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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긴 빡세고, 도망도 못 가고

그럴 땐 운동화를 신어보세요.

by 나나키

가장이라는 이름은 무겁다. 누군가는 집에 들어오는 생활비가 저절로 마련되는 줄 알지만, 가장의 입장에서는 매달, 매주, 매일이 버티기의 연속이다. 나 역시 결혼과 동시에 자연스레 ‘취집’이라는 선택 대신 가장의 자리를 택했다. 그런데 막상 그 자리에 앉아 보니, 책임이라는 말이 추상적이지 않았다. 한 달 벌어 한 달을 사는 현실 속에서 돈을 버는 일은 단순히 의무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그런데 돈을 버는 데에도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체력이었다. 몸이 무너지면 아무리 의지가 있어도 소용없다는 것을 여러 번 체감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일정, 수업과 일, 사람을 대하는 일들 속에서 체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이었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 “돈을 벌려면 몸이 버텨줘야 한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달리기였다. 거창한 운동을 계획한 것도 아니고, 값비싼 장비를 갖춘 것도 아니었다. 집 한쪽에 묵혀 두었던 운동화 한 켤레를 꺼내 신었다. 처음 뛰기 시작했을 때는 금세 숨이 차올랐다. 몇 분만 달려도 다리가 무겁게 내려앉았고, 머릿속에서는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나’라는 투정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며칠, 몇 주가 지나면서 몸은 조금씩 달라졌다. 호흡이 안정되고, 발걸음이 이전보다 가벼워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이 단순히 체력만은 아니었다. 달리기를 하면서 나는 돈을 버는 것과 닮은 점들을 발견했다.



첫 번째는 인내였다. 달리기는 결코 단번에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작은 거리조차 숨이 가쁘지만, 꾸준히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예전보다 더 멀리, 더 오래 달리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돈을 버는 일도 똑같다. 하루아침에 수입이 두 배로 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이어 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인내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두 번째는 균형이었다. 달리기를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건 속도 조절이었다. 처음부터 전력 질주를 하면 오래 버틸 수 없다. 적당히 호흡을 가다듬고 내 리듬을 찾을 때 비로소 오래 달릴 수 있다. 돈을 버는 일도 이와 같다. 무리해서 더 벌겠다고 달려들면 어느 순간 지쳐 쓰러진다. 하지만 균형을 지키면서 속도를 맞춰 갈 때, 비로소 길게 버틸 수 있다.



세 번째는 정리였다. 달리기를 할 때면 묵직하게 눌러 있던 생각들이 조금씩 흩어진다. 일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 사람 때문에 쌓였던 짜증,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도 발걸음을 따라 흘러간다. 달리기라는 단순한 반복이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아이러니. 돈을 버는 현실은 여전히 무겁지만, 달리고 나면 그 무게를 조금은 가볍게 견딜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달리기는 해방감을 선물했다. 땀을 흘리며 달리는 동안은 돈 걱정, 집안 걱정이 잠시 잦아들고, 머릿속이 맑아진다. 힘든 하루의 끝에서 뛰는 시간은 기분을 정리하는 의식처럼 느껴지고, 쌓인 스트레스를 흘려보내는 통로가 된다. 하루를 버티고 또 버티다 보면, 가장이라는 이름이 나를 한없이 소모시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달리기를 하면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묘하게 맑아진다. 땀으로 젖은 셔츠는 수고의 증거가 되고, 뛰는 동안의 거친 호흡은 무언가 열심히 해낸듯한 느낌이 들어 그 순간엔 자신감이 차오른다. 돈 때문에 시작한 달리기가, 결국 나에게 가장 큰 보상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오늘도 나는 그 운동화를 꺼내 신는다. 여전히 돈은 벌어야 하고, 가장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운동화 한 켤레 덕분에 나는 그 무게를 견딜 여유를 얻는다. 뛰는 동안은 머리가 정리되고, 기분이 다스려지며, 쌓였던 스트레스가 땀방울과 함께 흘러내린다. 돈을 위해 시작한 달리기가 이제는 내 삶을 버티게 하는 숨구멍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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