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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떫음 Jul 04. 2022

무의식에 이어진 필름조각들(2)

떫소리_2022. 3. 29


앞서 언급했던 아빠가 나를 둥기둥기 해주던 장면에 함께 했었던 친구는 올해로 17년째가 되는 시간 동안 나와 친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 친구와 함께 하면서 친구의 가족과도 매일같이 보며 지냈고, 비록 지금은 집도 멀어지고 했을 지라도 좋은 소식이 생기면 나 혼자 없는 돈으로 선물을 사는 서툰 흉내를 내면서 직접 찾아가 인사드린다.


그리고 그 가족도 지금까지도 한결같다.


내 친구는 집에 오거나 부모님이 집에 오시면 항상 친구를 공주라고 부르며 찾았다.

나는 어릴 때는 공주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어색해서 신기하기만 했다.


나의 또 하나의 안식처가 되주고 버팀목이 되어주던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나는 사랑을 찾을 줄 알았다.

연예인이라거나 등등 내가 깊게 파고들면서까지 덕질하고 무언가를 이렇게나 좋아할 수 있다는 것에 감격하면서 의지하던 때에 엄마아빠는 쓸데없고 하찮은 일이라고 여기시며 혀를 끌끌 차셨다.


내 친구는 나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따금씩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곤 했다.

그럴 때면 친구의 어머니께서는 친구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고 선물을 가득 사주시곤 했다.

저런 것을 함께 좋아해주신다는 것에 대해 나는 친구의 부모님이 독특하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그 때까지 본 어른이란 건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 스스로 세상을 배우고 살아오면서 터득한 것으로는 자식이 아닌 누군가에게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훨씬 더 올바른 축에 속한다는 걸 알고 있고, 나 또한 아예 그런 성격으로 자리 잡았다.

내 가치관이고 추구하는 바이자 내 기준에서 당연한 모습이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예나 지금이나 그 부분에 대해선 같으시다. 친구의 부모님도 같으시다.

친구는 부모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 지 엿볼 수도 있다.


중학생 때 그런 체험을 해오는 과제가 있었는데, 나는 엄마에게 어깨 너머로 들은 내용으로만 몇 줄 정도 적어서 제출했다.

지금까지도 아빠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시고 얼마를 벌으시는 지도 모른다. 아빠는 말을 해주지 않지만 가끔 너는 그런것도 모르지? 하면서 면박을 주신다. 그래도 말은 안 해주신다.


어릴 때 아빠 생신 때면 작게나마 편지를 써 드렸다. 내가 글을 잘 쓴다는 걸 충분히 아시니까 좋아하실 줄 알았다. 아빠를 위해 시도 한 편 써드리면서 선물을 대신했다.

그런 것들은 그냥 식탁 여기저기에 굴러다닐 뿐이었고, 가끔은 읽지도 않은 채로 어디엔가 떨어지고 널부러져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받으실 당시에도 손으로 받지도 않으셨다. 물건을 줘야지, 물건을! 이렇게 은근슬쩍 넘어가는 거 봐라, 참나. 라고 장난을 치셨다.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다음 날이나 몇 시간 뒤에 확인해보면 아빠가 건드렸는지도 모르겠는 편지를 다시 확인해보고 내 스스로 있었던 지도 모르게 버려버린다. 아빠는 찾지도 않으셨다.

그렇게 내가 글을 써먹는 부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셨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쓰고 싶으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다. 지원해주겠다고. 그 신뢰가 너무 감사해서 열심히 했다. 하지만 어느 샌가부터 나는 편지도 쓰지 않았다. 엄마는 화장대에라던가 내가 정성스레 쓴 것은 보관을 하시는 모습을 찾았지만 엄마에게도 쓰지 못했다. 아빠한테도 못하는 걸 엄마한테 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언제부턴가 부모님의 생신이나 기념일이 나한테는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지금은 떨어져있는 언니랑 의논을 해볼 정도로 챙기려고 하는 마음이 커졌지만 실은 아직까지도 그렇다. 아직도 무얼 해드려야 아빠가 정말로 좋아하실지 전혀 모르겠다. 정말로.


올해 내 생일 때는 내가 친구들로부터 케이크를 선물 받았으니 우리 집에서 케이크를 사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대신 케이크 값을 용돈으로 주겠다 하셔서, 그걸로 선물을 받았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엄마가 정성들여 해주시는 생일상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성인이 된 후로는 엄마는 내가 선물 정말 안 줘? 라고 물으면 10만원이라는 용돈을 주신다.


어제는 뜬금없이 엄마의 프로필 기록들을 쭉 훑어보았다. 아빠 것도 훑어보았다.

두 분 다 여느 어르신들처럼 꽃 사진, 등산 사진 등이 대부분이었다.

아빠와 엄마 두 분 다 언니가 졸업할 때나 박사 학위를 땄을 때, 논문을 가져왔을 때의 사진을 프로필로 해두신 적이 있다. 상태메세지로 설명은 물론이다.

그래서 더 아래로 내려가 보았다. 예전에 가족휴가를 갔을 때 남동생의 사진도 있었다.

남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도 해놓으셨다.

계속해서 찾았다.

몇 년 동안이나 내가 관련된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엄마에게는 내가 언니와 같이 돈을 모아 드렸던 생일선물 사진, 그리고 고등학교3학년 때 공모전 대상을 받았을 때의 사진은 있었다. 내가 가족사진으로 신년포토케이크를 만들어왔을 때 케이크 사진도 있었다. 엄마는 그 몇 가지 정도는 뿌듯하게 여기셨었나보다.


하지만 내가 직접 나온 사진은 시상식에서도 수상자들과 함께한 단체사진 속 나, 한 장 외엔 없다.


아빠의 프로필에는 나와 관련한 건 찾아볼 수도 없었다.


이번에 취업했을 때도 그랬다. 축하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럼 네가 월세도 내면 안 되냐? 라는 대답은 들었다.

내가 악바리를 쓰곤 항의해서 이제 생활비를 내가 알아서 해결 하는 걸로 바꿨다.

그래도 나보다 집안 환경이 힘든 친구들, 분명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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