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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의 늪

모두가 길을 잃는다.

by 나나키


세상은 멈출 줄을 모른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나는 나만의 속도로 걸어가겠다는 이들의 소신이 새삼 부럽다. 본투비 생계형 인간은 사회에서 잘 팔리지 못할까 두려움에 잠 못 이룬다. 진로고민이 한창 많은 시기 빠지기 쉬운 늪에 결국 빠져버렸다.




평생직장은 없다는, 1인 기업과 1인 매체로 흐르고 있고 결국 그렇게 될 거라는 공통된 말들을 책과 강의를 통해 듣는다. 움직이자! 그렇게 퍼스널 브랜딩 강의와 ai강의를 신청해서 들었다. 무자본 창업이 가능한 sns활용법, 릴스 제작 가이드, 영역별 유용히 쓸 수 있는 여러 인공지능툴을 배워왔다.



자,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배운 건 써먹어야 된다. 행동 없는 배움은 쓸모가 없다. 그래서 열심히 따라 해보며 영상을 만들어본다. 오~ 그럴싸하다. 한숨 돌린답시고 인스타 눈팅을 하니 그럴싸해 보이던 영상이 순식간에 허접해 보인다. 애써 만든 것을 주저 없이 삭제한다. 그냥 하던 거나 할 팔잔가... 수업준비를 위해 책을 편다. 펜을 잡고 책을 펼치는데 머리는 복잡하다.

아, 뭐 해 먹고살지... 그래, 1인기업 좋은데 뭘로 나를 홍보하지... 어느새 또 다른 강의를 신청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일 적응했는데 내 일이 다 AI로 대체될 거 같아요. 지금 벌써 없어진 것도 많고... “

“나도 그래, 사교육 영어 얼마나 많니. 지금도 경쟁지옥인데 흐... 전망도 전망인데 재미가 너무 없다. “



최근 아예 분야를 옮겨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시동생도 걱정이 많다. 어렵게 적응해 이제야 자리 잡리 잡는 것 같았는데 미래를 걱정하며 정보처리기사를 따야 할지 고민이라고 한다. 남편 역시 적은 보수와 폐쇄적 환경으로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 해 뜨는 거 지는 것도 모르고 일하다 세월만 가는 지금이 맞는 거냐는 친구의 연락, 외벌이 힘들어 다시 복직을 고민한다는 친구. 모두가 길을 잃는다.



먹고사는 문제와 자아실현이 동시에 이뤄지기란 흔하게 보이는 것과 달리 어렵다. 나이는 문제가 아니라지만 막상 이력서를 넣으려는 회사에게 나이는 중요하다. 도전과 성취가 필수라지만 반복된 거절 앞에 첫 도전의 패기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진다. 행복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앞섰던 만큼 커진 만큼 자신을 잃어간다. 콘텐츠로 즐겁게 돈 버는 융택한 세상 속에 자기가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전할 수는 있는지 작아진 자아는 불안감에 이곳저곳을 서성인다.



어릴 때는 이것만 하면, 대학 졸업만 하면, 취직만 하면 모든 것에 정답이 있었다. 이제는 잘 쉬는 법도 배워야 할 판이니 참, 40을 앞두고도 이럴 줄이야. 세상은 내 고민이 깊어지든 말든 알바가 아니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더 빨리 흘러만 가는 것 같다. 이런 게 있구나, 어디 나도 한번? 하는 순간 이미 퇴물이 되어버린다.



‘자기 계발 중독’ 성취가 아닌 소비 자체가 목적이 되는 아이러니. 자기 계발은 나에게 성장을 주기보다 끝없는 결핍을 일깨워주었다. 멈추면 안 될 것 같은 강박, 더 노력해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그 모든 불안을 달래주겠다며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강의와 책들. 나는 러닝머신 위에 달리듯 쉼 없이 움직였지만, 결국 제자리였다.



열심히 살아도 부족하다는 말과 내 속도대로 살아도 된다는 말들의 충돌 속에서 계속 길을 잃어간다. 돈 없어도 괜찮다, 생각보다 잘 살아지더라는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이룬 것, 가진 것이 많았기에 멈추기가 더 쉽지 않다. 수박 겉핥기만 하다 진짜 겉맛 핥게 될까 봐, 그러다 다 썩어빠진 수박알맹이를 마주하게 될까 봐 걱정은 계속해서 쌓여만 간다. 그래도 수박을 놓지 못하고 있는 나는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까. 내 남편은, 시동생은, 친구들은 모두 어디로 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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