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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미소의 남자 친구 한솔

꿈을 포기한다는 게 나쁜 걸까?

by 감남우

꿈을 포기한다는 게 나쁜 걸까?

포스터에 적혀 있는 말이 아주 매력적으로 끌렸다.

"집이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

이렇게 현실적인 영화는 아마도 판타지 영화 장르에도 넣어야 할 것 같다.

영화는 끝없이 올라가는 물가 속에서 살아가는 미소의 이야기다. 가사 도우미로 일당 4만 5천 원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버거울 수밖에 없는 금액이지만 미소는 자기가 좋아하는 담배며, 위스키며 남자 친구 만나는 것을 하여 행복하게 산다. 남이 보면 손가락질하겠지만 미소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말도 안 되지만 말이 되기도 하고 멋지긴 하지만 그저 무모함으로 보이는 감정선에 여러 가지 아이러니를 경험할 수 있다.


오늘 말해볼 인물은 미소의 남자 친구 한솔이다.

이분들이 한솔-미소 커플 왼쪽이 한솔이다.

미소와 같이 옷들을 껴입고 뒤뚱뒤뚱 걸어 다니며 가방을 대용으로 종이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한솔. 미소와 데이트 때 어린아이 같은 모습들을 보여준다. 어리숙하고 바보 같아 보이지만 착하고 조곤조곤 말을 이쁘게 한다.


손바닥 맞기 게임을 할 때 모든 게 공평하다며 미소의 손을 갈긴다. 하지만 게임 후 왼손에 붕대를 감은 걸로 봐서 미소의 손은 아주 매운 걸 넘어선 배구선수급 스파이크로 강도로 보인다. 그래서 영화 내내 한솔은 순둥순둥 하고 착한 모습을 유지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네가 먼저 쌔게 때렸어 한솔아. 쩝.


추위에 이기지 못해 사랑을 나누는 것도 버거운 두 커플. 서로의 온기로 버티기에는 너무 추운 겨울이다. 그래도 이 둘은 행복해 보인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깐. 헌혈로 영화를 관람하고 손바닥 때리기 게임을 하고 소소한 데이트도 즐거워 하지만 한솔은 매번 근사한 데이트를 못해줘서 속상해한다.


미소가 떠돌아다니면서 잠자리를 해결할 때 이를 자기 탓으로 돌린다. 사실 잠을 재워 줬던 밴드부 동생이어서 그게 질투 나거나 신경 쓰여서 그런 걸 지도 모른다. 한솔은 '너의 가난은 나의 가난'이라며 자신이 공장 기숙사에서 살고 학자금 대출도 다 못 갚는 자신 때문에 미소가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한다. 내가 봤을 때는 미소가 남자 집에서 자는 게 싫어서 그랬겠지만 한솔의 무의식에는 안정적인 것에 대한 갈망이 있었겠지. 하지만 또 남자 집에서 자는 건 함정.


어쩌면 한솔은 미소와 비슷하면서도 가장 다른 인물이다. 웹툰 작가의 꿈을 포기하고 사우디로 떠나게 된다. 꿈을 포기하는 핑계로 '돈이 없어서', '해볼만큼 해봐서',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남들 하는 대로 살고 싶어서' 우리들의 아픈 곳들만 콕콕 찌르는 말. 나도 한 번쯤은 다 해봤던 말들이니깐.


미소의 행복은 담배, 위스키, 한솔이다. 담배값과 위스키 값이 올라도 집을 포기해가면서 지켜왔지만 한솔을 지킬 수 없었다. 그래서 한솔을 보고 배신자라고 한다.


정말 좋아하는 미소를 두고 떠난 다는 것을 보면 한솔이가 가장 바라는 것은 미소가 행복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솔이 떠나면 미소는 행복하지 않다. 하지만 떠나지 않으면 안정적인 삶을 찾기엔 무리가 있었겠지.

투정 부리며 떡꼬치를 줍는 한솔을 보면 미소의 투정을 예상했다는 것을 보면 오래 고민했다는 생각도 든다. 누가 해도 어려운 결정이었다.


한솔이는 돈을 벌기 위해 해외 발령으로 선택한 것이다. 어디에 지원해서 걸린 적 없던 한솔이 그토록 바랐던 것은 합격이라는 단어 일 수도 있겠다. 간절했던 만큼 정답이라고 생각했겠지.


포기가 참 쉽지 않다. 맘대로 포기하기도 힘들 만큼 숨 막히는 곳에서 살고 있으니깐. 한솔이 더 안타깝게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전부 한솔처럼 살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게 잘못된 게 아니다. 정답이 없다. 차라리 없는 게 더 짜증 난다. 답이 있으면 노력이라도 더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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