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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다

냉정 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by 나나키

제목이 다소 거칠 순 있지만 정말 요즘 느끼는 감정 그대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나는 그저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다. 투잡러로 살면서 더 크게 느낀다.



어제는 부업인 바리스타 강사로 혼자서 처음으로 오전 출강을 나가는 날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수강생들의 눈빛에서 배움의 의지가 담겨있기도 했지만 어디 얼마나 잘하나, 너는 내게 오늘 무엇을 줄 것이냐는 물음이 가득하기도 했다.

본업인 교습소도 늘 쉽지 않지만 큰 고비가 오가는 요즘이다. 일 년에 네 번 정도 긴장을 바짝 하게 되는 시기가 있는데, 그 두 번째 시기가 바로 지금, 1학기 기말고사가 마무리되는 시기다. 성적에 따라 학생들과 학부모의 마음이 요동치게 되는 기간. 잘되면 자식 덕분, 안되면 학원 탓이다. 냉정히 얘기하자면 사교육은 성적과 의지를 돈을 주고 사는 곳이다. 아이들한테 좋은 교육을 주고 싶다는 말로 특별한 의미를 덧대어 보고 싶지만 실제로 내게 교육비를 내는 이유는 당연히 자녀의 성적을 올려주는 대가일 것이다.



기말고사를 마무리 짓고 상담 전화주간인 이번 주, 통화버튼을 누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 혹시나 퇴원으로 이어지면 어쩌나, 성적 떨어진 애들은 어디까지 진실을 말해줘야 하는 걸까... 정말 매번 시험을 후회 없이 준비해 줘도 원하는 만큼 성적이 안 나오는 친구들은 어김없이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내 몫으로 전달되고 학부모의 감정을 받아 내는 일은 해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게 잘못 됐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이건 지극히 정상적인 현실이고 내가 받아들여야 되는 직업의 몫이다. 수강료에는 이 모든 몫이 담겨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를 겪을수록 한 가지를 명확히 깨닫게 된다. 잘 팔리는 상품이 돼야 하는 것. 나 자신이 잘 팔리는 상품이 되지 않으면 돈을 벌지 못한다. 지금 내 기준으로 나라는 상품은 성적을 올려줘야 하고, 잘 가르쳐야 되고, 관리를 잘해주는 강사여야 한다.




결과지향적인 사회. 이런 사회에 너무 지쳐서 도망간다는 사람, 새로운 모험을 한다는 사람, 그리고 나처럼 현생 유지하며 미래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 자신의 기준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 각자 다른 삶을 살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특히 돈을 벌려면 나라는 놈은 잘 팔려야 한다는 생각이 또렷해진다. 아니면 잘 팔리는 것에 투자를 하던지.



능력 있는 상품! 상품 이란 말을 쓰는 게 너무 자기 비하일지도 모르지만 잠깐 생각해 보자. 우리가 어딘가에 돈을 쓸 때 자신에게 어떤 도움을 주거나, 재미를 주거나 마음의 위안을 주는 등 어떤 가치가 있지 않으면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사회는 오죽하겠나. 사회는 잘 팔리는, 효용가치가 있는 인간임을 입증해야 내게 돈을 준다.



이런 생각이 때로는 피곤하고, 뭔가 서럽기도 하고, 어떻게 살고 뭘 해야 할지 막막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너무 열심히 살 필요가 없다. 그래도 살아진다고 말한다. 극강으로 갈라지는 사회 속에서 나는 아직 전자로 사는 것 밖에 모르겠다.



열심히, 수요가 있는 일을, 아주 잘하기.



그런데 이마저도 확신이 없다. 열심히는 자신 있는데 지금 하는 일의 수요가 언제까지 있을지도 모르겠고, 아주 잘하는 단계에 진입하기까지 한참 멀어 보이니 큰일이다. 나라는 인간은 사회에서 얼마나, 언제까지 쓸모가 있을까. 앞으로도 쓸모 있으려면 노력의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하는 걸까. 곧 40을 앞두고도 이런 생각을 할 줄은 몰랐는데. 대체 언제 10대에 그렸던 그런 어른의 모습으로 살게 되는 걸까. 한 해의 절반이 지난 7월 중순. 더위도, 내 고민도 함께 극심해진다. 줄줄 흐르는 땀처럼 내 생각도 다 흘러 내려가길 바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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