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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떫음 Jul 01. 2022

무의식에서 이어진 필름조각들

떫소리_

_2022.3.29_


<눈이 부시게> 드라마 마지막화를 보다가 할머니 생각이 났다.

밤중에 미친 듯이 오열하고 울었다.

요즘 계속 그러는 거 같은데. 며칠 전에는 불꺼놓고 멍하니 벽에 기대 앉아 있다가 할머니한테 말을 걸면서 울었다. 보고 있냐고. 그럼 내가 미워하는 거 다 아시냐고. 무슨 생각 들었냐고.


미안하다고. 그냥 죄송하다고. 근데 왜 그랬는지 한 번만 얘기해주면 안되냐고, 한 번이라도 내 꿈에 나오면 안 되냐고 주절주절 대면서 가슴 부여잡고 끅끅 울어대다가 지쳐서 잠들었다.


한 번은 그냥 너무 외로워서 울었다. 뭐랄까 나는 사람을 정말 좋아하고 내 스타일이면 어느 정도 호감이 생기지만 상대는 그렇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같은 되도 않는 생각.


꼬시는 법이 진짜 따로 있나? 예쁘기만 하면 된다는데 내가 안 예뻐서 그런 건가? 거기서 내 모습 처음부터 끝까지 뜯어보기 시작하면서 자책을 했다. 자기 관리 못하는 나도 한심하고 이렇게 가만히 누워서 자기비하나 하고 있는 내 꼴도 싫고 끝없이 자책을 이어간다.


근데 그러다가 친한 언니가 카톡으로 ‘잘 자 우리 동생 내일도 우리 파이팅’ 한마디 보낸 걸 봤는데 잘자 우리 동생 이라는 그 한마디가 나에겐 얼마나 많은 의미로 와닿는지, 그걸 보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면서 또 훌쩍여댔다.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나에게 잘, 자라고 말해주는 것과 ‘우리’를 붙인 자기 동생처럼 여겨주는 그 내 사람이라는 온기. 그냥 모든 말에서 나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게 얼마나 그립고도 보고 싶었는지 결핍된 나는 답도 못하고 엉엉 울기만 했다. 왜 그렇게도 나는 애정이 부족한 걸까.



어릴 때부터, 항상 그렇다.



그러다가 한 번은 7살 때 쯤 친구와 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일찍 퇴근하신 아빠를 마주쳤던 그 한 장면의 필름이 떠오르더라. 아빠가 나를 환하게 맞이하며 나를 들고는 붕붕 공중에서 한 바퀴 돌리고는 내려 주셨었다. 그 장면이 실제 했었다는 걸 감지하자마자 나는 또 미친 듯이 눈물을 흘렸다. 내가 지금까지 욕하고 실망하고 다닌 아빠와 나와의 관계.


그런데 그 처음에는 분명히 아빠가 나에게도 남들처럼 사랑을 표현했었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 심지어 남들이 보기에도 그렇게 느껴질 만큼.

그 작은 순간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는 게, 얼마나 그 때 그 작은 순간을 잊지 못할 정도로 나는 외로웠던 걸까.


집에 가면 항상 오늘 하루 있었던 아주 조그마한 일들을 야금야금 꺼내면서 엄마를 따라다녔었다.


내가 잘못해서 벌 받은 얘기까지도 해맑게 얘기하면 엄마는 듣는 척도 안하시다가도 그럴 땐 잘하는 짓이다, 한심하다며 면박을 주셨다. 그리고 할 일을 계속하셨다.


좋아하는 친구들 얘기를 꺼내면 엄마아빠는 내가 성인이 된 지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그 친구는 공부 잘 하니? 무슨 대학 다니니? 어느 동네 사니, 부모님은 뭐하시니를 물어보신다.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 아빠에게는 당연한 궁금증이었다.


그게 너무 두려워진 지금은 지난번 대학 친구가 본가에 오기로 했을 때 신신당부를 했다.

제발 친구 앞에서 그런 질문은 하지 말아달라고.


그리고 친구와 즐겁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인생네컷을 찍었다. 그 때 친구는 입술 색이 없다며 틴트를 발라줬다. 꽤 진하게 발렸는데 사진은 예쁘게 찍고 집에 돌아갔다.


친화력이 좋은 내 친구는 엄마한테 어머니, 저희 사진 찍고 왔어요! 라며 사진을 보여드리고 자랑했다.

나도 덩달아 어릴 때로 돌아간 것만 같아 같이 엄마한테 붙어 떠들었다.


그 때 엄마는 나를 쳐다보시더니


너 입술 발랐냐?


화장이 진하다.

였다.


며칠 후 친구가 돌아가서도 계속 그 순간이 생각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학생회를 합격한 날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8명을 뽑는 걸 72명이 지원 했었더랜다.


거기에 뽑히니 생기부에 쓸 것도 많고, 봉사활동도 하고, 새로운 활동을 많이 할 수 있으니 기대되는 것만 잔뜩이었다.


그 날 오전에 상담프로그램 수업에서 칭찬받을 때 기분이 좋다, 누구에게 칭찬 받고 싶느냐에 부모님, 그럼 부모님께 무슨 칭찬을 듣고 싶냐는 질문에 말문이 막혀 갑자기 수업시간에 펑펑 울기 시작한 나.

상을 받아 가면 그저 ‘잘했다’라는 한 마디가 너무 듣고 싶은데 듣지 못하고 면박만 주시니 서운했던가보다.


그렇게 반 친구들 모두에게 위로를 받고 친구들은 학생회 합격 소식은 어떠냐고 그걸 전해드리라며 응원해줬다.


점심시간 때 합격한 친구들은 인사와 안내를 받을 겸 선배들을 보러 올라갔고, 그 때 친구가 틴트를 살짝 발라줬었다. 그 색이 착색되어 저녁까지도 남아 있었나보다.


그 날 집에 돌아가 엄마아빠 앞에서 씩씩하게 학생회에 대한 얘기를 했다.


엄마는 가만히 듣다가 나보고 한 마디 하셨다.


“니 입술도 발랐나?”


너 화장하고 다니냐?

라는 말.


거기서 나는 멈춰 섰다가 변명 같은 상황설명을 하고 계속 학생회 얘기를 이어나갔다. 엄마는 그럼 너 공부 더 안하겠네? 하셨다. 며칠 전 대회에서 받은 상을 들고 갔을 때 아빠가 내가 없는 뒤에서 공부빼고 저런 거나 잘해서 큰일이라는 얘기를 하시던 반응과 똑같았다.



그 때 그 순간이 떠올랐다. 지금은 더 없이 화목한 우리 집안이지만, 부모님은 여전했다.



6년이 지난 지금, 당연히 바뀔 리가 없으셨지만 나는 계속해서 성장했다. 지금도 새로운 나인데 말이다. 동생도 바뀌어가고 있고, 언니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나는 부모님도 한 사람으로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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