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복에 겨운 일상일지라도...
본투비생계형 인간! 취집대신 가장! 도전하는 삶! 을 외치며 씩씩하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지만 최근 부쩍 지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가슴의 통증, 호흡곤란으로 찾았던 병원에서 내게 했던 말이 인상적인데 "그거, 살만해서 그래요. 뭐, 원래 공황장애라는 개념이 언제부터 나왔었나요?"
응...? 당신 의사 맞음....? 맴매맞고 싶음...? 이래도 병원이 굴러가는 거임? 리뷰폭탄 남겨드림?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 말을 듣고 고됨을 표현하는 일이 더 어려워졌다.
금수저가 아니라면 (금수저도 해당될지도 모르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생계형 인간이다. 한 달 열심히 벌어야 나새키 옷도 입히고, 맛있는 거 하나 먹여주고, 때때로 소박한 효도라도 하고, 고된 몸을 뉘일 장소를 유지할 수 있다. 도대체 이놈의 버는 행위는 언제까지 해야 할까.
경제적 자유, 파이어족이 한창 들려오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SNS를 보면 그런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그들은 말한다. 누구나 그렇게 살 수 있다고. '누구나'라는 그 짧은 말에 순식간에 나는 패배자가 되버렸다. 세상은 어느새 월천은 쉽게 버는 사람들 투성이 되어버렸고, SNS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인간은 얼간이가 되어버렸다. AI를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하고, 일단 종잣돈을 마련하고, 각자의 방법으로 투자하고, 그렇게 패시브인컴을 늘려가야 한단다.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는 건 본능 중 하나다.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데... 공부도, 밥벌이도, 각각의 영역에서 완성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현재와 미래의 균형을 맞추려 부단히 노력하며 산다. 그러나 난 아직 그들처럼 되지 않았다. 열심히 살지만 나는 백조처럼 외향도 평화롭지 못하다. 물속에 허우적 거리는 다리, 날개인지 아닌지도 모를 무언가를 푸드덕거리며 물속에서 버둥거릴 뿐이다. 이런 현실이 내 노력의 부족인 것 같아 쌓여가는 죄책감, 더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압박감, 불안감으로 도망가고 싶어진다. 그러나 여기서 도망까지 가면 정말 찐 루저가 되는 것 같아 도망갈 용기조차 갖지 못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뜨는 대로 하루의 시작이 달갑지 않고, 모든 일정을 끝내고 온 밤에는 허탈함에 무너진다. 각기 다른 이유들로 매일같이 이 반복되는 삶에서 도망가고 싶어진다. 평범한 하루가 벅차게 느껴지는 지금, 아무 책임도, 스트레스도 받을 일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다.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그 '누군가'가 되는 것까지 아니더라도 당장의 공과금, 월세, 다가오는 가족 행사... 밥벌이를 해내지 않으면 현생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채찍질로 다시 한번 나를 다그치며 일상을 살아내게 한다.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어. 너만 열심히 사는 거 아니야. 그 의사 선생님 말처럼 먹고살만해서 생각할 여유도 있구나?. 정신 차리고 일하자.'
그렇게 다그치면서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살고, 그렇게 한 주가, 한 달이 흐른다. 몸과 마음은 바쁜 데 알맹이 없는 결과물만 남기는 건 아닐까 두렵지만 진짜 그럴까 싶어 애써 뒤를 보지 않는다. 반짝이는 누군가의 일상과 경제적 성과들이 눈을 멀게 하는 것 만 같지만 그래도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매달려 정신줄을 잡는다. 궁금하다. 내게도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동시에 그런 날이 오지 못할까 두렵다.
어버이날에 부모님 용돈을 10만 원을 더 넣어야 하나 빼야 하나 고민하지 않는 날이 올까, 내 이름으로 된 집을 살 수 있는 날은 오는 걸까. 일을 하지 않고 잠시 쉴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올 수는 있는지 말이다. 누군가에게 복에 겨운 나의 평범한 일상이, 때로는 너무나 벅차 도망가고 싶어지지만 '먹고살만해서 그런 것.' 씁쓸한 그 말을 되새기며 오늘도 하루를 살리려 문 밖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