다. 내 통장은 다시 100만원도 없는 통장이 되었다. 그래도 50만원은 넘게 있었다. 더 이상 건드리면 안되겠다, 생각했다. 한번에 훅 사라지니 조금 허한 느낌도 들었지만 이틀 뒤에 도착한 아이패드 에어 4세대와 애플펜슬 2세대를 어색해하며 만지작 거리다보니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서둘러서 케이스를 사고, 역시나 갖고 있는 온갖 스티커들을 꺼내 케이스를 다이어리 꾸미기 하듯 붙여댔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쯔음 그림에 잠깐 관심을 가졌던 친언니가 싸게 산 옛날 타블렛을 노트북에 연결해 클립스튜디오도 항상 체험판으로 사용하면서 매일마다 한장씩 그림을 그렸다. 아이패드가 생겼어도 타블렛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아이패드에다가 클튜 앱을 설치해서 조금씩 손이 익숙해지게 연습 중이다. 재밌다. 할 것도 없는데 계속 펜을 들고 뭔가를 누르고 싶었다. 내가 이런 신문물 기계를 만지다니, 이 할미는 벅차올랐다.

그리고 아이패드를 장만하기도 전에, 2년 뒤 이사갈 본가의 모든 짐을 들고 올라와 정리하면서 크게 다짐했던 한 가지. 장난감이든 뭐든 더 이상 짐을 늘리지 말자. 고전완구 콜렉션도 여기서 그만 중지하기로 했다.

아니 글쎄, 근데 친구 D가 나와 함께 있을 때면 몇년을 쑥대밭이 되도록 뒤져도 못 찾아내던 초레어템 매물이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나곤 했다. 그렇게 지난번에 또 한 레어템을 발견해 충동적으로 질러버렸는데,

와, 이번에 백신 맞고 서로의 왼팔이 되어주자며 내 자취방에서 놀고 있을 때 다시 한 번 그 기적이 일어났다.

번개장터도 알림을 다 꺼놓고 한참을 안 들어가고 있었는데, 친구가 옆에서 구경하는게 재밌어 보여서 나도 오랜만에 접속했다.

그리고 신쌍공(신비한 별의 쌍둥이 공주_고전완구나 고전 마법소녀물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작품_이 작품은 다른 작품들보다도 매물이 훨씬 찾기 어렵다)

푸모박스를(대충 거기 나오는 수호신 같은 캐릭터가 잠들고 깨어나는 예쁜 박스다) 단숨에 찾아버렸다.

심지어 10만원.

그래, 어찌 되었겠나.

5분 정도만 머리를 쥐어 뜯으며 괴로워하다 바로 문의 때리고 바로 번개페이 결제 갈겼다.

10분 뒤에 이게 도착하면 또 어디다 둔담, 하고 친구와 방을 둘러봤다.

사실 이 두가지들을 사게 된 걸 자랑하고 싶어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이제보니 도대체 무슨 흐름의 글인지 이도저도 안되는 뒤죽박죽한 글이 되어버렸다.

몰라, 껄껄.

워크샵 과목 프리프로덕션 때문에 며칠 동안 빡쳐 있어서 뭐라도 주저리주저리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때 속 시원하냐?

그럼 초고나 써라, 얼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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