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지키는 또 다른 방식
취집의 꿈이 무너진 시기부터 이혼 일기를 썼다. 이혼일기라니, 제목만 보면 사람들이 먼저 묻는다. "너, 이혼할 거야?" "남편이 그렇게 싫어?" 뭐, 솔직히 남편이 매일 설렘폭발하게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혼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남편이 아니라 '돈'이다.
결혼, 둘이 함께 하니 기쁨도 두 배! 이럴 줄 알았지만 기쁨이 두 배인 것까진 모르겠고 슬픔은 두 배였다. 인생이 반쯤은 가벼워질 줄 알았지만 웬걸, 더 가벼워진 것은 내 통잔 잔고였을 뿐. 생활비를 누군가는 책임져야 했고, 또다시 그 누군가는 결국 나였다. 남편이 무능해서 돈을 버는 것이냐는 돌려 깎기 질문들을 숱하게 받아왔다. 돈 벌다 힘든 점들을 토로할 때면 돌려 깎기 질문은 대놓고 걷어차는 수준이 돼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남편의 무능이라... 이제 막 사회초년생으로 시작해 크론병으로 한참 앓았던 시기를 무능이라고 표현하자면 그래, 무능한 게 맞다. 남편의 덕 보고 살자는 취집의 꿈은 일찌감치 깨졌고, 나는 그저 내 삶을 지켜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실제로 그 당시엔 이혼을 준비했고, 자립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 시기에 깨달은 딱 세 가지가 있는데,
언제든 혼자가 되어도 살 수 있다는 기세.
돈 앞에서 허둥대지 않기 위한 차분함.
내가 나를 먹여 살린다는 당당함.
살면서 필요한 이 세 가지의 태도를 몸으로 뼈저리게 느꼈다. 이 태도가 없으면 돈 버는 길에서 쉽게 주저앉는다. 투잡을 뛰면서 빡센 돈벌이에 지쳐 대상포진에 걸린 적이 있다. 진짜 세상 처음 겪는 고통에 미친 듯이 가렵기도 했지만 약을 털어 넣으며 수업을 다 해냈다. 이렇게까지 돈을 벌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중요한 건, 내가 나를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의 정신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혼일기'는 사실 나의 아이디어가 아니다. 예전에 독서모임 운영자인 책방언니가 꺼냈던 이야기다. 평소 남편과 아이들의 화목한 모습을 보여줬던 언니에게서 나온 말이라 잠시 당황했지만 그 의도가 정말 좋았다. 내가 나를 키울 수 있어야 가정도 화목할 수 있다는 언니의 말이 이제야 와닿는다.
상처의 기록으로 시작했던 이혼일기는 이제 자립의 과정이 되었다. 돈을 벌며 억울함도 많았고, 다른 사람의 결혼 생활을 부러워하며 놀이터 구석에서 울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또 일어나 버텼다. 그리고 그 버팀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이혼일기는 결혼 파탄의 기록이 아니다. “언제든 자립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나는 오늘도 가장으로 산다. 오늘 기껏 달랜 마음이 내일 또다시 억울함으로 가득 찰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 내 몸에 온전히 붙어있는 밥벌이 근육이 나를 지탱해 줄 것이다. 울끈불끈 존재감 드러내지는 않더라도 매일 아침 눈을 뜨게 만들고, 힘들어도 발걸음을 옮기게 할 것이다. 돈을 벌며 생긴 억울함, 밤마다 놀이터에서 삼킨 울음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힘이다.
누군가는 이걸 고생이라 부르겠지만, 나는 이제 그냥 인생의 기본 옵션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다들 저마다의 자리에서 고생하며 살아가니까. 그 덕분에 나는 생존 근육도 붙이고, 억울함을 견디는 법도 배웠다. 그렇게 오늘도 내 자립일기를 한 줄씩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