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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떫음 Jul 01. 2022

떫은 왼팔의 매생이 설화

떫소리_떫은 동료에 관한 고찰




_2020.01.17_

내 왼 팔목에 매생이가 새겨진지도 어엿 반년이 다 지나갔다.


왼팔의 매생이 설화


_ 떫은 동료에 관한 고찰  by. 감떫음




타투를 하게 된 계기는 꽤나 충동적이었다.


기존에 미성년자이던 시절엔 내 취향의 도안을 보게 되면 예쁘다~라는 생각에서 그쳤었다. 그러다 대학 동기가 새긴 걸 구경하면서 혹하게 된 심정이었다. 한창 날이 더워지면서 학교에서 그 친구를 마주칠 때마다 팔에 새겨진 그림을 구경할 수가 있었다.


1학기 첫 종강을 맞이하고 며칠 지나 몇몇이 모여 술자리를 가졌고, 그렇게 무더운 여름날 홍대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다.


그 때 옆에 있던 그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보다 무언가에 끌린듯 혹하면서 스스로 근처에서 할 수 있는 도안을 서치해보았다.


왠일로 마음에 드는 도안을 금방 찾게 돼었는데, (술김에 결정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날 새벽에 바로 결정을 내려 약 일주일 후 지금의 매생이를 내 왼팔목에 새겼다.



20살이 되어 처음 맛 본 또 다른 아픔이었다...



나름 소심했던지라 작은 사이즈로 하려 했는데, 그렇게 하면 별 티도 안난다기에 10cm 정도의 스케치를 현장에서 대어보고 고민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으아, 하필 타투이스트 분이 착각을 하셨는지 10cm부터 15cm까지 도안을 뽑아놓으신거다.


이제 와서 '저 7cm정도를 생각하고 왔는데요...'라고 번거롭게 굴기도 귀찮고 죄송해서 (이쯤되면 참 만사가 귀찮은 녀석이다) 게 중에 제일 작은 10cm로 사이즈를 결정했다.


하고 나선 나름 괜찮다 생각했는데 이를 처음보게 되는 사람들이 다들 너무 크다며 놀라는 반응부터 보였다.


그래도 타투받는 도중에는 여러분들이 오셔서 예쁘다며 구경도 하셨다. (그래서 아픈 티를 더 못 냈다)


타투이스트 분은 내가 너무 멀쩡하게 잘 참고 무덤덤해서 처음이 아닌 줄 알았다고 하셨다. (그렇다고 혼자 아프다고 눈물 찡찡 발악할 순 없으니까...아무렇지 않은 척 한 손으로 죽어라 열심히 핸드폰 했다)


실은 팔에 철심을 박는 줄 알았다.



며칠 후 내려갈 고향에서 마주할 부모님과의 상의는....그렇다. 흔히들 말하는 '선타투 후뚜맞'이었다.



새겨도 하필 왜 뱀을 새기냐, 네가 조폭이냐, 왜 이렇게 크게 했냐, 차라리 안 보이는 곳에 하지 그랬냐, 지울 땐 어쩌려고 그러냐 부터


나중에 직장에서 뭐라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결혼하기 전에 그런 거 박는 거 아니다, 남자친구나 남편 될 사람이 싫어하면 어쩔거냐,


보기 안좋다, 너를 뭐라고 생각하겠냐, 미래에 태어날 자식한테는 어떻게 보일거냐 까지...


내 매생이를 마주하게 된 주변 사람들 모두가 먼 훗날의 나의 생활에 대해 엄청난 질문들을 던져주었다.



그리고 다들 이렇게 물어보자고 약속이라도 한 듯 어떻게든 끝으로 던져주는 것은


'후회 하지 않냐'


라는 말이었다.



반년만 지났는데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 질문을 받아왔을까. 이미 본 친구들도 다시 볼 때마다 같은 소리를 하기도 한다.



참, 이 친구가 매생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별 이유 없다.


막 타투를 했을 때는 그 위에 랩을 씌워 붙이는데, 왠만하면 스스로 뜯겨질 때까지 내버려 둬야한다. 요 며칠 동안엔 아주 쓰라리면서 아픈데, (아무래도 생살에 상처를 냈다 보니, 혈관이 팽창한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타투의 잉크나 진물이 한동안 뿜어나오면서 씌워진 랩 주름 사이로 줄줄 흐르기도 하고, 완전한 발색이 되는데까진 시간이 좀 걸린다.



그러다보니 랩이 씌워진 상태의 타투는 뭐랄까 형체를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달까.


고향에서 그 상태로 친구 한명을 만났는데 내 팔에 무슨 감초나 미역 덩어리를 달고 나타난 줄 알았댄다. 이후로 친구가 내 팔을 볼 때마다 매생이 같다 매생이라고 했는데 보다보니 도안에 있는 뱀의 생김새에 걸맞는 이름이 매생이처럼 여겨졌다.


매생이는 그 이후로 매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내 타투를 소개할 때마다 매생이라고 소개해준다.


(한동안 연고를 바르면서 매생아 밥 먹자~며 문질문질해주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은 멋있다 예쁘다, 라는 반응을 보여주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아직 늦더위가 가시기 전쯤의 추석이 왔을 땐 왜인지 나도 모르게 친척 어른들, 더구나 할머니 할아버지께는 도무지 보여드릴수가 없어 반팔티에 얇은 바람막이를 잠에 들기 직전까지 걸치고 생활했다.


길을 가다가 친구네 부모님을 마주쳐 인사 드리려 할 때도 바로 눈에 띌 매생이를 먼저 걱정하게 되기도 했고,


그렇게 주로 어르신들을 뵙게 되는 면들에서 한동안 후회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여름 방학 동안 단편 영화 촬영 현장에서 막내 스텝으로 일하기도 했는데, 작품상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들이 많이 계셨는데 핀잔을 주시는 분도 계셨다. 비아냥 대는 좋지 않은 말씀은 아니었지만 눈초리는 그닥 곱지 못하셨다.



돈이 아까워도 금방 지워지는 헤나같은 결정을 하지 않은 내가 너무 한심했다.



추석날 삼촌은 (예전부터 삼촌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나의 예술성을 공감해주곤 하시는 분이시긴 했다)


다른 친척어른들의 눈초리와는 다르게 내 매생이에 관심을 가져 주셨다. (외가는 모르지만 친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안 계셔서인지 부모님께서 미리 다 말을 해놓으신 상태였고, 때문에 그곳에선 내가 새로 들여온 로봇팔을 보여주듯 모두에게 구경시켜드리는 분위기였다)


왜 이 친구를 새기게 됐냐는 질문에 선뜻 명확한 답을 드리진 못했다.


약 그 일주일 전 새 아르바이트 직장에서의 선임 언니가 무슨 의미인지 물어봐도 되냐고 했을 때도 그랬다.



이후 내가 너무 생각없이 정말 막 했나 싶었는데 그러기엔 뭔가 내 마음 한구석에 매생이를 들이고자 하는 욕구가 잠재했음은 분명했다.



처음 그 선임 언니에게는 그렇게 말했다. 내가 평소에 좀 강하고 악한, 사악한 느낌의 동물들을 좋아한다고.


호랑이, 상어, 뱀, 악어 등등...


또는 고3때 반에서 심리학 준비하는 친구에게서 그림 그리는 심리테스트를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


알파벳 S 모양에 그냥 끌리는대로 뱀을 그리고, 그 그림에 대한 느낌으로 사악하다고 적었다. 그 친구는 그게 내 미래를 뜻하는 거라며 해석해줬고 장차 작가가 되고 싶은 나는 사악한가...? 라는 의문을 스스로 제기하기도 했다.



악착같이 노력해서 가고자 하는 대학에 입학한 나는, 막상 올라와선 새로운 터전에서 이런저런 경험 좀 하고 적응해본다며 생각보다 많이 유순해졌었다.(그냥 논다는 핑계로 완전히 풀어진거다)


뭐든 열정적이고, 내 예술을 위해선 물불 안가리려던 의지를 보이던 감떫음은 그새 온데간데 사라져 버린 것.



입시 면접에서 시나리오 작가의 역할에 대해 한 단어로 축약해보란 질문을 받았을 때, 당황했지만 무의식 중에 나도 모르게 던진 대답은 '사기꾼' 이었다. 무의식 중에 나는 작가는 사기꾼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그 생각이 문득 떠오른 나는 삼촌께는 작가로 성공하려면 사악해져야 된다 싶어서 이를 상기시키려고 매생이를 새겼다고 말씀드렸다.


추석 때의 나는 2학기 개강을 했고, 지난 학기 동안 유순하게 놀고 허둥지둥대며 타인들에게 데이고 했던 나를 한창 자책하고 있었던 시기인만큼.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고 친구 한명이 내가 토끼띠인데 몸에 뱀을 새기면 어떡하냐며 타이르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보니,


나는 참으로 겁쟁이다. 앞부분만 얼핏 봐도 그럴 것이 마이웨이라며 저질러 놓고는 남들이 하는 말엔 오뚝이처럼 왔다갔다 흔들린다.


아주 어릴 적 나는 친구들과 어른들 사이에서 늘 겁쟁이로 찍혀있었다. 때문에 왠만하면 남들이 날 보살펴주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계속 성장하던 어느 순간부터 독립심이 커지던 내 모습은 끝에 가서야 첫인상을 맞이하게 되는 주변인들이 무섭게 여기는 독보적인 사람으로 되어 있었다. 이성들은 독보적인 내 이미지에 쉽게 다가가는 것을 낯설어한다고도 한다.


겁쟁이 시절부터 날 봐온 친구들은 지금 감떫음이 그저 그렇겠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보던 내 겉성격은 아주 굳센 편이다.


18살때 까진 내 스스로도 내 성격이 그런 줄 착각하고 지냈다.


알고보니 겁나는 모든 걸 털털한 척하며 내가 상처 입는 걸 방어하는 행위에서 만들어진 겉성격이었다.


내가 동경하는 강인하고 사악한 호랑이, 뱀과 같은 동물들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나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내 취향으로 생긴 (주로 고르는 것들의 생김새가 다 나를 닮은 편이라고도 한다)


인형들을 크기 상관 않고 모으는 편이다. 그러지 않으려해도 내가 끌리면서 사들이게 된다. 작은 친구들은 가방에 데리고 다니면서 동반자라고 칭한다.


어느덧 성인이 된 나는 생각도 못한 더 악한 세상을 맞닥뜨리게 됐다. 지금은 옛날처럼 대놓고 동반자들을 아무 곳에서나 가득 데리고 다니기도 곤란한 상황이 많더라.


성인이 된 나는 성인부터 할 수 있는 권한인 매생이를 또 그렇게 이끌리듯 팔에 담았다.



겁이 많은 나는 옛날부터 나도 모르게 주변에 나만의 동료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지금 와서야 알게 된 매생이의 존재 유무는 내가 사악해지기 위함도 뱀을 좋아해서도 아닌


그저 나 자신의 내면이 겉으로 크게 드러난 것뿐이였다.



언제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들어본 것도 같다. 조폭들처럼 문신이 많은 사람일수록 오히려 내면의 겁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두려울 것이 많으니 그런 식으로 방어하는 심리라는 거다.


물론 요즘 들어서의 타투는 전혀 그런 의도로 새겨지는 것이 아닌 인식이지만 그 말이 지금의 나에게는 어느정도 들어맞는 경우라고 보게 되었다.



반년이나 매생이와 함께 하고 나서야 나는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더는 내 안의 겁을 외면하지도, 숨기지도 않고 앞으로는 그냥 솔직하게 부딪혀봐야겠더라.


이왕 생겨난 내 왼팔의 동반자도 있는데 말이다.


그렇게나 주변에 흔들린다고 해도 어쨌든 오뚝이처럼 왔다갔다하는거니 언젠간 감떫음인 나로 우뚝 세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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