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 소리를 내는 경찰관

소멸시대 지역경찰 - 3화

by 푸르름

파출소 생활을 하면서 정에 이끌려 들어주기엔 염려스럽고, 매몰차게 거절하기엔 냉정한가 싶은 순간이 있다. 바로 이런 순간.


“나는 반드시 상화리로 가야 한다고 좀 태워도!!”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 할머니 한 분이 역정을 내시며 방문하였다. 많은 이들이 파출소로 와 도움을 청하지만 경찰관이 거절하는 경우가 몇 가지가 있는데, ‘태워달라는 부탁이다.’

지구대나 파출소는 언제 긴급신고가 들어올지도 모르고, 특히나 내 관할지는 순찰차 단 1대로 모든 지역을 다녀야 하기에 관할 외 지역으로 태워달라는 부탁은 들어드리기 어렵다.


“어휴 할머니 그러다 여기 긴급신고 나면 그 사람들은 어째요. 제가 택시를 타는 곳까지는 안내해드릴게요. 상화리 몇 번지이신데요. 거기가 집이세요?”

“내 집은 일산이지. 번지는 모르겠고. 상화리에는 꼭 가야 할 이유가 있다니까 가서 이장 만나야 해”


일산이면 우리 관할지까지 직접 오는 버스도 없는 곳이었다. 전철로 1시간 그리고 버스로 갈아타 40분 정도를 달려야 하는 곳이다. 그 먼곳에서 오면서 목적지조차 모른다니. 이때부터 이상함을 느낀 나는 재빨리 이장을 안다며 유도 질문을 하였다.


“상화 몇 리 이장인데요. 제가 이장님한테 직접 전화할 수 있어요”

“모른다. 누군지. 가면 알아 근데. 얼굴 보면 안다고”

“그럼 같이 사는 가족 번호라도 알려주세요”

“누구랑 같이 살더라. 아 맞다 아들?? 안된다. 아들은 여기오는거 싫어한다. 아들한테 알리면 진짜 가만 안 있는다. 됐다 그냥 알아서 갈란다!”

횡설수설하는 할머니를 보며 불현 듯 치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나는 나가려는 할머니를 재빨리 붙잡고 파출소 번호를 입력한다는 조건으로 핸드폰을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전화번호부에서 할머니 아들의 번호를 적어 팀원에게 할머니를 맡기고 재빨리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에게 연락하여 겨우 진정을 시켰을까.


나를 유심히 노려보던 할머니는 눈치는 어찌나 빠른지 갑자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어깨를 수시로 내리쳤다.

“보소 보소 순사 양반. 아들한테 전화했지요? 하지 말라 안 해요 나 갈란다. 비키요!!”

마치 솜 망치로 안마하듯 아무런 타격은 없었지만 이대로 할머니를 보냈다간, 우리 팀은 고사하고 다음 팀까지 온 동네를 할마니를 찾아 나서야 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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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문득 나는 평소에 내가 가장 자신 있고 좋아하는 것으로 할머니를 묶어두기로 했다. 바로 쉬지 않는 입!! 사이렌처럼 큰 목소리!! 그리고 끝없는 대화였다.

“아니 근데 거기에 금이라도 묻어두었나 봐 왜 가려는 건데요.”

“아니 내가 서울 종로 세운상가에 살 때 말이야 사기꾼놈이 나한테 그쪽 땅을 팔았어!”

“종로 세운상가요? 거기 지하에 사우나 있는데 아니에요? 내가 그 근처 학교를 나왔잖아요! 그 근처 닭곰탕이 또 기가 막힌대”

다행히 치매 초기였던 할머니는 끝없는 질문에 옛이야기로 빨려 들어가시는 듯하였다. 역시 나의 조잘대는 실력은 아직 죽지 않았다.


이야기하면 할수록 신기했던 점은 “나 좀 데려다줘”만 반복하던 할머니가 어느새 자신이 가지고 있는 3채의 아파트 위치와 시세, 세입자 전화번호 등등까지 암기하여 구술한다는 점이었다.


웬만한 ‘젊은이’보단 나았다.

다행히 신고도 없었거니와 할머니를 혼자 두고 갈 수 없었기에 나는 50분 내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종로>광교>일산까지의 할머니 스토리를 들어주었다. 그러면서 할머니의 이름이 옥순할매인것도 알 수 있었다.

원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아하는지라 나는 할머니가 쉬는 틈을 보지 않고 끝없이 정말 끝없이 이야기하였다.


하다 하다 며느리가 광교 갤러리아에서 스카프를 파는데, 얼마짜리가 좋은지를 토론에 다다르게 되었지만, 다행히도 그 순간 아들분이 파출소 문을 열고 허겁지겁 다가왔다.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있던 할머니는 아들을 보자 한숨을 푹 쉬더니 나에게 손을 휘저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아들은 부르지 말리니까는.”

“아이고 또 때리는 거 아니지요!! 같은 종로구 사람끼리!!”

“됐소 나도 하도 이야기했더니 졸려 죽갔어. 그리고 우리 종로 출신 순사 양반이 거기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라니 믿고 가야지 뭐”


종로구 뒷배가 통했는지, 말을 하도 많이 해서 그런지, 할머니는 포기하고는 아들 차에 순순히 탔다. 시종일관 고맙다며 앞으로는 어머님을 꼭 챙기겠다는 아들을 뒤로한 채, 할머니는 빼꼼 창문을 내리고는 졸린 눈을 비비며 자그마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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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중에 땅 보러 오면 꼭 순사님이 나 좀 보러오이소.”

“우리 파출소 오기만 해요! 내가 비번인 날도 나와볼 테니. 혼자 가지 말고 꼭 파출소 들렀다 가세요!

할머니는 못다 한 이야기가 입 끝에 머무는지 입맛을 쩝쩝 다시고는 아쉬운 듯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경찰로써 내가 할 일은 이게 다이지만, 이 일은 언제든지 자원해서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파출소에서 가장 잘한 일이자 마음을 다해 한 일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언제고 망각의 숲으로 또다시 빠져들어 갈지 모른다. 어쩌면 다음 달. 아니면 다음 주, 혹은 내일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옥순 할머니의 가족분들을 안전한 배로 옮겨 드릴 힘은 없다. 다만 더 깊게 빠지기 전에 내가 가진 자그마한 널빤지로 잠시 바다에서 꺼내드리는 법밖에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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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조금이나마 나의 사이렌 소리가 가족들과 옥순 할머니의 험난한 바다 위에서 길을 찾는 데 힘이 되기만을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tip

- 기술의 발전덕에 지구대와 파출소마다 비치된 공용핸드폰을 통해서, 길을 잃었거나 치매 의심이 되는 노인분들에 지문을 사진으로 찍어 그 자리에서 인적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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