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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뭐 돼?

인정, 감사, 리셋.

by 나나키

영어교습소를 운영하는 내겐 학생들 시험기간이 제일 바쁘고 긴장되는 순간이다.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아이들은 주저 없이 나간다. 돌아서면 중간, 돌아서면 기말 그리고 중간중간 수행평가 대비까지 뭐 하나 소홀할 수 없다. 거기에 소소하게 터지는 이벤트까지 더해지면서 자기 연민의 늪에 오랜만에 빠졌던 것 같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바쁘고, 내가 제일 할 일이 많고, 열심히 산다는 착각.




오랜만에 글쓰기 모임에 들어갔다. 각자의 글을 읽으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 이 시간을 좋아하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모임에 소홀했다. 사실 글쓰기 모임이 아니라 일 외적인 모든 것에서 도망 다녔던 것 같다. 일하기에 빠듯하기도 했지만 문제는 내 마음이었다. 빠듯해진 내 마음. 모처럼 참석한 글쓰기 모임에서 그동안 아주 큰 착각에 빠져 지냈다는 걸 느꼈다. 바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모두가 바쁘고, 열심히 살고, 그러나 그 속에서 누군가는 감사함을 찾고 나처럼 또 다른 누군가는 불만을 터뜨린다.



생각해 보니 정말 내가 뭐가 된 줄 알았다. 투잡러로 공부까지 하는 내가 제일 바쁘고, 이렇게 많은 일을 하니까 당연히 모든 게 내 위주로 맞춰져 있길 바랬고, 축나는 체력과 정신에 대한 보상심리가 생겼다. 보상의 형태는 당연히 많은 수입이었고 그게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억울하고 짜증났다. 빨리 이 고생이 끝났으면 하는 조바심이 시야를 더 좁혀갔고, SNS의 블로그로 월천, 패시브인컴으로 인한 경제적 자유 이런 허황된 말들에 현혹되면서 만족의 기준이 쓸데없이 높아져만 갔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뭐가 부족해서 얘네처럼 못살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익숙함에 속아 현재의 것을 당연히 여기는 마음.



이거 참 건방진 마인드인데... 글쓰기 모임이 아니었으면 내 힘듦에 취해 지금 이 건방진 마인드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일을 시작할 때의 첫 마음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고.

교습소를 처음 오픈했을 때 제발 바빴으면 하는 그때의 절박함, 바리스타 강사로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설렜던 마음, 그리고 미래에 한국어 강사로 활발히 활동하고 싶다는 열정으로 시작한 공부...

시작했을 때의 마음, 초심을 잃었었다.




내가 경험한 세상은 만만하진 않다. 쉽지 않고, 늘 내게 예상치 못한 폭탄을 던지고 그 주기가 너무도 의외일 때라 이쯤 되면 보상을 좀 줘야 되는 거 아니냐며 원망했다. 하지만 그 폭탄 그냥 맞고 있는 게 아니라 해결할 수 있는 시간까지 마련해 준 게 어딘가 싶다. 어떻게든 해결하고, 그러면서 깡다구가 또 생기고, 능력까지 키워가는 그런 기회를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의 전환점을 가져본다.



40을 코앞에 두고 나 좀 쉬고 싶다고 외쳤던 칭얼거림이 사실은 잃었던 초심과 감사함 때문이라는 것을 어제 모임을 통해 깨달았다. 일을 하는 게 고된 건 사실이다. 여러 개 질러놓고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게 실망과 화가 날 때가 너무 많아 도망가고 싶을 때도 많다. 그래도 여러 개 지를 수 있는 용기, 완벽하게 아니더라도 뭐라도 해내도록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준 세상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경제적 자유와 같은 큰 보상을 당연히 받아야 된다는 착각. 그 착각에서 벗어나 지금 일상에 감사해야 한다. 이래놓고 너무 지치면 또 정신 못차리는 소리 할 수 있겠지만 또다시 건방진 마음이 들 때면 다시 내게 말해줘야지.



야, 너 뭐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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