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이 무능력해서 돈 버는 게 아니야.
“남편 버는 게 많이 적어? “
사는 모습이 너무 아등바등해 보였는지 한 번씩 이런 질문이 들어온다. 음... 아니라고는 하지 않겠다. 실제로 처음엔 남편이 정말 돈이 없었던 것도 맞으니까. 남편은 꽤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했지만 원래 계획이 틀어져 한국에 갑자기 들어오게 됐다. 모아놓은 돈? 그런 건 없었다. 외국의 경험은 한국취업에 일도 도움이 되지 않았고 치킨집 알바부터 시작해 결혼을 했다.
그런 남편이랑 왜 결혼했냐 묻는다면 일단 다정한 게 마음에 들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남편의 집이 꽤나 잘 사는 것 같았다. 외국 생활 하는 동안 학비, 생활비 다 뒷바라지해줄 정도면 나쁘지 않은 배경처럼 보였다. 결혼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이왕 할 결혼이라면 좀 편하게 살 고자 하는 마음으로 남편을 선택한 것도 맞다. 이런저런 걱정과 빚 갚기에 바빴던 그 당시의 삶에서 벗어나 취집을 꿈꿨다. 속물덩어리라고 욕해도 좋다. 진짜 그랬으니까.
"그럼 시댁한테 도움 받고 살 수 있는 거 아니야?"
나도 그럴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시댁도 각자 일을 하시기 바쁘고 아들에게 그동안 전적으로 지원을 해주셨던 게 시부모님의 최선이었다. 예상과 다른 현실, 사회초년생의 소박한 월급, 집안의 빚, 생활비... 주저앉을 틈도 없이 일이 터졌다. 크론병을 앓고 있는 남편이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2020년. 코로나가 한창일 때 정신없이 결혼식을 올리고 한 달 뒤, 친할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다 쓰러져 가던 이발소를 운영하던 할아버지. 이발소 계단에서 쓰러졌다는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누구도 보지 못했다. 그 사실이 얼마나 엄마 아빠를 힘들게 할까... 장례를 치르는 동안 엄마와 아빠를 돌보기 바빴다. 미처 남편을 보지 못했다. 결혼식에 장례식까지 너무 몸이 지쳤던 탓일까. 남편이 갑자기 밥을 먹지 못했다. 음식 냄새가 역하다며 먹지도 못하고 남편은 안 그래도 자주 가던 화장실을 더 많이 갔다. 먹은 것도 없는데 화장실만 가니 점점 야위어갔다. 희귀병이라고 듣기만 했지 까멓게 변해가는 남편 얼굴을 보니 두려운 마음이 커졌다.
이제 막 취직한 회사에 눈치 보며 연차를 쓰고, 상황이 어찌 될지 안절부절못하던 남편이 내게 미안하단다. 아파서 미안하고, 돈도 못 벌어 미안하다고. 아... 취집을 바랐던 나의 욕심이 얼마나 하찮고 부질없는 것이었나. 아프면서도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왜 나는 또 화가 나는 걸까. 누구에게 화가 났던 걸까. 남편은 여전히 정기검진을 받고, 최근에 대장에 또 뭐가 발견되어 심장이 펄렁이는 한주를 보내고 있다.
2020년. 새로운 시작은 가장으로서의 새로운 시작이었나 보다. 세상이 나를 그렇게 만든 줄 알았는데 내가 그걸 선택한 것이었다.
내 남편이 무능력해서 돈을 그렇게까지 열심히 버는 거냐고 묻는다면 일부는 맞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택한 것도 나다. 이혼하지 않은 것도 나고. 내가 빌리지도 않은 빚을 가족이라는 이유로 함께 갚고, 내 이름으로 대출까지 했던 우리 가족을 버리지 않은 것도 나다. 부모님, 남편, 세상에 원망이 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돈을 열심히 벌고 가장의 삶을 택한 것은 단순하다. 그들은 내게 사랑을 줬다. 경제적으로 힘든 여건이지만 사랑이 가득했던 우리 집. 돈 없어도 라면 하나 같이 나눠먹으려 했던 부모님, 아프면서도 미안하다고 눈물 글썽이던 세상 착한 남편.
악착같이 아등바등 돈을 버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다. 고3 때 아빠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 생활을 할 때 입원비 하나 못 보태줬지만 지난번 엄마가 아팠을 때 병원비를 대주는 히어로가 되었고, 남편이 아파서 시름시름 앓을 동안에도 열심히 벌어서 생활을 꾸려갔다. 열심히 사는 내가 억척스럽게 보일지도 모르겠고 저렇게까지 열심히 살 필요가 있나. 복도 지지리도 없다는 생각을 누군가는 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처음에 나 자신을 그렇게 봤으니까.
가족의 빚에 벗어나 오롯이 나 혼자만의 삶을 살고 싶어 돈을 벌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돈을 버는 이유는 결국 가족이었다. 가족을 지키고 싶고, 좋은 거 보여주고 싶고, 맛있는 거 원 없이 먹여 주고 싶다.
돈 버는 과정은 참 복잡하고 어려운데 돈 버는 이유는 생각보다 참 단순하다. 그 단순한 이유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아가게 할 유일한 이유일테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