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헤이
다들 이런 상상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복권 1등 당첨되면 뭐할 거야?
우리는 이 한 문장에 우리들의 야망과 야심을 담기 시작한다. 평소에 부동산이나 투자에 관심이 없던 친구도 우량주와 부동산을 줄줄 읊으며 집은 어디 동에 구하고, 건물을 살 거며 등등 눈이 반짝해진다. 덧붙여 기부까지 한단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당첨금이 얼마인지도 잘 모른다.
금액을 알든 모르든 정확히 분배하는 모습은 이미 복권 당첨자의 모습이고, 미래에 대한 투자와 현재 자신에 대한 선물을 미리 계획해두는 모습은 기업가로 보이기도 한다. 오죽하면 농협은행 본사가 서대문역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도 이와 같은 상상을 여러 번 해왔다.
이러한 계획들을 세우던 와중, 우리는 아무리 1등을 해도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사기에는 빠듯한 돈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외국에는 복권 1등이 몇 조, 몇 천억 이렇다는데... 우리도 1등 금액이 일조원 정도면 이러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겠지.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바꿨다.
1조.
이 순간 나는 전혀 다른 난관에 부딪혔다. 아무리 미래에 대한 계획을 한다 한들 내가 어떤 소비를 하더라도 미래 계획을 하지 않을 정도의 돈이 남았던 것이다. 빌딩, 아파트, 자동차 등 우리가 아는 내에서 비싼 것들의 가격을 생각해봐도 1조라는 돈은 쉽게 줄지 않았다. 미래 계획과 투자를 그저 허물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었다. 유퀴즈에 나온 존 리가 이런 말을 한다. "부자는 돈으로부터 독립하는 것". 나는 1조 정도면 직장을 취미로 무조건 가능한 부분이지 싶다.
1조는 얼마나 큰돈일까?
응 니 연봉의 사만배.
그제야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현자 타임을 겪었다. 월급이라는 수액을 맞으면 근근이 버텨가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보며 알코올로 속을 달랬다. 지금 월급으로 4만 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 연봉 1억이라고 해도 만년은 일해야 벌 수 있는 돈. 이러한 질문을 하다 보니 모든 월급쟁이들이 우주의 먼지처럼 보이게 되더라. 이게 바로 자각, 각성, 무지의 단계인가.
이러한 망상은 조선시대의 노비들끼리도 했을 것 같다.
"이보시오. 만약 자네에게 오천만 냥이 있다고 하면 무얼 할 것인가?"
"오.. 오천만 냥?! 나는 일단 신분을 살 걸세!"
결국 이 대화의 끝은 현타였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반복되는 현자 타임 속에서도 우리는 '만약'이라는 가정을 앞세워 우리들의 결핍을 채워낼 수 있는 상상 속 소재를 꺼내곤 한다. 혹시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올 법한 상황이 내게 일어나길 바라는 일종의 바람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1조가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은 단언컨대 갑작스러운 인지부조화와 함께 그 순간에도 '치킨이 몇 마리냐?'라는 생각을 하는 본인의 검소함과 '왜 이런 생각만 들까'라는 자책감과 역시 자본주의가 최고라는 생각을 들게 할 것이다.
참 지랄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