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지 않고 돈 버는 이유.
"쫌! 너무 돈돈돈 거리지 좀 마. 그런다고 돈이 뭐 생기니?"
"욕심을 내려놔, 그런다고 원하는 대로 안돼."
"다 때가 있어~ 사람은. 돈돈돈 거리면서 조바심 낸다고 갑자기 잘 되고 그러지 않아."
이 말을 진짜 싫어했다. 지금도 싫어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엄마다. 엄마는 투잡 뛰며 공부까지 하겠다고 바등바등 대는 딸이 좀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말이겠지만 엄마가 이 말을 할 때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한 때는 꽤나 부유했던 우리 집. 그 당시의 친척들의 모습과, 폭삭 망해서 방문한 그들의 태도 차이는 어린 내가 확 느낄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빚이라는 게 뭔가 정확히 개념조차 서지 않았던 시기, 낯선 어른들의 잦은 방문이 있었다. 그 어른들이 오는 듯하면 아빠는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고, 엄마는 울고 있었다. 무섭긴 했지만 그때까지도 돈의 위력을 실감하진 못했다.
대학에 가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사회에 던져지고 나서야 돈의 위력을 깨달았다. 돈은 계급을 만든다. 내가 살아온 세상에서는 그랬다. 돈이 있고, 돈을 잘 버는 사람은 환대받는다. 그 환대가 진짜든 아니든 그건 중요치 않았다. 어쨌든 환대는 무언갈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했다. 그게 인간관계든, 일이든 유리한 건 사실이었다.
돈이 없던 나는 있는 척까진 못해도 없는 걸 들키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다. 허세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는 성격이라도 좋은 척을 했다. 사회는 그렇게라도 해야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마음가짐에 따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거라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뒤에서는 얼마나 냉정해지는지 직접 경험한 후엔 그런 낭만적인 말을 믿지 않는다.
고3 때 아빠가 아팠다. 아빠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켰고, 내가 직접 119에 신고를 했고, 그렇게 실려간 병원에서 투석을 받았던 시간이 있었다. 병원비 때문에 근심 어린 엄마의 표정을 기억한다. 그리고 엄마가 병원비 이야기를 꺼낼 때 냉담했던 그들의 얼굴도 기억한다. 돈이 없으면 아파서도 안된다. 이게 내가 열심히 일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세상은 생각보다 아주 냉정하다.
돈이 없을 때 또 다른 가장 큰 문제는 마음이 쪼그라지는 것이다. 얼마나 주눅이 들던지! 한창 주눅들던 시기에 쪼그라든 어깨가 아직도 말려있는 듯하다. 친구들과 만나면 밥 한 끼 사 먹어야 하고, 매번 얻어먹을 순 없으니 뭐라도 사야 하고. 그게 부담스러워 사람을 안 만나게 된다. 카페 앉아서 커피 마시는 거 나도 참 좋아하는데 현실은 자판기 커피에 만족해야 할 때, 이거라도 마실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기보다 억울함이 먼저 들었다.
쪼그라진 마음은 악순환을 일으킨다. 세상 굽어진 어깨로 당당한 척 사는 게 쉬울 리가 있나. 위축된 마음은 도전하는 걸 꺼리게 했고, 주눅 든 마음가짐은 열등감으로 드러났다. 모든 일 그리고 모든 관계에 내가 낄 수 있을 법한 것에만 시선을 뒀고 변화는 꿈도 꾸지 못했다. 이 쭈글쭈글 마인드는 나이가 든다고 달라지진 않는다. 위축된 마음을 꾹꾹 눌러 밖으로 새어 나오게 하지 않는 기술이 조금 늘었을 뿐이다.
돈돈돈 거리지 말라는 엄마의 말, 돈을 쫓아가면 돈이 멀어진다는 말의 진짜 의미를 어쩌면 내가 잘못 파악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비뚤어진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말들은 좌절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 위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말이 싫다. 돈돈돈 거리지 말라면서도 막상 어떤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돈 걱정이다.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돈은 지름길이 되어줄 수도 있고, 윤활유가 되어줄 수도 있는 존재다. 그리고 내겐 찐따마인드를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래서 열심히 번다. 20대의 핵찐따였던 내가 못한 몫까지 해내려고 노력한다. 투잡 뛰며 벌고, 번돈으로 공부하고, 공부한 거 다시 써먹어보고, 그렇게 새로운 거 경험하면서 깨져보고... 그 당시 했으면 좋을 법한 일들을 이제야 한다. 그리고 최근 엄마가 아팠을 때 병원비를 냈다. 고3의 나는 방관자였지만 지금의 나는 해결사가 되었다. 그래서 더 느낀다. 돈은 정말 사람에게 기회와 자유를 주는 게 맞다는 걸.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관점이지만 내겐 돈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