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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떫음 Jul 12. 2022

무의식에서 이어진 필름조각들(4)

떫소리_2022. 3. 30

여기서부턴 위에서 말하던 고등학교 시험 친 후 상황부터다.

그 파일을 보신 엄마는 처음으로 네가 하자는 걸 해보자며 대화를 꺼내셨다. 내가 입시 학원을 찾게 되면 어김없이 지원해달라고, 부모님과 그렇게 약속했다.

몇 달 후 수십번의 서치로 찾은 부산의 영화, 시나리오 공부 수업을 찾았고 또 한 달 동안 반대로 인해 싸우고 부딪혔다.

끝끝내 지원해줄테니 전부 알아서 하기로 했다. 나는 길도 모르는 부산을 어거지로 혼자 찾아서 꾸역꾸역 향했다. 길도 헤매고 사무실 문 앞에서 무서워서 한참을 서성이다 용기내서 노크하고 들어갔다. 연락했었던 학생이라고 말하고 가르쳐달라고 말씀드렸다. 아무 정보도 없어서 대충 유명한 대학교 이름을 대면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날 뿌듯하게 첫 수업을 해보고 집에 무사히 돌아갔다. 엄마는 학원에 대한 얘기를 듣기 싫어하셨다.

1년 쯤 다녔을까, 핸드폰이 실수로 박살났다. 18살이면 친구들이랑 연락하고 지내는 것부터 시작해 모든 게 없으면 안 되는 핸드폰이다. 더구나 항상 다른 일이 생기곤 하던 학생회 일도 밤늦게까지 단톡방에서 얘기를 주고받고 다음날 아침에 모이기도 하고 했는데, 나는 일절 전달받을 수 있는 게 없어서 고생 꽤나 했다. 점점 소외되는 것만 같아 더 겁을 먹었고 핸드폰을 사달라고 재촉했다. 그랬다가 아빠한테 호되게 혼나서 방에서 혼자 훌쩍거렸다.

그러다 부산에서 대회 하나를 나가게 됐는데, 핸드폰이 없어도 일단 나섰다. 고1때 학교에서 견학으로 갔던 장소와 같은 곳이어서 머릿속에 남아있는 그 풍경만 떠올리며 무작정 버스에 올라타고 봤다. 나는 해운대 바닷가를 상상했는데 웬 도심속에 떨어졌다. 거기가 종점이랜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 편의점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길을 물어봤지만 친절한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회는 이미 시작한 지 오래였다. 나는 집에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집에 가는 법도 모르겠어서 해수욕장 방면이라는 표지판을 하나 보고 눈 앞에 바다가 나올때까지 뛰어보자, 라며 달렸다. 진짜 바닷가가 끝끝내 나오고 내가 위치한 곳에서 가장 오른쪽 끝에 내가 떠올리던 그 풍경의 장소가 보였다. 그곳까지 또 죽어라 뛰었다. 도착하니 대회가 마감하기까지 2시간 밖에 남지 않았었다. 종이를 받고 털썩 주저앉아선 연습장에 생각나는 걸 5분 동안 갈겨 적다가 30분을 구상을 하고 냅다 1시간 만에 글을 전부 쓰고 30분 남았을 때 제출해버렸다.

내가 뭘 했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너덜너덜한 상태로 바닷가를 걸었다. 혼자 바닷물에 손도 담가보고, 작년에 학교친구들과 왔을 때를 회상하고, 길 지나가다가 해운대 길에서 버스킹하는 것도 서서 관람하다가 어찌저찌 터미널을 찾아서 집으로 갈 수 있었다.

그 대회에 나갔었다는 것도 잊어버릴 쯤, 한 달은 지나서 종례시간에 갑자기 학교로 도착했다는 상을 받았다. 그 대회였다. 그 날 하루 동안도 믿지 못했다. 가을이 되면 전국 여기저기에서 대회를 하던 철이었는데, 그 다음에 급하게 그냥 나가봤던 대회에서도 대뜸 상을 타고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학년 때부터 상을 숨겼던 나는 좋은 성과들을 줄줄이 받아와도 별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 가끔 엄마가 내 방에 들어오시면 책상에 두었던 걸 보여주긴 했다. 자세히 설명하지도 않았다. 궁금해 하지도 않으실 거 같아서.

그리고 그 뒤 3학년 때 1년 동안 갈고 닦았던 공모전 작품 수상소식을 들었을 때도 나는 벅차오르지만 부모님 앞에선 무덤덤하게 있었다. 그 때 선생님께서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시상식에 오곤 하는 큰 규모의 공모전인데 부모님께 말씀드려보라고 하셔서 큰맘 먹고 소식을 전했다.

그 때 엄마가 시상식에 남동생을 데리고 오셨었고, 근처에서 꽃다발도 사서 주셨다. 심지어 내가 그 공모전에서 대상이었다. 계속 이름이 불리지 않아서 어리둥절하다가 마이크에 말도 제대로 못하고 얼떨결에 받았다.

그 날 함께해준 친구들과 부산에서 실컷 놀다가 집에 돌아갔을 때 아빠가 물어보셨다.

상에 대한 얘기를 해드렸더니 아빠는 나를 쳐다보진 않으셨지만 “수고했다.” 한 마디를 해주셨다.

방에 들어가서 기뻐서 무릎에 얼굴을 박았다. 기억하는 칭찬 중에 최고였다. 퇴근하고 돌아오시면 자고 있는 남동생에게 학원 다녀왔다며 멋진 놈이라느니 가득 칭찬을 해주시고, 친가 친척 중에서 공부도 제일 잘하고 얌전한 언니에 대한 자랑을 하곤 하시던 아빠로부터 수고했다라는 말 한마디 들은 게 내 스스로 너무도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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