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닥터의 자유로운 도피
괴짜 닥터의 자유로운 도피
괴짜 닥터의 자유로운 도피
일본 영화는 잔잔함 때문에 자주 찾게 된다.
기교 없고 담백하고 지루한 맛이랄까?
지루한데도 보게 되는 거 보면 이것도 매력이다.
이 영화도 그런 영화이다.
하지만 맛난 것들이 잔뜩 나오기 때문에 지루하진 않더라.
아저씨 8명이 남극에서 약 1년 동안 관측을 하기 위해 지내는 이야기이다. 제목처럼 주인공은 이들의 밥을 챙겨주는 요리사 니시무라 준. 밤에 보다 배고파서 라면을 끓어먹었다. 나름 소소한 재미들도 있지만 방심하다간 먹먹한 내용에 새벽에 라면 먹다 눈물 고이는 일이 발생하니 조심하도록 하자.
오늘 말해볼 인물은 관측 대원 중 의료 담당인 후쿠다 마사시이다.
홋카이도 사립 병원에서 파견 나온 의사이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맥주 따를 때 상당히 신중을 기한다. 맞다. 이 사람도 애주가다. 외모는 확실히 의사 같진 않지만. 매번 한텐을 걸치고 영화 내내 괴짜 같은 면모를 보여준다. 살짝 송강호를 닮은 듯해서 더 친밀한 느낌이다.
아침에 기상 후 하얀 내복에 엉덩이를 벅벅 긁으며 일어나고 아침 회의 때 팔짱 끼며 조는 줄 알았지만 물을 아껴야 할 기지에서 누가 25cm 물을 더 썼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내긴커녕 "25cm라... 써보고 싶구먼"라며 털털한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의료담당이라 대원들의 건강상태를 관리해주는 모든 일을 하는데 그중 아침 체조 비디오 2달분을 녹화해 틀어준다. 운동의 목적보다는 꽉 끼는 타이즈를 입고 열심히 체조시범을 보여주는 여성을 보는 듯하지만, 다들 집중해서 보기 때문에 사실상 노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치밀하다. 역시 의사는 의사인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주인공과 함께 기지에서 일과를 보내는 인물이라 가끔 니시무라의 보조를 해주기도 한다. 빙하학자인 모토의 생일을 챙겨주기 위해 고기를 통째로 불을 질러 굽는 걸 도와준다. 작살에 꽂혀 타고 있는 고기를 들고 남극 일대를 뛰어다니며 니시무라와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의 장난기는 초등학교의 짓궂은 친구를 방불케 하는데 절분 때 도깨비에게 콩 뿌리기를 하는데 도깨비 역할을 막내가 하게 된다. 그딴 거 필요 없고 와인드업까지 해서 콩을 전력투구를 하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동상 걸린 막내를 치료하기 위해 아픈 곳을 확인하며 계속 찌른다. 막내는 몸을 움찔하며 계속 아파하지만 이를 즐기는 마사시. 역시 막내는 서러워. 이 일 이후로 아마 한 번도 진료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다들 그의 의료술을 눈치챈 듯하다.
그가 진짜 괴짜라는 면모는 진료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의료품과 함께 진열돼있는 술들이며 칠판에 붙여져 있는 비키니 사진. 의료용 스테인리스 그릇에는 땅콩을 넣어 안주 접시까지 완벽하다.
니시무라와 장기를 두며 맥주를 마시며 이런 말을 한다. "바가지 긁는 사람도 없고 돈 달라는 아들도 없고... 난 남극에 2~3년 더 있어도 될 것 같아" 이런 말을 이해가 될 리가 없는 니시무라. 다른 사람과 달리 닥터는 일본 생활을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해 남극으로 왔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인지 다른 사람들이 외로움과 버티며 싸울 때 오히려 장기를 두고 음주를 즐기고 젬베 연주에 혼을 담으며 자유를 만끽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달리 닥터는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보다 철인 3종 경기에 나갈 생각한 것인가 보다. 이 행동도 일본 생활의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한 닥터의 건강한 활동이겠지. 그래도 그렇지 야밤에 팬티 차림으로 남극에서 자전거 타는 미치광이는 이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그 훈련이 효과가 있었는지 철인 3종 경기에서 1위로 달리는 모습을 TV 중계에서 나오게 된다.(철인 3종 경기를 준비하는 사람이면 참고하면 좋겠다) 왜인지 닥터는 어딜 가서 뭘 해도 잘 살아남을 것 같다. 그냥 뭐라도 하면서 굶어 죽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을 하면 매너리즘이나 스트레스를 피하기 힘들다. 닥터가 보여주는 무념무상의 삶이 어쩌면 그런 것들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모습이라 생각한다. 술, 담배 빼고. 사실 알고 있다. 그게 쉬운 게 아니란 거. 그냥 술, 담배로 스트레스 풀 수 있을 때 풀어도 좋을 것 같다. 아니다. 이 생각 자체가 무념무상이 아니니 그냥 생각하지 말자. 사실 생각 안 하려고 하면 더 생각나는 것은 함정.
맞다. 마지막 문단은 말장난이다.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