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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로 만든 독립

by 나나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가난해질까 봐 무섭다. 이 말은 입 밖으로 꺼낼 때마다 조금 창피하기도 하지만 안심이 되기도 한다. 창피한 건 어른답지 못한 것 같아서이고, 안심되는 건 내 마음을 이제야 인정했기 때문이다. 예전엔 그 겁을 몰아내려고 , 두려움을 약점으로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감추려 무척 노력했다.


하지만 취집대신 가장으로 살며 많은 것이 변화했다. 부모님 생활비며 내 가정 지킬 비용이며 돈 버는 삶이 지긋지긋하고 힘들고 억울했지만 그렇게 됐기에 이젠 진정한 자립을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수입을 늘리려 더 오래 일하고 더 많이 준비했다. 그런데 그런 방식은 이상하게도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숫자 하나에 기분이 흔들리고, 별것 아닌 일로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정신적인 고단함은 그대로 몸에 드러났고 “이렇게는 오래 못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순서를 바꿔 봤다. 자영업자에게 고정 수입이라는 것은 없지만 어느 정도 수입이 생기면 먼저 내 몫을 남긴다. 늘 싸구려 옷만사 입었다. 남들처럼 예쁘게 다니고는 싶은데 돈은 없어서.

5000원 10,000원 주고 산 옷들들은 금세 목이 늘어났다. 비싸다고 다 좋은 건 아니겠지만 맨날 싼 것만 찾고 나를 매번 뒷전으로 놓다가 다 늘어지는 옷처럼 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이제 그러지 않는다. 과하게 명품을 사겠다는 게 아니라 빚과 생활비 말고 나를 위한 돈도 챙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참... 큰돈 들이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겁이 나는지... 이제 살만 해서 이러나, 아직 갈길이 한참 먼데 이래도 되나... 가끔씩 예상치 못한 지출을 할 때면 내가 한심하게 보일 때도 있고 꼭 그거에 맞는 벌처럼 엄청 큰 두려움이 뒤를 따른다. 그래도 이젠 돈한테 도망가지 않고, 돈을 과장하지도, 외면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믿음은 다짐으로만 생기지 않았다. 다시 또 가난해질까 봐 알 수 없는 두려움들이 몰려올 때면 오늘 내가 한 일들을 짧게 적었다. “자료를 끝까지 손봤다.” “오늘은 덜 흔들렸다.” 큰 성취는 아니지만, 이런 문장을 쓸때면 마음이 조금 환해졌다. 시간이 걸려도 나는 벌 수 있고,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새기는 중이다.



일하는 방식도 전과 조금 달라졌다. 여전히 할 일은 넘쳐 난다. 예전엔 하나의 일을 100 이상의 에너지를 쏟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잘해 내야지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것 같고,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다시 세상이 날 가난으로 처넣어버릴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욕심을 덜 낸다. 덜 해내겠다는 뜻이 아니라 덜 흔들리겠다는 선택에 가깝다.



내 체력도 정신도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 지금, 밥을 제때 못 먹더라도 건강한 걸 먹고, 잠을 너무 미루지 않으려하고, 잠깐이라도 운동을 한다. 긴장과 불안으로 뻣뻣해진 내 말투가 부드러워지고, 주변을 챙길 힘이 생긴다.. “나를 잘 돌봐야 가족도 잘 챙길 수 있다”는 말이 진부해 보여도, 실제로 해보니 맞았다. 나를 지키는 방법은 과격할 필요가 없었다.



돈은 여전히 중요하고, 돈에 대한 두려움은 내 앞에 거대하게 앉아 있다. 두려움은 계속 그 자리에 있지만 내 태도를 조금씩 바꿔 가는 중이다. 돈에 대해선 담백하게, 나 자신에겐 친절하게. 돈 버는 게 마냥 고단 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떻게 해야지 오래갈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됐고, 그렇게 하다 보니 나를 전보다 좀 더 챙기게 됐고, 나를 챙기니가족이 보이고 친구가 보였다.



진정한 독립은 엄청난 경제적 성과가 아니라 이런 마음의 정리에서 시작된다. 독립은 생각보다 간단하고, 간단하지만 단단한 것이었다. 오늘의 나를 너무 몰아붙이지 않고, 내일의 나를 적당히 믿어 주는 것. 이 리듬이면 가장으로도한 사람으로도 오래갈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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