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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늙는다.

돈 벌기 힘들 때마다 떠올리는 얼굴.

by 나나키

추석이었다. 엄마를 보러 갔다. 친정이 강원도인데 부산까지 멀리도 시집을 와버렸다. 짧은 명절, 부산과 강원도를 왔다 갔다 하는 길이 꽤나 긴 편임에도 불구하고 먼 줄 모르고 다닌다. 매번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는 엄마를 볼 때마다 울컥거리는 이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더한다.



엄마는 볼 때마다 말라있고, 저번에 봤을 때 보다 더 작아져있다. 반가운 마음에 엄마를 힘껏 안아주고 싶은데 엄마가 자꾸 품 속에서 빠져나간다. 애정 담아 잡은 손가락 마디마디가 너무 얇게 느껴져 손깍지가 풀릴까 엄마의 손을 더 꽉 잡게 된다.



결혼하고 나면 엄마가 참 애틋하다. 엄마랑 나는 결혼 전에도 사실 동네에서도 유명한 모녀사이였다. 서울에서 계속 살던 우리 집은 도망치듯 강원도로 내려왔었다. 이제는 20년에 넘도록 살고 있는 생활 터전이 되었지만 엄마와 나는 여전히 동해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도망치듯 내려온 탓인지 뭔가 모르게 우리 가족은 위축되어 있었다. 언제든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다는 그런 한가로운 말 따위를 할 처지가 아니었고, 알 수 없는 위축감을 엄마와 나를 서로가 유일한 친구로 만들었다. 우리는 남들한테 못하는 얘기를 서로에게 털어놓으며 서로가 서로를 의지했다.



30이 넘도록 독립하기를 싫어했다. 나의 경제적인 이 유도 있었지만 내가 보살피고 챙겨줘야 할 것 같은 엄마가 나 없으면 어쩌나 걱정돼 떠나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도 신혼집이 있는 부산으로 바로 내려가지 않았다. 직장 생활을 그만둘 수 없다고 스스로 밀어붙이며 강원도에 머물기를 선택해 장거리 부부로 1년을 보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결국 부산으로 내려가는 날. 무거운 캐리어를 싣고 버스에 앉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누가 보면 이민이라도 가는 줄 아는 것처럼 엄마와 나는 서로가 떨어지는 상황을 힘겨워했었다. 챙김과 보살핌을 받았던 건 결국 나였다.





엄마와 나는 일주일마다 목욕탕을 갔다. 지금도 시간 여유가 될 때마다 같이 목욕을 간다. 추석에도 드라이브 삼아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온천으로 향했다. 뜨끈한 탕에 들어갈 생각으로 서둘러 준비를 하는 순간, 엄마의 뒷모습에 왈칵 눈물이 날 뻔했다.



탄력을 잃어가는 허벅지, 더 가늘어진 다리... 볼 때마다 작아지고 살이 빠져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늘 보던 엄마의 모습은 변해있었다. 추석이라 그런지 노모를 모시고 온 딸과 손녀가 제법 보였던 온천. 복잡해져 가는 마음에 한참을 탕에 얼굴까지 푹 담그고 있었다.



내가 벌써 40을 달려가는데 우리 엄마는 왜 그대로 일거라 생각했을까... 연거푸 얼굴을 물로 쓸어내리며 많은 생각을 했다. 보살핌을 받는 건 나라고, 어릴 때도 앞으로도 보살핌을 받을 사람은 나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엄마의 자식이지만 더 이상 보살핌 받는 자식이 되어서는 안 되고, 될 수 없다.


하지만 이 못난 딸년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집안의 빚을 열심히 갚았던 시간들이 억울했고, 그 억울한 시간을 누구에게라도 보상받고 싶었고 그게 처음엔 엄마였다. 엄마한테 생색을 그렇게 냈었다. 그 생색이 현재는 남편에게로 향한 것이고, 그 보상심리가 남편에게 향해버려서 이제야 엄마가 보이는 거다. 나는 정말 못난 딸년이 맞다.



누구든 있을 때 잘하라는 어른들의 지나가는 소리가 제법 진지하게 다가왔던 추석. 교통체증으로 7시간 넘게 걸렸던 그 거리를 더 자주 오겠다 다짐한 날에 여러 결심들을 했다. 엄마가 더 늙기 전에 여행을 자주 다녀야겠다. 친정이 필요할 때, 내가 언제든 얼마든 보태주리라 단호해진 마음. 돈을 벌 이유가 또 명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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