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떫음 Jul 20. 2022

당신들이 없는 세상

떫은일상_2022. 3. 25

주일에는 수, 목이 제일 바쁘다. 목요일은 녹화가 있는 날이고, 수요일에는 지난 주 녹화분 종편 된걸 내보내는 마무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아주 복잡하고 정신이 없더라.

사실 굳이 그렇게 일을 많이 해서라기보다는 그냥 내가 저질이 되어버린 탓이긴 한데,

일을 어느 정도 끝낸 오후 4~5시쯤이 되면 손, 다리가 덜덜 떨린다는 것이다. 가만히 서 있으면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제대로 중심 잡고 서있기가 힘들다. 퇴근 길에 지하철에서가 제일 위험하다. 타자를 칠때면 손이 덜덜 떨리지만 그래도 타자는 잘 칠 수 있다. 문제는 펜을 쥐고 수기를 쓸 때면 그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글씨가 개발새발 떡이 된다. 제대로 쓸 수가 없다. 이게 정말 내 마음대로 안 되더라. 평정심을 잡아도 신체가 따라주지 않는 수준까지 온 거다.

정신적인 건강은 매우 안정된 요즘이다.

첫 출근하기 전날, 3주 만에 병원을 찾았을 때 선생님께서 놀라운 변화라고 해주셨다.

내가 병원을 처음 다니기 시작했을 때에 비해서, 약의 비율도 놀라보게 줄었다. 저녁타임의 약은 아예 사라진 지 오래고, 아침 약도 3알 정도에 반 알을 추가한 그 정도다. 취침약도 마찬가지다. 3알 정도밖에 없다. 그 마저도 아침 약을 가끔 까먹어도 별 이상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며칠씩이나 빼먹은 적이 없어서 정확한 금단현상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선생님은 아침 약에서 강박증, 불안증과 관련한 약을 한 번 없앴었는데, 근 한 달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상태가 어땠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당황하면서 저는 그 약을 뺀 줄도 몰랐어요, 라고 답을 하자 선생님께선 환하게 웃으시면서 답해 보였다. 정말 좋아졌어요, 정말.

그리고 3주 더 생활해보고, (직장생활 시작으로 인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하기 때문) 그 이후에도 괜찮은 것 같으면 이젠 취침약도 어느 정도 조절을 해보자는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 본가에 내려갔다 늦게 올라오면서 취침약이 3일은 끊긴 적이 있었다. 난 그 3일 내내 잠을 단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정신은 자고 있었으나 몸은 자고 있지 않았다. 그냥 잠이라는 존재를 갈망하다 못해 미쳤지만 그것에 대한 방법 자체를 잊어버린 몸으로 살고 있었다. 새벽마다 공황이 왔다. 그저 죽고 싶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너무도 괴로워서.

그냥 죽어버린다면 평생 편하게 잠을 잘 텐데, 라는 심정에서였다. 날도 따듯한데 병에 걸린 것처럼 오한에 덜덜 떨며 어두운 방 안을 기어 다녔다. 볼 일도 없는 화장실을 드나들면서 수십 번을 어떻게 죽어야 편하게 죽을 수 있는 지를 떠올렸다. 친구들이 보고싶다느니 내가 죽으면 슬퍼할 사람들의 처지라느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우울증과는 심도 자체가 달라진다. 나는 그런 감정의 여유를 생각할 수가 없다. 내 정신엔 여유라는 것 자체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당연하게도 그 이후에도 약을 하루만이라도 먹지 못하게 된다면 똑같이 됐다. 올 2월에만 해도 그랬다. 겨우 한 달 지났다. 그런데 취침 약을 조절 할 때가 왔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듯했다.

내일은 그 3주 만에 다시 병원을 찾는 날이다. 과연 내가 취침 약을 줄일 수 있을까. 줄이게 된다면 정말 잠을 잘 수가 있을까. 근 두달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의 사소한 모든 것이 무섭고 두렵고 끔찍했다. 일어나지도 않을 법한 불안에 미리 떨었다. 새로운 도전과 의지가 항상 가득했던 옛날의 나에 비해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그저 잠만 자고 깨어있으면 울기만 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것밖에 하고싶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난생 처음 하는 회사생활도 아무렇지도 않다. 새로운 사람들의 모습에 상처를 받더라도 나는 나대로 잘 지낸다. 내 방법대로 다른 삶을 산다. 신경쓰이지도 않는다.

예전의 나로 돌아갔다기 보다는, 그 상태에서 조금 더 성숙해진, 정말 새롭고도 익숙한, 온전한 ‘나’ 라는 모습으로 탈바꿈 되었다. 그랬다.

19, 20살 때 미친 듯이 휘둘리던 그 ‘정체성’ 이란 것을 나는 만들었다. 되찾거나 발견한 것이 아니라 그 동안의 시련들을 통해 성장하며 진짜 ‘나’를 만들어낸 것이다.

후회 하지 않는다. 상처 입고 고통에 쓰라려하던 지난날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기억들을 지우고 싶지도 않다.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 지나가 고스란히 간직하고 그 기억을 갖고 있는 지금의 ‘나’가 좋다. 그것이 가장 완벽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하루하루가 지나가면서 나는 매일 또 달라지며 성장한다. 살아가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는 계속 달라진다.

나는 그렇게 계속해서 익어갈 것이다. 하지만 영원히 떫은 감일 것이다. 평생을 배우면서 익어갈 거니까. 수명이 다하는 그 날에 마침내 완숙된 열매가 될 지도 모른다. 그건 모르는 일이다. 나는 그렇게 내 사명과도 같은 이 ‘떫다’라는 정체성을 한결 같이 간직하고자 한다.

내 사람들이 지켜봐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믿어줬으면 한다.

예전에는 사람들은 무서우니 믿지 말라고 가르쳐주곤 했다.

한 가지 기억나는 건 “그럼 너도 믿으면 안 돼?” 라고 던지던 친구의 물음.

나는 답하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답 할 수 있다. 명확하게. 나만 믿어도 아니다.

나를 믿어. 그리고 너를 믿어. 나도 너를 믿어.

내 인생에는 당신들이 포함되어 있다. 내 인생의 가치에 당신들이 포함되어있고, 그 뜻인 즉슨 당신들이 내 인생의 가치를 만들어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 정말 나 혼자만의 힘으로 왔을까?

나는 이제 당신들이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없다. 아니, 상상하지도 않을 거다.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혹여 믿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지라도, 그렇게 해서 내가 바닥끝까지 무너진다 해도 당신들은 세상에 존재할 것이다. 사라지더라도 내 안에서 평생토록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서로를 기억하자.

작가의 이전글 동굴 가장 깊은 곳으로의 진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