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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떫음 Jul 01. 2022

[영화] 순전히 나만 보기 위한 떫평 :<완벽한 타인>

떫평


2020년에 연기론 수업 하면서 썼던 과제인데,


오랜만에 발견해서 여기다가 기록으로 남겨둔다.


이 작품은 제목에서 이미 주제를 다 내포하고 있다. 타인이란 것은 결국 완벽하게도 나와 떨어진, ‘타인’ 그 자체임을 말이다. 친구도 가족이다, 핏줄 무서운 줄 모른다, 라는 말이 떠도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 인물들은 무려 40년 지기나 되는 친구도, 가족인 부모에게도, 배우자에게도, 완벽하게 타인처럼 행동하고 있었다는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관계의 파국이 일어난다. 물론 그 진실을 알게 된 후의 또 다른 행동까지도 모두 각자가 선택해야 할 난관이다. 영화는 석호와 예진의 집들이를 주 배경 장소로 설정하면서 그 안에서 모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한 장소에서만 이루어지는 스토리에 어떻게 집중할 수 있느냐하면, 그것은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도 물론이지만, 그들의 뼈대가 되는 플롯, 즉 시나리오가 압도적인 까닭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이창>을 예로 들어보자. 이 작품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은 자신의 아파트 방 안에서만 행동한다. 그러다 마침내 자신의 (타인을 바라보는 관음) 시선이 발각되면서 아파트 밖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이는 서스펜스 장르다. 겨우 조그만 방 안에서만 일어난 사건에, 우리는 영화를 시청하면서 노심초사하기 마련이다. 완벽한 타인 또한 그랬다. 수많은 캐릭터들 사이에서도 배우들은 각자의 캐릭터를 노련하게 만들어냈으며, 윤리적으로는 전혀 어긋난 행동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각각의 캐릭터의 상황에 이입하게 된다. 지루할 틈이 전혀 없다. 의식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대사가 대체 어디까지 사람을 몰고 가는 건가 애가 탄다. 심지어는 영화가 아주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건 그들이 우리 모습을 비추고 있다는 뜻이다. 완벽한 타인, 나는 인생에서 내 사람들을 그렇게 여기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 또한 나를 그렇게 여기고 있는 걸까?



친한 친구들을 만나든, 새로운 사람을 만나든 우리는 ‘대화’의 자리를 가진다. 인간은 소통할 줄 아는 동물이며 그를 위한 ‘언어’ 등등 많은 매개체들을 창조하기까지 했다. 그런 우리에게 소통의 가장 기본인 대화는 필수적이다. 친한 친구는 너무 편안하고,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점이 많아 대화 장에 아무거나 툭 던져도 자신들만의 추억을 연상시킨다거나, 등등 얘기를 이어나간다. 새로운 인연 또한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하고자 상대방의 흥미를 이끌만한 건덕지를 물고 온다. 그 소재가 뜬금없을 지라도 상대방은 대답을 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흔히들 말하는 의식의 흐름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서로 간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갖고 있으면서 반갑고, 편안한 분위기를 추진할 수 있는 사이로 저희들만의 대화를 아무렇게나 이어나가도 우리는 금세 그들 사이의 설정을 추측할 수 있고, 어느새 내가 아는 누군가가 된 듯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별 거 아닌 남들의 일상적인 대화 엿듣기를 즐기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부분일수도 있다고도 생각했다.


이렇게 한 장소에서만 스토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나가는 작품은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고 나는 평가한다. 지나치게 배경 전환이 없어도 흠이 될 수 있는 부분인데, 어떻게 그 하나의 가상공간을 만들어 대중들의 이목을 끝까지 이끌 수 있는가 싶다. 나도 언젠간 이런 아이템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올까? 하며 좋게 평가하는 반면, 아쉬운 점을 말해보자면 역시나 캐릭터들에게 있다. 작품이 개봉된 해는 2018년으로, 내가 겨우 미성년자였던 년도였다.(그래봤자 19살이었지만) 당시 작품을 보았을 때는 와, 어떻게 저렇게 티키타카가 맞게 대사로만 플롯을 이어갈 수가 있지? 감탄하며 보았다. 저희들끼리 “우리 태수 좆됐구나,” 라며 심각한 상황에서도 던지는 비속어가 나와 친구들 사이에도 해당되는 당연한 장면이었으니까, 웃으며 볼 수 있었다.


그 때는 어려서 마냥 작품의 플롯만 분석할 줄 알았다. 그러다 22살인 지금, 아, 완벽한 타인 재밌지~라며 대본 리딩을 위한 연기를 생각하며 캐릭터들에게 집중해 봤을 때는, 어딘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학생 때는 천진난만하게, 차마 다가오지 않았던 그런 어른들의 속사정이 우습게 보이기만 했을 수도 있다.


마치 남 일처럼, 저런 일이 흔해도 우리 가족은 아니거든, 이라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법적으로도 성인이 되며 사회에 차츰 발을 들이게 된 지금은, 이성적으로 작품을 볼 줄 알면서 작품 속 인물들이 나와는 나이차가 꽤 크면서도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옛날처럼 사람을 좋아하던 나는 언제부턴가 누군가들에게 선을 그으며 행동하고 있다. 가면을 쓰고 행동하고 있다. 바람 피우는 건 용납 못해, 라는 나만의 관념을 갖고 있을 지라도 내가 정말 감정적으로 끌리는 상대를 만나게 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도 결국엔 본능에 충실하기 위해 사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이번 <완벽한 타인>은 ‘거울’이었다. 아직 오지도 않았고, 올지 오지 않을 지도 모르는 일들이지만, 어릴 적 편안하게 영화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친구들 부부와 다 같이 모여서 좋은 식사를 갖곤 하는 미래를 맞이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던 때와 다르게 와이프가 되는 인물들이 왜 남편 때문에 억지로 서로를 만나고 친한 척하는 기분이 들지? 저런 식으로 굴면 세경이라는 인물의 집안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만약 예진이었다면 딸에게 저러지는 않았을까? 태수는 시작부터 정말 밉상인 캐릭터다. 와이프가 남이야? 태도가 어떻게 저럴 수가 있담. 아니, 친구들끼리 동성애자도 이해 못 해주나? 말이 저따위야? 등등 오만가지의 생각들이 난무했다.



영화를 다 본 후 찝찝한 기분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내 핸드폰을 들어보았다. 꺼진 화면부터 내 얼굴을 비추고 있는 이 녀석은 당연하게도 나의 개인정보부터 아무도 모를 수 있는 대화와 나의 사적인 취향까지도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인물들을 바라보며 혀를 차던 조금 전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내가 이만큼이나, 사람들을,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며 살게 됐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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